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하지 않게 강한 애국심이 꿈틀대는 순간들이 있다.

외국인 심사대에서 종종 겪는 차별의 당연함을 묵묵히 받아들여야 하는 입국장을 지나 공항 곳곳에 부착된 대한민국 대표 기업들의 광고 전광판을 마주할 때, 그 순간 우리 국민들은 가장 큰 애국 자존감을 느낀다고 한다. 특히 해당 국가가 경제 선진국일 경우에는 우쭐한 기분이 강하게 작용한다.

필자의 경우에는 전세계 각축전이 벌어지는 전쟁터인 국제박람회에서 우리 기업들을 발견할 때 비슷한 기분을 갖는다.

기자의 본분이기도 하지만 세계적인 기업들의 각축전이 벌어지는 박람회나 전시회를 취재 참관할 기회가 생기면, 특별히 없던 시간을 내어 스케줄을 조정해서라도 한국기업들을 찾아 다닌다. 전시 참가 전부터 어떤 회사인지, 경쟁 아이템은 무엇인지, 그리고 개막 당일 해당 부스 곳곳을 일일이 방문해 기운을 독려하고 예정에 없던 인터뷰도 하는 등 각별히 신경을 쓴다.

1999년 10월 파리 프레미에르비죵을 첫 시작으로 해외 전시회 취재를 다녔으니 필자의 가장 오랜 습관이기도 하다.

올해 가장 먼저 개막한 텍스타일 박람회이자 독일 메쎄 프랑크푸르트가 주최한 홈텍스타일 전시회인 ‘2023 하임텍스틸(heomtextil)’에 한국 초청 기자로 참석한 필자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개막일 취재 첫날부터, 전시 1홀부터 12개홀까지 뿔뿔이 흩어져 있는 한국기업 16개사를 찾는데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다.

전세계 120개국에서 참가한 업체수만 2천400개사에 달하다 보니 코로나 이전보다 줄어든 숫자를 감안하고 라도 하루에 둘러보기가 불가능할 정도의 규모다. 4.0홀부터~12.0홀까지 열 두개 관이 건물과 건물로 연결된 프랑크푸르트 암마인(am Main) 전시장은 축구장 10여개를 붙여놓은 듯한 매머드 규모 덕분에 전시관 이동시 무빙워크는 필수다.

더구나 유럽 선진국이 중심인 이곳 전시장의 부스 한곳당 평균 100평에 달하는 초대형 규모가 일반적이다 보니 참가 기업들은 저마다 자신의 키 컬러로 휘장한 세련된 인테리어로 참관객들을 한눈에 매료시키기 위해 조명과 부자재 등 설치비용에 대한 시설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주최국인 독일과 맞닿아 있는 영국, 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 덴마크는 물론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북유럽 선진국 참가사들의 전시부스는 눈이 부실정도의 독보적인 디자인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팬데믹 이후 참가수가 급증한 아시아 전문관 역시 인도, 파키스탄은 물론 코로나 국가 격리의 빗장을 푼 중국 기업들까지 약 1400개 업체가 국가관으로 참가했다.

마치 언제 팬데믹이 있었나 싶을 만큼 전시장 곳곳에는 마스크를 벗어 던진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자사의 우수함을 알리기 위한 판촉 홍보 활동과 최신 트렌드와 신제품을 갈구하는 바이어들로 오랜만에 오프라인 전시회의 활기를 되찾는 기분 좋은 풍경이었다.

 

바이어 발길 돌리게 만든 非매너 일관 ‘눈살’

코로나 이전과 이후의 전시회 풍경도 극명하게 달라져 있었다.

참가사들은 지구환경 보존에 발맞춰 적극적으로 ESG에 투자해온 기업들과 그렇지 못한 곳들로 확연히 구별됐다.

올해 하임텍스틸의 핵심 테마는 ‘재사용(RE USE)’ ‘폐기물감소(REDUCE)’ ‘순환경제(RECYCLE)’다. 이를 골자로 한 ‘그린(GREEN) 디렉토리’에 발맞춰 선진기업들도 친환경 국제 인증을 획득한 자연 친화적인 원료와 소재, 완제품을 공개하고, 리사이클과 재사용 제품들을 선보였다.

잘 알려진 힉인덱스, 블루사인, GRS, OCS, GOTS, OEKO-TEX MADE IN GREEN등 우리에게 친숙한 친환경 국제 인증마크는 물론, BSCI, UKAS, Sedex, SANFOR KNIT, COTTON AFRICA 등 새로운 친환경 기준의 라벨까지 획득한 제품들로 국제적인 총공세전이 펼쳐졌다.

‘그린&서스테이너블(Green & Sustainable)’ 라벨을 부착한 기업들은 별도의 그린 심볼(그림)을 부착해 서스테이너블 홈&하우스 텍스타일 업체로 특별관리를 받아 ‘귀하신 몸’으로 대접받으며 12.0 홀 특별관내 ‘그린 빌리지’로 응집해 각국 바이어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이중에는 제3국으로 불리는 제조기반 국가도 상당수 있었다. 중국과 인도를 누르고 오가닉 코튼등 면화의 대량 생산국으로 안착한 파키스탄이다.

대표적인 라메리노사는 공장에서 쥬스로 착츱된 후 버려지는 오렌지껍질을 대량 수거해 셀룰로오스를 추출한 화이버로 비타민C가 함유된 혁신적인 친환경 건강 비스코스 소재를 침구소재로 공개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바나나 나무와 버려지는 파인애플잎에서 추출한 화이버를 개발해 면보다 강도가 4배 우수한 동시에 토양에서 6개월만에 생분해되는 신소재도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 파키스탄의 섬유기업이 지속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 R&D에 수년간 투자해온 결과물이었다.

이밖에도 유럽 대다수의 고급 오가닉코튼 제품은 최근 파키스탄에서 생산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제3 제조국기반의 국가에서 나아가 개발 선진국으로 도약하고 있는데 이번 전시에서도 가장 활발한 전시 수주 상담국으로 기록되며 이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어떠할까.

여전히 수년간 라이프스타일 핵심 성장산업인 홈텍스타일 부문에서 가장 후진국에 속한다. 이렇다할 홈텍스타일과 리빙 브랜드 하나 없는 우리의 현주소도 이곳에서 재확인된다.

이번 전시에 참가한 16개사는 각종 홈 텍스타일 제품부터 블라인드, 벽지, 텍스타일 디자인, 아트워크까지 다양한 품목으로 출전했지만 전시의 핵심 테마인 ‘지속가능성’과도 시즌 트렌드와도 다소 거리가 멀다. 중국과 인도가 국가관을 형성해 공격적인 그린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더구나 각종 PR과 마케팅의 장으로 격양된 바이어 선점 격전지인 이곳에서 어처구니없는 상담 매너로 한국기업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곳까지 보였다. 항균 리빙소재 전문기업 B사는 전시 첫날부터 부스가 텅 비어 있었고, 모 아트워크(디자인) 업체는 전시 첫날부터 불친절하고 신경질적인 태도로 일관한 직원들의 비매너가 지적됐다. 이 회사는 기자의 취재 질문에도 “대표가 아니니 난 모르쇠”로 일관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특히 이 회사는 수년간 해외 전시에 참가해오고 있는 수출 주력 회사인 것으로 알려져 더욱 경종을 울리고 있다.

현장을 직접 목격한 필자는 해당 부스에서 당혹한 모습이 역력한 바이어들의 얼굴과 함께 발길을 돌리며 고개를 내젓던 그들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동시에 가슴속 용솟음치던 우리 기업들을 향한 강한 애국부심 역시 사그라들었다.

국내 중소기업들은 해외 수출 기본 교육도 받지 못한 채 무조건 전시만 참가하면 바이어가 알아서 찾아온다는 무모한 도전의식을 갖고 있기로 유명하다.

십수년전 해외 섬유 및 패션 전시회에 국가관을 통해 참가사를 지원했던 국내 섬유패션단체들은 사전 모임을 통해 ‘전시참가시 반드시 지켜야할 제반사항’을 공유했다.

1. 해외전시 참가사는 반드시 현장 상담 계약이 가능한 대표이사가 상주하라. 불가능시 대표이사에 준하는 임원이 직접 바이어 상담을 주도하라.

2. 전시는 초청 바이어와의 만남의 장이다. 타겟 바이어를 사전에 정확히 알고 접근하라. 불특정 다수의 바이어 공략은 성공율이 매우 희박하다.

3. KOTRA와 현지 마켓 사전조사는 기본, 경쟁사를 파악한 후 가격, 품질, 납기 등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판단할 때 그때 해외 전시를 노려라.

4. 근접 부스 동향을 철저히 분석해라. 동선과 위치에서 우위를 점하라.

5. 전시 주최측이 제안하는 해당 시즌 트렌드는 고가의 정보다. 철저히 익히고 배워라.

필자가 지금까지 기억하는 이 기본 매뉴얼은 1999년 신입시절 국내 섬유패션사들에게 이미 공지했던 사항들이다.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기본 준비없이 무조건 페어에 나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사태다. 최소 무기도 없이 전쟁터에 나가서 싸우려는 것과 다름없다.

참가사를 돈벌이로만 생각하는 전시 주최측에게만 잘못을 떠넘길 일이 아니다.

이제라도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ESG 경영을 탑재한 기업들의 친환경 제품 그리고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지속가능한 아이디어를 장착하고 글로벌 무대에 도전한 수천개의 혁신 기업들이 어떻게 전시회에 참가하고 세일즈를 펼치는지 치열하게 분석해봐야 한다.

그들은 바이어와 전시 현장에서 상담 거래를 하지 않는다. 이미 전시에 앞서 바이어와 상담을 마치고 그들과 일종의 파티를 즐긴다. 그리고 새로운 바이어가 오면 그들은 자신의 기업이 얼마나 훌륭한 과업을 이어가고 있는지 화려하게 비주얼 PT(프리젠테이션)를 펼친다. 전시는 그저 마케팅 수단이며, 상담은 이미 그 이전에 혹은 전시 이후에 격렬하게 이루어진다.

심지어 친환경 무기를 갈고 닦아 전쟁터에 나온 중국과 인도 파키스탄 업체들도 한다.

우리만 과거에 멈춰 서있는다는 지적도 피하기 어렵다. 대한민국 섬유 사양론을 논하는 정치인을 탓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가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기 위해 치열하게 벤치마킹하고 끊임없이 혁신해야 한다.

본지 편집국 취재부 총괄 조정희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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