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과 집권여당 전 대표가 마주 보고 달리는 기차처럼 충돌하고 있다. 마치 로마시대 배신과 치열한 권력투쟁을 벌인 ‘줄리어스 시저’를 연상케 한다.

세계를 정복하고 원로회의 의장까지 오른 시저는 당대의 최고 권력자였다. 그가 황제가 되려다 최측근 브르투스가 가담한 암살자에 난도당해 숨을 거뒀다. 브르투스 또한 훗날 시저의 추종자에 의해 축출당했고 외곽에서 다시 로마로 진격하려다 참패해 자살로 마감했다. 로마가 제국이 아닌 공화국 시절 욕망과 배신, 치열한 권력투쟁을 그린 세익스피어 희곡의 줄거리다.

논리의 비약이지만 지금이 무슨 로마시대도 아니고 국정의 버팀목인 집권여당 대표가 대통령을 향해 개고기 논쟁(양두구육)을 벌이는데 대해 국민은 실소를 금치 못한다. 취임 100일 잔치 대신 첫 기자회견에서 성정상 부글부글 끓을줄 알았으나 “국민만 바라보며 분골쇄신 하겠다”며 이준석을 무시했다. 어찌됐건 대통령 권위를 납작코로 만들려는 시도는 안된다. 지지도가 더 내려가면 국정동력이 상실되고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감을 직시해야 한다.

최후의 보루 삼성물산· 성안의 교훈

본질 문제로 돌아가 오동잎 떨어지면 가을인줄 알듯이 한국경제의 일등공신 섬유산업 공멸현상이 실감난다. 이 땅의 빈곤퇴치 주역이자 반도체·휴대폰 등 첨단산업의 젖줄인 섬유산업이 서까래는 물론 대들보가 무너지는 소리가 귓가에 와닿는다.

삼도물산, 협진양행, 쌍미실업, 대우, 동국무역, 갑을을 비롯한 한국경제를 일으킨 수많은 기업들이 소멸되거나 주인이 바뀌었다. 그 와중에도 섬유산업은 고래심줄보다 강한 생명력을 바탕으로 국가 기간산업의 하나로 명맥을 유지해왔다. 물론 국내에서는 많은 기업이 생성보다 소멸의 속도가 빨랐고 급변하는 글로벌 시장의 변곡점에 따라 해외투자의 엑소더스가 러시를 이뤘다. 거의 6000개 회사가 섬유부문에서 투자 이민을 떠났다.

이같은 상황에서 시난고난하지만 국내 섬유기업들은 아등바등 발버둥치며 차별화를 통해 도꾜올림픽 참가국보다 많은 나라를 대상으로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다. 이같은 고군분투속에 모진 코로나19가 겹쳐 기업마다 맷돌에 깔려 찢기고 망가졌다.

한국의 섬유산업이라야 대구산지와 경기북부산지를 중심으로 한 제·편직과 염색산업이 주축이다. 지난 2년여동안 코로나19가 몰고온 파고는 너무 높고 길어 산지 중소기업마다 20억 내외의 빚더미에 올라섰다.

악으로 깡으로 버티고 있는 이 엄혹한 상황에서 허탈한 탄식을 떨칠 수 없는 충격적인 비보가 이어지고 있다. 종합상사중 섬유사업의 끈을 마지막까지 놓지 않던 삼성물산이 60년 이어온 섬유사업에서 손을 떼기로 했다.

전성기때 섬유제품 4개 본부, 원료사업본부 등 5개 본부에 1000여명이 지구촌을 누비며 연간 수십억달러씩 수출하던 삼성이다. 구로동에 대형 신사복 공장과 유통센터를 운영하며 한국의 섬유수출업을 선도하던 회사가 삼성이다.

대우와 함께 섬유쿼터를 가장 많이 보유하며 국내 섬유산업 발전을 견인해온 공신이다. 결국 금년말까지 마지막 남은 원사·원료 수입업무를 에스에스섬유 등에 넘기고 손을 떼기로 했다. 세월이 흘러 삼성물산의 섬유부문 사업규모는 줄었어도 삼성이 가진 글로벌 정보력을 활용해 국내 섬유업계를 지원하는 것 자체가 큰 힘이었지만 이마저도 기대할수 없게 됐다.

이어 대구 화섬직물의 간판주자인 ㈜성안도 매각됐다. 67년 역사의 성안은 우리나라 화섬직물 대종인 폴리에스테르 직물로 전성기때 3억달러 가까이 수출했다. 화섬직물로 시작해 화섬원사 메이커인 성안합섬까지 영역을 넓혔고 이집트에도 대규모 화섬직물·니트직물·염색가공의 버티컬 시스템을 구축하고 성장동력 확보에 안간힘을 쏟아왔다.

성안 입장에서는 아쉬움과 홀가분함이 교차하겠지만 250억원 매각대금을 받고 3년후 우선매수청구권을 갖고있어 “잘했다”는 업계의 평가도 있다. 하지만 동국무역에 이어 대구 화섬직물 업계를 상징하던 성안이 매각된데 대해 그 충격과 상실감은 상상 그 이상이다. 어떻게 보면 대구 화섬직물업계의 역사이자 최후의 보루중 하나였던 성안이 주인이 바뀔 정도면 성한 기업이 얼마나 될까하는 자탄의 한숨이 절로 난다.

국내 섬유스트림중 내수패션기업과 해외소싱으로 돌파구를 마련한 의류벤더나 원단 밀을 제외하면 불안성 가연심리가 더욱 확산된다. 대기업인 화섬메이커들까지 속으로 골병이 들고 있다. 주종인 폴리에스테르 필라멘트사는 생산하면 할수록 눈덩이 적자다. 메이커마다 일반사 부문에서 매월 10억~20억원까지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특수사나 칩, 스판덱스를 병행하는 곳은 적자를 보전하고 있지만 폴리에스테르 장섬유사 단일품목은 백약이 무효다. 중국산에 가격경쟁력을 잃었고 결국 중국산이 벌써 국내시장의 60% 이상을 장악하고 말았다. 이대로 가면 염료처럼 폴리에스테르사도 중국의 독점하에 옴짝달싹 못할 날이 받아놓은 밥상이다.

면방산업은 거의 대다수 기업이 베트남으로 탈출한 가운데 국내공장 사정이 녹록치 못하다. 지난 상반기까지 1년반동안 호황으로 대박을 누렸지만 자칫 10년 불황의 고통이 다시 엄습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다.

이같이 도처에 지뢰밭과 해저드가 도사리고 있는데도 우리 내부의 대응은 아직도 무방비 무대책이다. 원사나 원단을 가급적 국산으로 사용하자는 취지에서 11년전 섬유산업연합회가 스트림간 협력간담회를 발족시켜 분기별 모임을 정례화하고 있다. 당시 노희찬 회장이 주창해 필자가 이리뛰고 저리뛰며 원사·원단·벤더·패션업계 대표가 함께하는 이 모임이 탄생한지 강산이 변했는데도 국산소재 사용은 오히려 뒷걸음치고 있다.

정부·업계·단체 반성과 변화· 책임감이 없다

솔직히 원사나 원단이 차지하는 의류패션제품의 원가구성은 그리 많지 않다. 국산이 다소 비싸도 구우일모(滄海一粟)까지는 아니어도 큰 비중은 아니다. 벤더나 패션브랜드의 동질성과 성의 부족이다. 의류벤더와 패션브랜드 오너의 철학이 문제다. 스트림간 협력간담회 멤버들이 금쪽같은 시간에 밥만 먹고 헤어질 것이 아니라 진짜 국산소재 사용확대를 위한 진솔한 협력이 절실하다.

더불어 주무 당국은 말할 것도 없고 섬유단체와 연구소 등이 현장감 모르는 타성에서 벗어나 위기의 한국섬유패션산업 중흥을 위해 지혜와 열정을 발휘해야 한다.

어영부영 이대로 가면 게도 구럭도 다 놓친다. 살아있을 때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섬유패션산업을 살려야 한다. 죽은 다음에는 산삼 녹용도 약발이 안 먹힌다. 지금 우리 섬유패션산업, 특히 섬유산업은 절체절명의 벼랑 끝에 몰려있음을 알아야 한다. 냄비속 개구리처럼 죽는줄 모르고 반성도 변화도 책임이 없이 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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