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된 정치에 추석 민심이 회초리를 들었다. 타협과 절충의 정치는 없고 대결적·전투적 정치가 횡횡한데 대해 추석 밥상민심이 실망과 환멸을 토해냈다.

여야 불문하고 내편이 아니면 적으로 간주하는 끝없는 악행과 폐단에 국민 마음의 근육이 더욱 쪼그라든 증거다. 지랄맞은 한국 정치에 어느덧 실망을 넘어 절망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추석 밥상민심에서 국민의힘은 허구헌날 이재명 대표를 겨냥한 검찰 수사뒤에 숨어 반사이익만 노린데 대한 지탄을 면치 못했다. 더불어민주당 또한 이재명 대표의 구속영장 기각을 마치 무죄판결인양 호들갑을 떠는데 호된 질책이 주된 여론이었다.

정치는 생물이다. 민심은 조변석개다. 절대선·절대악의 2분법 개념부터 바뀌어야 한다. 국민을 내편·네편으로 갈라 정서적 내전상태에 빠진 것은 정치인의 책임이다. 가소롭고 우스운 것은 강서구청장 선거 하나에 여야 정치권이 사활을 걸고 피터지는 싸움을 벌이는 꼬락서니다. 구청장 선거가 이럴진대 내년 총선은 오죽하겠는가 싶다. 여·야 정치권은 추석 민심의 비판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무너진 대구산지, 일어선 후쿠이산지

본질 문제로 돌아가 풍요롭고 즐거워야할 한가위가 섬유를 비롯한 중소기업에게는 고통과 열패감의 연속이었다. 6년만에 찾아온 6일 황금연휴가 월급장이에게는 마냥 즐거웠지만 교도소 담장위를 걷는 중소기업인은 고통과 안타까움이었다.

글로벌 경기 침체가 불황보다 더한 공황상태를 지속하면서 섬유를 비롯한 대다수 제조업은 예년보다 추석 휴무를 연장했다. 하루이틀 더 노는 정도면 이해가 가지만 수출 오더가 고갈돼 추석 휴무를 창업 이후 가장 오래 시행한 곳이 많다. 하나의 예증으로 대구의 어느 화섬직물 업체는 이번 추석 연휴가 시작된 지난 28일부터 오는 9일까지 무려 12일의 최장 휴무를 단행했다. 신규 오더는 몇달째 전멸상태인데다 생지 재고가 창고는 물론 공장 마당에 야적할 곳이 없어 울며 겨자먹기로 40년 창업 역사상 12일이란 최장 휴무를 단행한 것이다.

이같은 장기 일괄 휴무가 비단 이 회사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대구경북 소재 직물회사 상당수가 이같은 장기 휴무를 실시했다. 추석 전에도 채산은 뒷전이고 공장 가동률이 40~50%에 불과한데 이어 더 이상 재고를 쌓아 둘곳이 없고 돌리자니 원사값 부담만 늘어나기 때문이다. 지난 상반기에도 경기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7월부터는 미국은 물론 유럽 주거래선들까지 신규 오더를 중단한 여파다.

물론 해외경기의 호·불황은 언제라고 반복되지 않을 때가 없었지만 최근의 상황은 강도가 더욱 심각하다. 이대로 가면 우리나라 미들스트림의 메카인 대구경북 섬유산업이 집단으로 떡쌀 담그는 극단적인 상황이 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원인은 대구와 경기북부 산지의 원시적인 천수답 경영이 자초한 필연적인 결과임을 부인할 수 없다. 고비용 저효율 구조만 한탄할뿐 글로벌 시장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도 못했고, 뼈를 깎는 변화와 혁신을 외면한 결과다.

때마침 대구 화섬직물업계 대표와 염색업계 대표로 구성된 일본 후쿠이 산지 시찰단이 도레이 클러스터 공장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일본 후쿠이와 가나자와 지역에 소재한 도레이 클러스터 공장 81개중 5군데를 둘러보는 아주 값진 기회였다.

이들 대구직물업계 중진 시찰단은 도레이 클러스터 공장을 둘러보고 ‘악’ 소리를 토해냈다. 일단 가나자와에 소재한 혁신직기 400대 규모의 마루이직물 공장부터 설비 전체가 풀가동하고 있었다. 대다수 후쿠이 제·편직·염색가공 공장은 불황을 모르고 설비를 풀가동하며 나름대로 차별화 전략에 총력을 경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기가 소강상태라는 후쿠이 소재 후쿠이경편공장은 요즘 오더가 주춤해 가동률이 70% 정도라고 밝혔다.

단순한 가동률에서 대구산지와 후쿠이산지는 천양지차이지만 기업의 채산성도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양호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만큼 만든 제품을 제값 받고 팔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구산지가 시난고난 헉헉거리며 벼랑 끝에 신음하고 있는 것과 달리 일본 후쿠이 섬유산지는 불황을 모르고 안정성장을 유지하는 극명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원래 화섬산업은 일본이 먼저 시작했고 기술력이 앞선데다 습도가 많은 기후조건으로 화섬직물 수요가 많은 곳이 일본이다. 역사도 길고 기술도 앞서고 인구 또한 한국보다 배이상 많은 1억2천만명 시장이 있는 곳이다. 그런 일본도 80년대부터 한국의 혁신직기 증설 붐이 일어나면서 장강의 앞물이 뒷물에 밀려나듯 한국에 밀려 속수무책으로 내려앉기 시작했다. 그런 일본이 어느덧 경쟁력을 회복하고 안정성장을 되찾으며 엔조이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많은 연구와 분석이 필요한 점이다.

후쿠이 기사회생, 벤치마킹을

붕괴되던 일본 후쿠이 산지가 기사회생해 성장가도를 달리는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도레이라는 세계적인 화학·섬유회사가 다양한 첨단 신소재를 개발하며 도레이 클러스터 입주기업에 제공하고 필요하면 자금도 지원하며 판로를 모색하는 협력체계다. 여기에 유니클로라는 글로벌 SPA 브랜드의 광범위한 수요가 일본 직물·염색업의 일감을 보장하고 있고, 일촌이란 도레이 출자 회사가 해외 마케팅을 지원하면서 직물제조업체들의 판로 걱정을 덜어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후쿠이 산지 제직·편직·염색가공 업체들은 나름대로 각기 차별화 기술로 제값받기 전략에 주력하고 있다. 경쟁사가 개발한 제품을 카피하거나 시장에서 과당경쟁하며 거래선을 침범하는 일을 금기시하고 있다. 후쿠이직물조합을 비롯한 직물·편직·염색가공 관련 단체들이 필요한 글로벌 정보와 트렌드, 기술정보 등을 제공하며 단체와 업체간 긴밀한 협력체제를 견지하고 있는 것도 장점이다.

불과 2시간 거리인 후쿠이 산지 정보를 몇십년간 깜깜이로 일관하면서 각자도생의 들쥐떼 근성으로 일관한 대구산지와 극명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섬유산업 싱크탱크를 자처하는 우리 섬산련과 대구 섬유단체·수출단체 모두 목표도 방향도 없이 이웃나라 후쿠이 산지 정보 하나 제대로 파악못한 무능이 자초한 비극이고 불행이다. 하루빨리 후쿠이를 벤치마킹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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