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를 통틀어 가장 화두가 된 단어는 무엇일까?

리사일런스(RESILENCE) 즉, ‘회복탄력성’이다. 올해 서점가의 관련 베스트 셀러 서적만도 십수권에 달하고 있으니 대세중의 대세임이 분명해 보인다.

역경을 통해 성장하는 사람들을 보며 마음을 다잡기 위한 각자의 노력들이 그만큼 국민들의 정서를 파고 든 것은 지금 나라 전체가 힘겹고 어려운 시련을 겪고 있음을 정확하게 방증한다. 지난해 ‘중꺽마(중요한건 꺾이지 않는 마음)’라는 신조어가 유행했던 것도 맥을 같이한다.

코로나19는 진정됐지만 경제의 회복은 더디기만 하다. ‘고환율, 고물가, 고금리’라는 3고(高) 현상을 매일 견뎌내고 있다. 막바지에 접어든 국정 감사의 현장만 지켜봐도 먹고사는 문제부터 팍팍한 서민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각종 갑질과 부정이 난무하는 대한민국의 총체적 난국이다. ‘회복 탄력성’도 ‘중꺽마’도 어느 때보다 절실해 보인다.

‘국감’ 무풍지대(無風地帶) 섬유공룡단체

지금 대한민국은 국정감사로 뜨거운 이슈가 한창이다.

국회의원이 형사의 위치에서 행정부 등 국가기관들의 감사와 감찰을 진행하고 사회적인 문제 등을 비판하는 공개 청문회인 ‘국감’기간에는 관련 정부 단체 소속 산하기관들이 가장 노심초사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해를 거듭할 수록 MZ세대를 비롯한 젊은 층을 중심으로 국민들의 국정운영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면서 국감을 통해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인지도 확산도 톡톡히 노리고 있어 의원 개개인에게는 특별한 홍보의 장이 되기도 한다.

국감을 통해 공개되는 내부고발도 적잖이 방송에 그대로 노출되고 있어, 해당 국정감사 기관과 증인들의 긴장도는 어느때보다 팽팽한 분위기다.

실제로 정부산하 단체 및 협회 등 소속 국가기관들은 담당 국회의원들의 적나라한 고발과 질타로. 증인과 참고인으로 참석한 담당 단체장들이 공개 사과와 진땀을 흘리는 풍경이 국회방송을 통해 적나라하게 송출되고 있다. 오죽하면 문체부 산하 A기관 관계자는 최근 기자와의 통화에서 “요즘 국정감사 기간이라 자료 공개부터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럽다”면서 “최근 일체 보도자료도 언론사에 내보내지 못하고 있고, 이 기간만큼은 언론사 별로 기사노출을 오히려 자제해달라고 부탁드리고 있다”고 토로할 정도다.

반면 산업부의 적극적인 사업 예산지원을 받고 있는 국내 섬유패션 관련 단체와 기관들은 국감 무풍지대(無風地帶)라는 면에서 면죄부가 주어진다.

관련 단체에 섬유패션산업 활성화를 명목으로 수년간 국민 혈세 수천억을 쏟아부었지만 지원사업의 이렇다할 결과물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게다가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섬유 기업들의 도산소식만 무성한 요즘에는 원망의 목소리가 하늘을 찌른다.

대한민국을 가장 부유하게 이끈 효자산업이자 최첨단 산업이며 고감성 패션의 근간이자 기본인 섬유 직물분야는 올 초 정부로부터 뿌리산업 지정에도 실패하며 추락의 가속도가 붙었다.

대구 섬유단지는 물론 경기도 소재의 니트 및 후가공 전문 섬유 기업들이 줄줄이연쇄 도산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일본이 후쿠이산지를 통해 세계적인 선진 섬유산업을 리드하고 있고, 대만이 세계적 혁신기술과 최첨단 스포츠 아웃도어 원단으로 유럽바이어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는 소식이 연일 이어지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국내 패션산업 역시 ‘빛좋은 개살구’라고 겉은 화려해보이지만 속은 곫아 터지고 있다.

전세계 K-열풍에 너나 할 것없이 해외로 진출하고 있는 패션사들의 행보에 마치 국내 토종 브랜드의 글로벌 잭팟이 터질 것 같지만 정작 대기업 주도의 해외 라이센싱 브랜드 판권 뺏기 진흙탕 싸움에 이미 상도덕은 사라지고 없다.

A사가 문어발식 이중, 삼중 계약으로 법정공방이 벌어지고 있는 것도 모자라 연간 1천억대 브랜드가 결국 프랑스 본사 로열티 미지급에 상표 소유권이 파기되자 곧바로 신규 계약업체가 올 연말 거대한 상표권 위반 법정 소송에 들어간다. 모두 힘들게 토종 브랜드를 잘 키워 우수한 글로벌 브랜드로 키울 생각보다, 쉽고 빠르게 돈을 벌기 위한 비즈니스에 몰두한 결과다. 결국 B사는 프랑스 국제 변호사까지 대동해 기자회견을 열고 국제법 운운한 법정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끊이지 않는 한국의 해외브랜드 판권 싸움은 후진국에서나 볼법한 국제적 망신이다.

한국의 무분별한 패션 브랜드 양산을 지켜본, 한 세계적인 디자이너는 “한국은 이제 지구를 더럽히는 의류 쓰레기 생산에 몰두하는 일을 멈추고 다른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하게 경고하기도 했다.

국내 섬유 패션산업이 제살 깎기 경쟁에 무너지고 있을 때 가장 적극적으로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야 하는 정부 산하 단체들은 이러한 와중에도 자신의 밥그릇 만 챙긴다는 소문이다. 일례로, 모(某) 거대 섬유 단체는 상근임원이 새로 부임과 동시에 품위유지를 명목으로, 대기업 총수들만 탄다는 초고가의 최고급 호화 세단차를 구입하는 것도 모자라 운전기사까지 기용한다. 대기업 최고 임원들도 타기 힘든 최고급 세단을 줄줄이 새로 구입하고, 업무용 휴대폰까지 초고가 최신 기종으로 교체하는 일이 출근과 동시에 이뤄진다. 회원사들의 기업회비가 섬유 단체 임원들의 향응을 목적으로 남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국내 섬유기업들이 한달사이에 수십곳이 도미노처럼 쓰러지고 있는 대한민국 섬유산업 총체적 부도의 현실은 먼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잘못된 악습의 재발 방지와 갑질 행위에 대한 동종 업계의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라도 공정위와 윤리위와 같은 엄정하고 객관적인 감사 기관이 국내 사단법인 단체에도 들여놔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本紙 조정희 총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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