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일본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이미 포기했던 우리정치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었다. 우여곡절 끝에 여야 영수회담이 열리고 두사람이 환하게 웃는 도배질 사진을 보며 조금은 안도했다.그러나 이번만은 '야바위극이 아니겠지' 하는 순진한 기대는 하루만에 물거품이 돼 국민의 뒤통수를 때렸다. 여야가 또 다시 가슴에 불을 지르는 적개심을 품고 추악한 진흙탕 싸움에 몰두하고 있다.아프칸에서는 전쟁이 터졌고, 국가경제는 수렁으로 빠지는데 어느 함량미달 의원은 난데없이 대통령 사퇴론을 들고 나왔다. 한 번 튀어보겠다는 소영웅적 발상인진 몰라도 이런 궤변으로 국가원수를 능욕하는 것은 최소한의 금도 마저 저버린 음모와 모략의 술래잡기에 불과하다'天壤之差' 韓·日 신소재한마디 더하면 '불이야' 소리치면 내집부터 둘러보는 것이 사람의 본능이다. 9.11 미국 테러사건이 터졌을 때 국민 모두 한편으론 몇 년전 라면이 동이 났던 북한대표의 섬뜩한 '서울 불바다' 망언을 연상했다. 지척에서 적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는 북한이 행여 '라덴'의 수법을 배우지 않을까 가슴을 졸였다. 가설이지만 이같은 천인공로할 테러사건이 서울에서 있었다면 그거야말로 박살을 의미한다.햇볕정책에 대한 속도조절은 인정하지만, 서해교전때나 이번 테러사건 때에 라면이 안팔리는 태연자약한 원인이 무엇인지 국민 모두가 제대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또 여기에 북한에 '퍼준다'는 식의 매도도 신중을 기하면서 정련됐으면 싶다.DJ정권 출범 이후 지금까지 북한에 지원된 금액이 총 1억2,000만달러 수준으로 밝혀지고 있다. 물론 금강산 관광비는 제외된 것이다.그러나 YS정권 때 북한에 지원된 2억6,000만달러와 비교하면 절반도 안된다. 합병 절대 불가를 외치며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는 대만이 중국에 1,800억달러를 투자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철저한 군사력 우위전략을 고수하면서 한편으론 가진자가 굶주린자를 위해 얼르고 달래는 방법도 전투 못지않게 중요한 전략이다. 맹장(猛將)이자 지장(智將)으로 소문난 예비역 육군중장 강촌(江村) 이재전 장군이 최근 펴낸 칼럼집 '진정한 승리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다'가 이를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다시 우리 얘기로 돌아가 며칠전 21세기 최초의 국제섬유기계 올림픽인 OTEMAS를 참관하기 위해 오사까에 머물면서 일본 패션의 소재경향을 눈여겨 보았다. 추석을 전후해 줄초상이 난 대구 합섬직물업계를 걱정하면서, 무슨 돌파구가 없을까 골돌히 생각하며 백화점 패션 코너와 직물 전문상가를 이 잡듯 뒤졌다.백화점에 진열된 패션 의류를 일일이 체크하면서 놀란 것은 고급이나 중급 막론하고 마이크로원사에 복합가연 소재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 인조스웨이드로 만든 박지 블라우스까지 등장할 정도로 초극세사 소재가 대중화되고 있었다.한마디로 여성, 남성, 정장, 캐주얼, 가릴 것 없이 마이크로얀의 복합가연 소재 일색이었다. 오사까 중심가에 위치한 원단전문상가 진열품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서울 백화점과 동대문 원단상가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가격은 야드당 2,000엔 수준으로 미화20달러 수준이었다. 아무리 유통마진을 고려하더라도 야드당 1∼2달러짜리에 목을 매고 있는 우리 합섬직물업계와는 가는 길이 달랐다.후꾸이 산지가 한국과 중국에 밀려 끝없이 추락하면서도 이정도 현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발빠른 소재개발이 동인이었음을 한눈에 읽을 수 있었다. 한국이 따라오지 못한 분야에 한발 앞서 다가가 제값 받고 있는 앞선 전략에 무심이상의 많은 것을 느꼈다.물론 일본 합섬직물업계의 이같은 마이크로 소재 일색은 원사메이커의 앞선 기술이 선도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도레이를 비롯한 세계 최대 화섬메이커의 기술력이 밑바탕이 돼 직물업계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여기에 비해 대구산지는 구조에서부터 경영자의 의식 자체가 천양지차이다. 근본적으로 우리 화섬메이커들의 소재 개발 능력은 일본에 비해 게임이 안되는 것은 새삼스러운게 아니다.심지어 일본은 커녕 그 흔한 DTY사 마저 75∼72에서부터 75∼144, 150∼288 품목들은 대만에 비해 품질은 떨어지고 가격은 비싼 취약한 구조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일본은 0.3데니어 이하 소재가 마구 쏟아져 자연섬유보다 비싼 직물이 양산되고 있는데 반해 우리 합섬직물은 소재 빈곤으로 고급은 일본에, 중급은 중국에 치여 허우적 거리고 있는 것이 현주소다. 그렇다고 불황의 원인을 원사메이커의 소재 빈곤으로만 몰아세울 수 없는 우리 내부의 구조적 문제를 변명할 여지가 없다. 우선 대구합섭직물업계 기업인들의 의식이 잘못됐다.몇번이고 강조하지만 지금은 공급이 수요를 휠씬 능가하는 과잉시대에 살고 있다. 속담에 '외할머니 떡도 많이 나오면 싸다'고 했다. 한정된 시장에 같은 품목을 소나기 수출하는데 값이 폭락하지 않을리 없다. 그래서 남이 안만드는 차별화, 못만드는 특화전략이 필요한 것이다.차별화가 꼭 최고급품은 아니다. 오히려 고급품은 시장규모가 작아 거기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것은 퇴영을 의미한다.그래서 대구 산지가 살기 위해서는 소량의 백화점 물건보다는 대량의 동대문 시장을 석권하는 전략이 요구되고 이것이 바로 대중성의 대량 수요물건을 차별화 시켜 특화하는 전략인 것이다.물론 이같은 훈수가 씨름선수의 힘을 모르고 무조건 '한다리 들고 한다리 감으라'는 주문으로 들릴 수 있다. 자금력도 개발기술도 없는 기업에 이런저런 주문을 하면 알아듣지도, 실현가능성도 없는 것을 모른바 아니다.그렇다면 삼각지를 돌아가지 않고 바로가는 가장 손쉬운 방법부터 택해야한다. 자기가 실력이 없으면 귀동량, 눈동량이라도 부지런히 해야 생존이 가능한 것이다.바로 우리보다 기술이 훨씬 앞선 일본의 기술정보를 벤치마킹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일 수 있다. 순발력 있는 기업인은 수시로 오사까에 건너가 새로운 패션소재, 각광받는 원단 샘플을 무차별 구입해 자기것으로 변신시켜 성공하고 있다.의욕 없으면 간판내려야 일본서 유행하는 원단이 전부 성공할 수 없지만 적어도 열가지 중 서너가지는 분명히 히트할 수 있다. 그래서 대구 직물업계가 일본원단을 카피해 팔 수 있는 순발력이라도 갖추었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안타까운 주문이다. 불황을 모르는 기업중에는 이같은 방법을 택하는 곳도 적지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대구에서 일본 섬유도시 오사까는 1시간 남짓이면 가는 곳이다. 그것마저 외면하는 방안퉁수 기업인들이 딱하기 이를 데 없다. 더구나 대구직물업계는 날이 갈수록 경기회복은커녕 빙하기로 접어들면서 생존의 목졸림을 강요받고 있다. 추석을 전후해 터지기 시작한 부도사태는 10월말, 11월말, 12월말이 분수령이 될 수밖에 없다.대구 산지가 이 절박한 상황에 더 이상 우사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환골탈퇴해야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내실력이 없으면 남의 것 베끼는 모방이라도 제대로 해야한다. 그런 의욕마저 없다면 하루빨리 간판 내리고 문닫아야 한다. (本紙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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