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권 출범이 갓 한달 지났다. 나라 안팍의 돌아가는 통박이 예사롭지 않다. 복합불황에 먹고 사는 문제부터 비상이 걸렸다.
고물가·고금리·고달러의 3고 악재속에 생산·소비·투자가 모두 감소했다. ‘우물가에서 숭늉 달라’는 성급함일지 몰라도 경제가 뒷걸음 치면 정권의 평가는 그걸로 끝이다.

강성 노조의 어거지 행태가 어제 오늘이 아니지만 법과 원칙을 앞세운 위기관리 능력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화물연대 총파업으로 산업활동이 마비상태인데도 8일동안이나 속수무책이었다.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에서 육상물류의 동맥인 수출입 컨테이너 통행을 막는 것은 이적행위나 다름없다. 2조원에 달한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도 언제라도 재발할 수 있는 개연성을 남겨두고 미봉책으로 땜질한데 대해 산업계는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섬유산업 피해는 안중에 없다

이번 화물연대 총파업의 산업 비상사태에서 섬유산업은 또 한번 정부에 대한 배신감과 열패감을 떨칠 수 없다. 주무부처인 산업부는 매일 브리핑을 통해 자동차·철강·반도체 물류대란의 피해액만 반복적으로 열거했다. 석유화학과 연계된 섬유산업의 애타는 고통은 안중에도 없었다.

아직도 크건 작건 4만8000개 제조업이 있고 고용이 가장 많은 섬유산업의 숨 넘어간 상황을 모른채 했다. 만약 이번 화물연대 총파업이 2~3일만 더 이어졌다면 섬유공장이 줄줄이 문을 닫는 전대미문의 초상을 겪을뻔 했다.

화섬메이커는 석유화학업체로부터 원료인 PX와 PTA, MEG를 공급받아 화섬사를 생산하고 이를 대구와 경기북부 화섬직물업체와 니트직물업체에 공급하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화물연대가 울산과 여천, 대산에서 싣고온 운반트럭 통행로의 노루목을 막아 화섬원료 공급이 8일이나 중단됐다.

뒤늦게 확인한 사실이지만 국내 화섬메이커의 PTA·MEG 재고가 지난 16일이면 완전 바닥날 아슬아슬한 상태였다. 총파업이 3일만 더 지속됐으면 원사를 뽑는 중합공정부터 멈춰설뻔 했다.

이뿐 아니다. 대구 화섬직물업체나 경기북부 니트직물업체들도 자금부담으로 인해 원사재고를 줄여왔다. 제직·편직 공장에 공급할 화섬사 재고는 많지만 트럭운행이 불가능해 대구·경기북부 직물업체들이 원사를 못구해 무더기 가동을 중단할뻔 했다.

생산현장과 함께 비상이 걸린 것은 섬유 수출기업이었다. 글로벌 경기불황속에 천신만고 끝에 이삭 오더를 모아 컨테이너에 싣을려고 하다 총파업이 불거졌다. 수출품을 선적해야 네고를 하고 직원 월급도 주고 거래선 결제를 해야하는데 8일간 컨테이너 운행이 막힌 것이다.

해운 일정상 배가 매일 있는 것도 아니고 한번 실기하면 다음 배가 올때까지 열흘 보름을 또 기다려야 한다. 죽쒀 식힐 시간이 없는 중소기업들은 은사죽음 당하기 십상이었다.

더욱이 자동차·철강·반도체 등은 딜리버리가 늦어도 팔리는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의류제품과 직물원단은 시즌제품이라 단 몇주만 지연돼도 쓰레기 처리되는 약점을 안고 있다.

생선을 막잡아 살아있을 때 사시미용으로 제값을 받고 조금 지나면 매운탕용으로 쓰지만 시간이 너무 지나면 헐값 젓갈용으로 쓸 수밖에 없다. 의류와 직물원단은 시즌제품이라 납기가 늦으면 쓰레기로 갈 확률이 높은 것이다. 이같이 막다른 상황에서 절규하는 섬유 생산·수출업체의 피해상황은 일언반구도 없는 정부 주무부처의 태도에 업계가 분개한 것이다.

물론 업계를 대표하는 수많은 단체들의 태도와 역할도 문제다. 화물연대 총파업으로 아비규환을 호소하는 업체를 위해 그나마 기민하게 대응한 곳은 한국섬유수출입협회 등 극소수에 불과했다. 회원사의 피해 실태조사에 착수하고 대정부 건의안도 준비하다 협상이 타결되면서 중단됐다.

단체가 나선다고 해결될 사안은 아니지만 회원사가 어떻게 맞아죽는지 상황을 파악해야 하고 할 수 있는 한 대응책을 마련했어야 했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를 비롯 섬유·패션 단체는 많지만 산업현장의 피말리는 실상을 제대로 모른다. 업계가 혼수상태에서 비명을 질러도 단체는 먹통이다. 필자가 생산현장에 ‘돈보다 더 귀한 것이 인력’이라고 각혈하듯 호소해도 기찻길 옆 개짖는 소리로 치부한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도 생산현장과 유통·서비스 분야에 2만명의 중남미 인력 수혈을 공식 발표했다. 우리 관련단체도 노동부장관을 만나 도입쿼터 확대를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외국인근로자 쿼터가 절대 부족해 산업현장에 배정을 못받고 설비를 세우는 절박한 상황인데도 건의서 한두번 던진 것으로 할 일을 다한 것으로 여긴다.

원천적인 고비용·저효율 구조에서 소멸의 속도가 갈수록 빨라진 섬유산업의 붕괴를 막기 위해 노후된 혁신직기와 가연 등 제직설비 개체가 발등의 불이다. 기계값이 크게 내리고 “지금이 설비개체 적기”라고 지적해도 이에 따른 수요조사도 없다.

과거 일본처럼 정부가 설비자금 일부를 지원하고 거의 무이자에 가까운 육성정책을 벤치마킹하려는 의욕도 노력도 안보인다.

대구와 익산에 생산기술 연구소가 4곳이나 있지만 발등의 불인 혁신 소재개발은 뒷전이고 정부과제 하나라도 더 따내기 위해 혈안이다.

서울의 섬산련이나 연구소 등이 공멸위기로 향한 ‘국내 섬유산업이 어디로 가야한다’는 대전제하에 대안을 마련해야 하지만 말짱 가죽신 신고 겉만 긁는 격화소양 뿐이다. 인력난·고임금 구조에서 자동화 전환과 신소재 개발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폴리에스테르 시장이 저문다

글로벌 SPA 브랜드 간판인 자라의 매장을 가보면 한국산 주종인 폴리에스테르를 비롯한 대구 주종 화섬소재가 잘 안보인다. 2025년에는 일반 폴리에스테르 소재는 거의 자취를 감추고 레이온을 비롯한 셀룰로이드와 리싸이클 친환경 기능성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혁신 신소재 개발없이 80년 이상 울궈먹은 폴리에스테르에 의존하는 대구산지의 미래가 암담하다. 섬산련과 관련 단체·연구소가 독자적이건 공동이건 세계 섬유패션시장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진즉부터 선진국 시장에 가서 조사연구를 펼쳐야했다.

일본과 대만·중국·이태리의 불황 타개책과 향후 전개될 방향을 깊이 조사·분석해서 업계에 제공해야 한다. 앉아서 뭉그적거리지 말고 장관이나 소관 국회의원 바지가랑이를 잡고 지원책을 요구하고 떼를 쓸줄도 알아야 한다. 점잔빼고 앉아서 폼잡을 여유가 없다.

업계 역시 각자도생을 위해 사즉생 각오로 투자해야 한다. 섬유패션시장은 반도체보다 크고 기술은 한국이 최고다. 지금 미래를 대비하지 않으면 미래는 절망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이미 도래했다.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날고 물고기는 물살을 거슬러 헤엄친다. 우리 섬유산업은 갈고 닦은 노하우와 코카콜라보다 더 많은 교역국 시장이 있다. 하기에 따라 어떤 바람과 물살도 헤쳐나갈 능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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