개인이건 국가이건 이해상관에 따라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고 오늘의 적이 내일 동지가 되는 것이 냉엄한 국제질서의 흐름이다.

민족상잔의 6.25 전쟁 당시 북한을 지원해 인해전술로 남침을 자행한 중국은 우리에게 철천지 원수 적대국이었다. 중국인을 향한 우리 국민의 적대감과 증오심은 지금의 여론조사 청년층 거부감 75%보다 훨씬 높았다.

오죽하면 시장에서 “재수없으면 뙤놈과 겸상한다”는 저주스러운 유행어가 돌았겠는가. 하지만 세월이 흘러 국가간 실리를 겨냥한 망각의 나이테가 늘어나면서 상전벽해(桑田碧海)로 변했다.

지난 24일로 한중수교 30주년이 됐다. 92년 수교 첫해 64억달러이던 대중 교역이 지난해 3000억달러로 47배나 급성장했다. 우리나라 1위 교역국이며 비중이 24%에 달했다. 한해 무역흑자의 80%를 중국과의 무역에서 올렸다. 하지만 간교한 중국이 이를 간과할리 없다.

처방은 조(兆)단위 자동화설비 개체 지원

지난 5월부터 대중 무역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세계 1위 삼성전자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이 20%에서 1%로 주저앉았다. 현대 기아차 양사 시장점유율 또한 1.7%에 지나지 않는다.

섬유교역의 무역적자는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2017년 42억1300만달러 적자에서 2018년 47억달러, 2019년 49억달러, 2020년 49억달러, 지난해는 54억1600만달러의 적자로 매년 늘어났다. 섬유산업 부문도 이미 사실상 중국 공세 앞에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 셈이다.

경제뿐 아니라 정치·사회적으로 중국은 양심과 염치가 없는 국민성임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중국사람은 이사할 수 없는 이웃이지만 어떤 사태를 놓고 시계와 달력을 보지않는 민족이다. 가짜 계란을 만들어 팔고, 생선배를 갈라 납덩이를 넣어 무게를 늘린 비양심의 극치이기도 하다.

중국은 레이다망으로 남한땅 구석구석을 유리알 들여다보듯 파악하면서 우리의 사드배치에 생트집을 잡고 모질게 보복하는 억지를 부리고 있다. 중국내 112곳에서 영업중이던 롯데마트가 하루아침에 문을 닫았고, 명동과 제주도를 활보하던 중국인 관광객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진 사실이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우리 섬유산업을 불구덩이 속으로 집어넣은 것도 우리 업계의 천수답 경영 못지않게 따지고 보면 중국 원인이 크다. 규모경쟁을 앞세워 저가공세로 시장을 장악하면서 중국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섬유산업의 대표적인 대기업인 화섬업계가 백척간두에 몰린 이유는 중국산의 저가투매 때문이다. 폴리에스테르사의 국내시장 60%는 이미 중국산 수입사에 넘어갔다.

국내 섬유산업을 받치는 대들보인 화섬메이커가 생산할수록 눈덩이 적자를 못이겨 결국 생산을 포기할 위기에 몰려있다. 필연적으로 염료처럼 중국의 독과점 횡포에 국내 산업이 심하게 휘둘리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면방 역시 인도산의 걸림돌도 있지만 중국의 공세를 피해 해외로 탈출했다. 세계 최대 면방설비와 원면 생산국에 저렴한 인건비를 무기로 한 중국의 공세 앞에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화섬·면방이 걷잡을수 없이 쪼그라 들면서 국내에 남은 섬유산업은 그나마 대구산지와 경기북부, 그리고 염색산업이 고작이다. 대구와 경기북부가 ‘여차’하는 날이면 한국의 섬유산업 운명은 단박에 조종(弔鐘)이 울릴 수밖에 없다.

극히 상식적인 얘기지만 가격경쟁력이 없는 산업과 기업은 생존이 불가능함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기업의 가격경쟁력의 1순위는 바로 대량 생산으로 인한 원가절감이다. 중국·베트남 등 경쟁국보다 임금이 5~10배나 비싼데다 사람마저 없어 도저히 배겨날 재간이 없는 곳이 대한민국 제조업 현 주소다. 가격 경쟁력이 없으면 품질 경쟁력으로 버티지만 이것도 첨단 자동화설비가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명제는 분명히 설정돼 있다. 대구산지 직기 대다수가 20년 30년된 구 설비다. 사가공·염색 설비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없고 생산성이 떨어진 헌 직기와 염색기를 갖고 생산성과 품질을 유지한다는 것은 “해가 서쪽에서 뜬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바 없다. R&D, 마케팅도 중요하지만 품질과 생산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설비 자동화가 급선무인 것이다. 그럼에도 발등의 불인 첨단 설비 개체는 가뭄에 콩나기 일뿐 좀처럼 진척이 없다. 제직·편직·염색가공·사가공 모두가 구닥다리 설비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가 선제적으로 해결되지 않고는 섬유산업은 백약이 무효다. 정부도 단체도 연구원도 해법이 없고 다리가 가려운데 가죽신발 신고 겉만 긁고 있다.

폐일언하고 닥치고 자동화 설비 개체 없이는 생존이 가물가물하다.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이 문제에 최우선 역점을 둬야한다. 여기저기 훈수꾼들이 백가쟁명식 고견을 내고 있지만 말짱 도루묵이다. 첨단 자동화설비 개체없이 생존할 길이 없는 것이다.

문제는 설비개체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에 달려있다. 기업이 자체자금으로 조달할수 있으면 최선이지만 뒤주가 비워 시난고난 삶은 개구리 처지에서 조달능력이 없다. 고비용 저효율 구조속에서 설상가상 코로나 사태로 죽지못해 살고 있다.

결국 정부의 과감한 설비개체자금 지원이 대안이다. 일본처럼 섬유설비 개체에 무이자 장기 분할상환 조건의 조(兆)단위 지원방안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이 모든 대안과 대정부 창구는 섬유산업연합회가 돼야하고 여기에 대구 섬산련, 경기 섬산련이 적극 동참해야 한다. 최선은 아닐지라도 정부 여당을 설득하는데는 서울 섬산련 못지않게 대구경북 섬유업계와 경기 섬산련의 인맥 파워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서울·대구·경기 업계 중진·지도자들이 한시바삐 모여 구체안을 마련해 정부 여당을 설득해야 한다.

섬산련· 대구· 경기 TF팀 가동해야

‘목마른 사람이 샘을 파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서울의 섬산련에 회장단과 이사진에 굵직한 실력자들이 많이 포진돼 있다. 하지만 패션기업인과 해외진출 의류벤더들은 국내 제조업의 절박한 상황을 제대로 모른다. 섬산련 회장단·이사회 회의때 발언을 보면 감이 안잡힌 소리가 많이 나온다. 제조업 대표들은 피가 말리는 절체절명의 상황인데도 의류벤더나 패션 기업인들은 그물로 바람잡는 물러터진 소리가 많다는 것이다.

제조업을 대표하는 기업인들이 전면에 나서 정부지원책을 강도 높게 쟁취할 수밖에 없다. 섬산련의 회장단이나 이사진도 제조업 분과위를 별도 구성해 운영할 필요가 있다. 배부르고 등 따듯한 패션기업인이나 해외에서 돈버는 의류벤더들은 부서지고 망가진 국내산업의 심각성을 제대로 체감하지 못한다. 국내 섬유산업의 공멸을 막아야 한다.

<조영일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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