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후쿠이산지 고감성섬유로 일취월장... 대구산지는 천수답경영 폭망

마루이직물 1300대 혁신직기 풀가동 적자 생각못해
도레이 클러스터 제·편직, 염색가공, 사가공 안정 가동
도레이 고기능성 소재 지원, 유니클로 대량 수요, '탄탄대로'
대구산지 오더 고갈 설비 줄줄이 세워놓고 경기 타령

“일본 섬유산업은 일취월장 하고 한국은 폭망 중이다.”

최근 일본 후쿠이 도레이 클러스터를 돌아보고 온 대구직물업계 대표단의 장탄식이다.

일본 후쿠이 인근 가나자와에 위치한 67년 역사의 마루이직물 회사는 혁신직기 규모가 1300대에 달한다. 그 회사는 24시간 풀가동하고 있다. 130년 역사의 후쿠이경편은 요즘 경기가 좀 나빠져 자체 편직기 91대와 하청 편직기까지 200대를 가동하면서 가동률이 70% 남짓이다. 

130년 역사의 염색가공 전문의 사카이오벡스도 전체 설비를 풀가동하고 있고 사가공업체 역시 감산없이 설비를 가동하고 있다. 도레이 클러스터에는 후쿠이와 가나자와 지역에 85개사가 집산지를 구축하면서 전·후방 관련업체가 철저한 협업체제를 유지하며 한번도 적자 보지 않고 설비를 풀가동하고 있다.

반면 대구산지는 오더 고갈로 가동률이 50%를 오가며 생사기로에서 헉헉거리고 있다. 하반기들어 해외로부터 수출 오더가 끊겨 생지 재고가 쌓여 창고는 물론 공장 마당까지 야적할 공간이 없을 정도다.

비축용으로 재고를 쌓아놓은 것도 어느 정도이지 원사값을 감당할 수 없어 추석연휴에 공장을 12일간 장기 휴무한 기막힌 상황이 대구산지의 현주소다. 제조업이 무려 12일이나 공장을 세운다는 것은 미래가 가물가물하다는 논리다.

도대체 화섬산업 위주인 한국과 일본의 극명한 양극화 현상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큰 그림에서 볼 때 일본은 도레이와 같은 세계적 화학·섬유기업과 유니클로라는 글로벌 의류패션기업의 존재가 미들스트림의 차별화 기술 지원과 대량 수요시장을 뒷받침한 원동력이라 볼 수 있다.

여기에 중소기업 스스로 강도 높은 고기능·고감성 차별화 전략에 올인하며 업계가 질서있는 경쟁을 통해 협력과 공조를 펼치고 있다. 이와 함께 협단체들이 글로벌 정보 제공과 업계간의 공조를 적극 지원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도레이 후쿠이·가나자와 클러스터는 2004년 정부 지원없이 순수 민간단체로 설립돼 스트림별 수직 및 동종업계간 수평적 협업화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일본의 국민기업 도레이는 세계적인 화학·섬유기업으로서 다양한 신소재를 개발해 고기능성·고품질·고감성 섬유를 클러스터 기업에 제공한다. 생산된 제품의 판로도 지원하고 자금도 지원해 미들스트림을 육성한다.

후쿠이 도레이 클러스터에서 생산된 차별화 원단을 가장 많이 유니클로에 공급해 대량 시장을 확보한다. 심지어 도레이가 90%를 출자한 일촌(一村)이란 상사기능 회사가 도레이 클러스터에서 생산된 원단을 판매해주고 있다.

클러스터 업체간 차별화 원단 개발 경쟁을 시도하면서 절대 카피하거나 시장을 침해하지 않는 상도의를 지키고 있다.

이같은 복합적인 요소가 톱니바퀴를 형성해 맞물려 돌아가면서 80년대부터 한국과 대만 그리고 중국에 빼앗긴 경쟁력을 되찾아 기사회생한 것이다.

한국 각자도생 과당경쟁, 도레이같은 원사메이커 없고 패션업체 국산 외면

후쿠이 성공사례 배우고 업계·단체·연구소 판 바꾸는 결단 내려야

반면 한국은 화섬대기업과 제직·편직·염색가공 업체는 물론 생산자단체·수출단체 모두 우물안 개구리에 도취돼 변화와 혁신을 외면한 결과다.

화섬사 전성기 시절 화섬메이커는 눈앞의 이익에 도취돼 미들스트림을 이끌어 가는데 관심이 없었고 결국 중국세에 밀려 거덜나고 말았다. 유니클로 같은 독보적인 글로벌 패션기업은 없지만 수많은 패션기업들은 국산 소재를 외면했다.

이같은 외생변수의 취약상태에서 직물·편직·염색 업체들은 각자도생에 매달려 들쥐떼 근성을 버리지 못했다. 경쟁사가 내놓은 히트 상품에는 너나없이 뛰어들어 가격을 후려치고 종국에는 시장을 초토화 시켰다.

일본이 조용히 도약하는 기간 한국 화섬메이커와 화섬직물업체는 잠자고 있었다. 섬산련을 비롯한 그많은 섬유단체, 수출단체, 연구소 등은 현상에 안주하며 2시간 거리의 후쿠이 상황을 관심도, 견학도 안했다.

업계만 탓할게 아니라 단체·연구소, 무엇보다 섬유패션산업 정책을 담당하는 정부와 지자체 책임도 면할 수 없다.

지난 9월 20일부터 2박3일간 도레이 본사와 후쿠이·가나자와 클러스터를 돌아본 대구 섬유업계 인사들은 통렬한 반성과 함께 ‘이대로는 안된다’는 절박감을 확인했다. 공멸위기에 처한 대구 섬유산지를 기사회생시킬 수 있는 처방과 집도가 발등의 불임을 늦게나마 인식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조영일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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