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대학교 생활과학대학 의류학전공 교수 염 혜정 며칠 전 인기 정상에 있던 한 여성 탤런트가 필로폰 투약 혐의로 구속되는 사건이 있었다. 연예 스캔들이나 잠잠할 만하면 거론되는 섹스 비디오 의혹 등 연예인들과 관계된 사건이라면 무엇보다 세인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관심을 모으기 마련이지만, 특히 이번 사건은 소위 '황수정 쇼크'라 불릴 정도로 그 사회적 파장 또한 아주 크다. 드라마 '허준'의 '예진아씨'에서와 같이 우리가 그 동안 브라운관을 통해 접했던 이미지와 그 괴리가 큰 만큼 우리의 충격과 실망감은 더욱 큰 것으로 생각된다. 황수정은 우리사회가 만들어낸 대중 스타이다. 스타는 실생활이 아닌 가공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따라서 우리가 느끼는 충격과 실망감은 상업적 시스템이 생산한 이미지에 속았다는 일종의 허탈감이라 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비단 연예인뿐이겠는가. 선거철의 정치인이나 광고와 같은 정치적, 상업적 차원에서부터 일류 브랜드와 최신 유행상품으로 몸을 치장하는 개인적 차원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주변에는 이미지 조작의 예가 많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즉 우리는 이미지 메이킹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미지란 대중문화의 기초를 이루는 일종의 이벤트 과거로부터 우리는 '본다'는 행위에 의해 사물을 지각하고 판단해 왔다. 이미지란 사물을 보는 방법의 구체화된 형태이며, 그 이미지에 관한 판단이나 지각은 우리 자신의 견해와 경험에 의존한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미디어와 전자 테크놀로지의 발달에 따라 '본다'는 행위가 복잡한 상황을 유발시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보여주기' 위하여 생성된 이미지들로 둘러싸이게 되었으며, 그 이미지의 흐름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끊임없이 우리의 눈에 들어오고 있다. 이제 우리는 방송사에서 새롭게 기획된 프로가 나올 때마다 보다 멋지게 변신했을 TV 속의 주인공과 그 이미지들을 기대해 볼 수도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새로운 계절이 올 때마다 또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백화점은 소비자의 욕망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다양한 전략과 연출로 무장한 이미지들의 종합 무대라 할 수 있다. 그에 따라 소비자들은 생활에 필요하기 때문에서가 아니라 계층감각을 확인하기 위해, 혹은 유행에 뒤지지 않기 위해, 혹은 타인과 구별되기 위해 이미지의 소비를 즐기고 있다. 이는 브랜드 상품이나 캐릭터 상품의 인기 내에 잘 나타나 있으며, 일반적으로 상품의 성능과 기능보다 색과 디자인, 내용보다 포장이라는 부가가치가 판매를 좌우하는 경향과도 관련된다. 스타일 소비와 이미지 마법 그러면 개인적 차원에서는 어떠한가. 패션이 다양화하고 패션산업이 스타일의 소비를 부추기기 시작하면서 이미지의 마법은 우리 개개인의 마음을 매료해 왔다. 우선 스타일은 자기표현이라는 환상 하에, 우리는 매스미디어가 묘사하는 다양한 이미지들을 선택하여, 정해진 규칙에 따라 우리의 몸을 치장한다. 요즘은 이미지가 서로 다른 미스매치의 것을 능숙하게 코오디네이트시키는 것이 색다른 감각이라 할 수 있는데, 그 경우에도 대개 스타일 내에 숨겨진 코오디네이트상의 암호를 찾아볼 수 있다. 그로부터 보면 결국 우리가 말하는 패션감각이란 특정 라이프 스타일을 선택하고 그 이미지를 구현하는 상품들을 수집해 가는 프로세스로부터 생기는 것이며, 어떤 스타일에 적극적으로 따르면 따를수록 자신만의 감각을 창조해 갈 수 있다는 역설이 성립되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지탱하는 것이 과잉 공급과 과잉 소비라는 현 패션 시스템이라는 점이다. 정보의 공유화를 바탕으로 하여 많은 사람들이 소유할 수 있는 가격으로 다양한 물건이 대량으로 나와있는 현재, 많은 나라에서는 과잉 공급 상태의 디자인 상품이 넘쳐나고 있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필요 이상의 의복을 소유하고 물건에 어떤 손상이 없는 채로 파기되어 가고 있다. 그 속에서 디자이너의 역할이란 '세련된', '도시적인', '고급스런' 등의 이미지를 쇼와 광고 등을 통해 표현하고, 패션을 비즈니스로 삼아 대량 판매하는 것에 중점이 놓여 있다. 그러나 이미지만 좋다면 물건으로서의 질과 만든 과정 등은 관계없다는 현재의 사고로서는 제작자의 창작 동기와 자부심마저도 저하해 버린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21세기 패션은 '내부로부터의 접근'을 최근 이러한 풍토에 위기감을 느끼고 앞으로의 패션은 새로운 관점으로부터 접근하여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리고 21세기의 패션은 그러한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어떠한 힘을 발휘해 나갈 것인가에 따라 그 미래가 좌우되어 갈 듯한 느낌이다. 그 중 하나가 앞으로의 패션은 고령화 사회, 환경, 건강 문제 등 일상생활과 생활환경에 보다 밀접해야 한다는 관점이다. 즉 지금까지의 의복이 외면적인 면에 치우쳐 왔다면 앞으로는 제작자와 사용자의 마음, 즉 '내부로부터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21세기에는 제작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담긴 의복을 통해 우리 인간을 생각하고, 자연을 생각하고 환경을 생각해 나가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제작자와 의복, 사용자가 같은 관점에 서서 같은 가치관을 그려나가는 것, 그것이 미래의 패션 디자인에게 주어진 중요한 테마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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