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인 것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절제되고 모던하게 풀어내는 게 저의 작업이죠. 패션을 이해하는 전 세계 마니아들에게 옷을 입히고 일관된 의상철학을 인정받는 아티스트 크리에이터로서 정상에 서고 싶습니다."한두번 참가해 크게 호응을 얻었다해도 지속적으로 창조적인 컬렉션을 보여주지 못하면 곧 잊혀지는게 파리패션계의 냉혹한 현실. 이같은 치열한 경쟁속에서 지난 96년부터 매회 빠짐없이 올해로 9번째 파리 프레타포르테에 참가하고 있는 디자이너 문영희는 외롭지만 의연히 한국 디자이너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93년을 전후해 이신우, 진태옥, 이영희, 홍미화씨등 내노라하는 디자이너들이 앞다투어 파리로 진출했을 때 우리 패션계는 마냥 기대에 부풀었다. 일본 디자이너들이 파리에서 이뤄낸 '동양바람'을 한국 디자이너들이 다시한번 일으키리라고 본 것이다.그러나 그로부터 7년여가 지난 지금 이영희씨가 패션쇼 아닌 전시형태로 참가하는 것을 제외하면 이들 디자이너는 모두 각각의 사정으로 파리무대를 포기한 상태. 96년 뒤늦게 합류한 문영희씨만이 외롭게 파리를 오가며 발군의 성과를 일궈내고 있다. 문씨는 IMF이후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파리컬렉션 참가를 중단하지 않았다."패션산업을 고부가가치화 하기 위해서는 해외 브랜드 마케팅을 강화해야 합니다. 최근들어 오뜨꾸뜨르가 사양세에 접어들고 프레타포르테에 신진세력들이 대거 몰려들고 있어요. 여건이 안좋고 힘들다고 중도에 포기해 버리면 우리나라 패션의 미래는 없습니다."지난 2월 26일 파리 에스파스 코민갤러리에서 열린 '2001 F/W 문영희 파리컬렉션'에서 문영희는 알파카 캐시미어 실크등 천연 고급소재를 활용해 60년대 소년·소녀들의 천진한 모습을 표현함으로써 현지 언론과 해외바이어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이번 작품 주제처럼 실제 모습도 언제나 주름살 하나없는 팽팽하고 뽀얀 소녀같은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는 문영희는 이번 쇼에서 우아하면서도 절제된 디자이너의 지적 감수성을 아주 자연스럽게 연출했다는 평을 받았다.우리 전통의상에서 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선을 이용한 팔 소매와 스커트를 비롯 전통적 소재인 명주를 사용해 서구의 마름모 문양을 조각보처럼 잇댄 작품, 그리고 벨트를 한복 저고리 옷고름처럼 맨 스타일등은 특히 큰 관심을 끌었다.이는 문영희가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우리문화와 서구문화의 접목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쇼가 끝난후 바이어의 주문도 늘었다.문씨가 기쁘게 생각하는 것은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태리외에 이전에는 반응이 없었던 일본, 홍콩에서도 주문이 들이닥친 점과 해외 유력 잡지와 방송에 최정상급 브랜드와 나란히 실리고 있다는 점이다.엘르, 마리끌레르, 코스모폴리탄에 이어 이번에는 데뻬시모드 패션잡지 2·3월호에 계속해서 컬렉션화보가 게재되고 프랑스 M6TV에 쇼전체가 녹화 방송될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쇼만 하고 그냥 국내에 들어오면 의미가 없어요. 세계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른 데에서 볼 수 없는 나만의 개성을 표현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사후관리에도 만전을 기해야 되지요. 저는 1년에 절반을 파리에서 지냅니다. 파리 현지법인을 통해 오더수주와 판매를 총괄하고 있지요."이어 문씨는 "그들이 일하는 방식에 맞추는 데만 2년정도, 또 내가 원하는 고급부??디자이너존에서 인정을 받는데 최소한 3∼5년이 걸립니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문」브랜드를 세계 널리 알릴 수 있다는 얘깁니다."사람이 즐겁게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고 싶어서, 또 행복하게 일하고 싶어서 파리로 진출했다는 문영희씨는 디자이너가 옷제작에서 경영까지를 모두 책임지는 한국과는 달리 생산과 유통이 분리되어 디자이너는 창작에만 몰두하면 되고 패션쇼와 비평 등 다양하고 생산적인 패션문화가 서로를 이끌어 주는 선진 환경에서만 선진 패션 창조가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성균관대 불문학과와 이화여대 디자인대학원 의상학과를 졸업한 후 화신레나운(주) 칩디자이너를 거쳐, 지난 73년 여성복 브랜드 「문」을 런칭한 문영희는 서구적인 느낌의 모던함을 우리 전통의 자연스러움으로 연출하는 자존심 강한 크리에이터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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