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가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그 중심의 국회는 망가졌다. 오로지 진영간에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정치공학적 방정식이다. 비타협과 불신, 배척의 투쟁일 뿐이다.

국회는 만능의 괴물이다. 대한민국에서 국회를 넘지 못하면 할 수 있는 제도가 없다. 무소불위 막강한 권력이다. 대통령이 아무리 소신대로 하고 싶어도 종국에는 국회의 두꺼운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오장육부가 뒤집혀도 협치하지 않고는 되는 일이 없다.

하나의 예증으로 때마침 야당이 백해무익한 노란봉투법을 한사코 강행 처리하면서 경제·산업계가 묵사발 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산업현장을 연중 파업투쟁으로 내몰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일본의 초강성 춘투와 노조 만능의 영국병을 치유하는 결정적인 처방은 노조의 무분별한 파업에 배상책임을 지게한 것이었다. 이 안전장치마저 풀어버리면 노조천국·파업천국은 받아 놓은 밥상이다.

대통령 거부권이 예상되지만 처음부터 국민 혈압 올리는 어깃장의 야당을 설득해 경제·산업계가 우려하는 악법을 막았어야 했다. 협상과 양보, 협치가 그래서 필요하다. 여야가 오기를 부리는 것도 정도 문제다.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앉아있지 말고 벤더·브랜드 찾아가야

본질문제로 돌아가 온 산하가 총천연색으로 변한 이 좋은 계절 37회 섬유의 날 행사가 10일 성대하게 열렸다. 매년 한국섬유산업연합회가 주관해 섬유패션인의 축제의 한마당이지만 올해처럼 가라앉다 못해 우울한 해는 드물다. 주최측이 분위기 쇄신을 위해 역대급 500여명을 초청해 잔치를 벌리지만 웃는 겉모습과 달리 속으로는 착잡함에 울컥할 수밖에 없다.

한국경제의 일등공신 섬유산업은 어느덧 부식상태가 심각해 소멸을 향한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다. 요즘 대구산지부터 추풍낙엽처럼 우수수 무너지고 있다. 불과 2~3년 전까지도 소가 밟아도 끄떡하지 않을것 같던 중견업체들이 떡쌀 담그는 참담한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섬유의 날 행사가 축제속에 잔치를 벌여야겠지만 한편으로는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줄 모르는 행태’다.

부서지고 망가지는 대구와 경기북부, 부산 섬유업계의 참상은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 이제 시작의 전조일뿐 앞으로 상황은 그야말로 시계 제로다. 직물 생산업체들은 하반기 들어 신규 수출오더가 사실상 전멸상태다. 대구 섬유업계에 그나마 가동률을 높여주던 구원투수 자라, 망고, H&M 등 글로벌 초일류 SPA 브랜드의 신규 오더가 고갈돼 장기화되고 있다. 설상가상 우크라 전쟁에 시달린 섬유수출이 이스라엘·하마스 확전으로 시장이 급냉됐다.

신규 오더가 말라버린 것은 물론 5~6월에 받아놓은 중동지역 직물오더까지 무더기 캔슬됐다. 이미 선적된 수출대전은 수금이 안된다. 오더도 없고 자금이 고갈된 중소 직물 수출업체들은 뒤주가 바닥을 보여 긴급자금 지원을 호소하고 있으나 소용없는 일이다. 전쟁이란 불가항력적 상황에서 수출대전을 못받아 긴급자금을 요청했으나 “코로나때 지원받은 기업은 3년이 경과돼야 가능하다”고 한마디로 거절한다는 것이다. 이럴때 숨넘어가는 중소 섬유수출업체에 긴급자금을 지원해 달라고 대정부 건의에 앞장서야할 섬유산업연합회나 관련단체들은 강건너 불구경이다. 여기저기 하는 꼬락서니가 답답하다 못해 분통이 터진다.

하지만 각자도생 시대에 원망하고 탓해서 될일이 아니다. 일본 후쿠이처럼 도레이 같은 국민기업이 소재와 자금을 지원할 것도 아니고, 유니클로 같은 대량 수요처가 없는 척박한 처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처방의 하나가 국내 섬유패션 스트림간 소통과 협력이다. 최근 대구에서 거론된 것처럼 국내 글로벌 벤더 물량 20%만 국내에서 소재를 조달하면 대구가 살 수 있다는 점을 직시하고 실행해야 한다.

미국 경기의 장기침체로 벤더들도 지금 많이 어렵지만 기왕 조달해서 사용하는 원단소재를 국산으로 일부 할애하는데 적극 협조를 부탁해야 한다. 이 문제는 앉아서 저절로 해결해 줄것으로 기다릴 것이 아니라 찾아다니며 애원하고 부탁해야 한다. 적어도 중견 또는 대형 벤더 오너의 의지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상생차원으로 설득해야 한다. 대구업계 중진들이 팀을 만들어 벤더 오너를 면담하는 치밀한 준비와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내수 패션브랜드도 마찬가지다. 연간 내수패션 시장규모가 40조원이던 것이 2~3년 사이에 50조원으로 늘어났다. 결코 5200만 국민의 소비시장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 벤더 오너와 마찬가지로 패션브랜드 오너를 대구업계 대표가 단체로 방문해 “함께 멀리가자”고 애원하고 사정하는 노력을 펼칠 필요가 있다. 각기 기업에 토사곽란이 났는데 적당히 앉아서 소독약으로 모면하려는 방식부터 버려야 한다.

패션그룹형지가 최병오 회장 섬산련 회장 취임 이후 득달같이 국산소재 사용을 채근해 최근 인천 송도사옥에서 대구 직물업계 5개사와 단체상담을 가졌다. 회사 CEO와 디자이너들과 대구 직물업체 대표 5명이 원단 샘플 스와치를 차에 싣고 인천으로 가 상담한 것이다. 당장 무슨 원단을 얼마만큼 계약했는지 모르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 패션그룹형지뿐 아니라 수많은 타 브랜드에게도 이런 방법으로 접근해 상담기회를 가질 필요가 있다.

물론 내수 패션브랜드들이 처음부터 “어서 오시라”고 환영하기 어렵겠지만 누군가가 앞장서 손을 내밀면 안될 것도 없다. 필요하면 지방자치 단체장이나 섬산련 등 단체가 전면에 나서 업계와 함께 방문해 길을 트는 방법을 강구할수도 있다. 지자체장은 지역기업과 주민을 위한 일이라면 망설일 이유가 없다. 과거 문희갑 대구시장은 삼성그룹 故 이건희 회장실에 “30분만 면담할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었다. 몇차례 시도 끝에 이 회장을 만나 면담시간이 두시간이나 길어졌다. 결과는 대구에 삼성자동차 공장 설립에 원칙적으로 합의하는 대어를 낚기도 했다. 그야말로 세상사 두드리면 열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불황에도 오더폭탄 맞은 신한에서 배우자

얘기는 다르지만 필자가 요즘 돌아가는 통박이 답답하고 분통이 터져 오랜만에 지난 8일 오후 안산 소재 한국 제일의 아웃도어 원단 생산업체 신한산업을 잠깐 방문했었다. 기술과 품질, 규모 모든 면에서 세계 일류기업 위상을 구축하고 있는 것은 물론 오더가 넘쳐 수개월치 수출 및 내수용 오더 폭탄이 터진데 깜짝 놀랐다. 연간 매출 1000억원, 영업이익 100억원 규모인 이 회사 생산현장을 둘러보고 탄성을 지르는 것은 규모의 대형화는 물론 준비공정부터 염색·라미네이트코팅설비, 마지막 검사, 패킹시스템까지 최첨단 자동화 설비로 무장돼 있었다. 160명의 생산직 가운데 외국인 근로자는 겨우 6명뿐이면서 주야 24시간 가동하고 있었다. 미국과 캐나다, EU, 일본 그리고 내수 브랜드까지 글로벌 유명 브랜드가 이 회사의 기술과 품질·납기·사후관리에 전폭적인 신뢰를 갖고 거래를 늘리고 있는 점을 확인했다. 대구 산지도 첨단 자동화 투자에 앞장서 품질과 기술, 생산성, 납기엄수로 바이어 신뢰를 쌓는 경쟁력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중언부언하지만 울타리가 사라진 지구촌에서 어느나라 어느기업이건 품질 좋고 가격경쟁력과 납기엄수, 사후관리만 잘하면 오더는 몰리게 돼있다. 시장탓, 경기탓, 제도탓은 흘러간 노래다. 어차피 고비용 저효율 구조의 악조건에 몰려있는 환경에서 인력난, 고임금 등을 극복하기 위한 처방은 첨단 자동화 시스템이 해답이다. 삽질하지 않고 물이 고이기를 바라며 국산소재 안사준다고 원망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오게 만들어야 한다. 투자 없이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 싸고 좋은 소재 외면할 수요자는 없는 것이다.

본지 조영일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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