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8회 무역의날인 지난 30일은 섬유인 가슴에 겨울삭풍이 유난히 강하게 느껴졌다. 무역수지흑자 일등공신인 섬유수출이 수직강하하면서 올해 훈·포장자 숫자가 가장 많이 줄어든 것이다.실제 지난 10월 섬유수출은 업종별 기복은 있지만 작년동기 대비 무려 26.5%에 달하는 최악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90년대이후 가장 혹독한 불황을 겪은 것이다. 이 극심한 불황에 꿋꿋하게 고도성장을 이룩한 올 무역의날 수상자들에게 진심으로 치하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물론 섬유뿐 아니라 전체수출도 10월에 20.2%나 감소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주력품목이 세계경제 위축으로 직격탄을 맞았다.그러나 '남의 병이 내 고뿔만 못하다'고 힘있는 반도체 걱정은 뒷전이고, 가물가물한 섬유업계의 생존전략이 절박해지면서 악에 받친 막가는 얘기가 성행하고 있다. 합섬직물업계 일각에선 아무리 소리쳐도 메아리 없는 과잉직기 폐기자금 1,000억원을 지원 받기 위해 집단 행동도 불사하자는 극한발언이 속출하고 있다.유난히 썰렁한 올 무역의날농민들이 쌀값 인상을 주장하면서 파국적인 행동을 강행하듯이 대구직물업계도 신천다리 밑에서 원단 천만 야드를 불사르며 집단봉기를 하자는 각혈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물론 이같은 극한주장은 설득력도 당위성도 없지만, 기업하기가 얼마나 팍팍하고 고달프면 이처럼 막가는 소리가 나올까 싶어 동정이 간다.어찌보면 이같은 주장이 섬유산업에 유독 특혜를 달라는 얘기가 아니다. 공적자금 12조가 과다 집행되고, 30조원 이상이 회수 불능상태라면 불과 1,000억원을 지원해 대구산지 수백 수천개 업체를 살리자는 데 그렇게 인색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물론 정부 입장에선 특정산업의 나무만 보기보다 전체산업의 숲을 보아야한다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클 것으로 본다. 그러나 한국을 대표하는 섬유산지, 그것도 세계 제일의 섬유산지라고 불리는 대구가 고립무원의 한계상황에 놓여있을 때 응급처방을 외면하고 교과서적인 경제논리만 고집해야 하는가 하는 지적이다.답답하고 분통이 터지는 것은 이럴 때 앞장서야할 정치권이 뒷짐지고 있다는 점이다. 솔직히 미국 같았으면 상·하원 섬유위원회 소속위원들이 들고일어나 정부에 압력을 가해도 열두번 가해 가닥이 잡혔을 것이다. 명색이 국회섬유산업연구회가 있고 대구출신 국회의원이 부지기수인데도 누구하나 이 문제를 들고 나와 총대를 메는 의원이 별로 없다는 점에 실망과 우려를 금할 수 없다.몇사람의 교장 교감을 위한 교원 정년1년 연장이 그토록 중요하고, 검찰총장 찍어 내리기 프로젝트가 민생보다 더 중요한지 국민들은 헷갈린다. 세계 제일의 섬유산지 대구를 살리고 눈앞에 닥친 월드컵 때 중국인 10만명이 몰려오면 한국의 패션제품 하나라도 더팔 수 있도록 앞장서서 지원하는 그런 선량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그런데도 여의도에 퍼질러 앉아 날카로운 겨울바람도 아랑곳 않고 죽기살기식 상살의 정치로 날밤을 세우는 여야정치권에 넌덜미를 느낀다. 오직 내년 대선 외에는 안중에 없는 협량한 여·야안정치권이 노기 등등한 민심을 제대로 읽었으면 싶다.네탓타령은 그만두고 보다 근본문제는 대구직물업계의 자기반성이다. 무차별 설비를 확장하고 '남의 물에 게 잡는식'의 카피경쟁과 투매경쟁으로 일관했던 지난날의 오류를 직시하고 거듭 태어나는 자세가 전제돼야 한다.누가 뭐래도 대구직물업계가 오늘과 같이 표류하는데는 직물업계 스스로의 수많은 자가당착 때문이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때로는 어리석고 욕심에 젖은 서툰 행각이 많았다.뒤늦게 얼씬하면 중국 탓으로 돌리지만 중국의 추격은 이미 10년전부터 수없이 예고돼왔다. 그런데도 대응준비는 항상 느슨했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겠지'하는 안일한 대응으로 일관했다.사장이 생산현장에 틀어박혀 25시를 몰두하며 이렇게 짜고 저렇게 변형시키는 각고의 노력을 펼쳐도 헉헉거리는 판에, 공장을 간부들에게 맡겨놓고 평일날 골프장으로 가는 것이 다반사 아니었던가, 중국산이 해외시장에 몰려오면 피해갈 전략을 마련해야지 덮어놓고 싸구려 중국산에 밀린다고 엄살을 하면 종착역은 떡쌀 담그는 것밖에 다른 대안이 없는 것이다.올 하반기부터 대구산지에 대형 부도사태가 빈번해진 것도 다 이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낙수물에 바위가 뚫린다'고 그동안 수년간 누적적자에 골병든 것이 곪아터지고 만 것이다. 지난날은 그렇다 치고 더더욱 큰 문제는 앞으로가 걱정이다. 올 하반기 최악으로 치닫던 수출경기가 11월 들어 바닥은 탈출했다지만 획기적으로 나아질 기적을 바라는 것은 신기루를 찾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물론 합섬직물경기가 바닥을 쳤다는 것은 더 이상 나빠질 이유가 없다는 의미이다.그만큼 지금의 상황이 마지막 밑바닥이었으며 여기에 9·11미국테러사건이 진정되고, 아프카니스탄 전쟁이 종식되면 다소 호전되는 것은 부인 못할 사실이다. 문제는 호전되더라도 얼마나 좋아질질 것이냐 하는 점이다.불행하게도 잘해야 접시물경기일 뿐 지난날 과열을 우려했던 성수기 경기는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같은 점에 주안점을 두고 대구업계가 정신 바짝 차리며 대응해야 된다고 본다.중언부언 같지만 밤낮을 가리지 말고 한편으로 차별화·특화전략을 구사하며 틈새시장을 꾸준히 개발해야 된다. 다시 강조하지만 '지금이 호황기'라는 대구 섬유업계 어느 신지식인의 충고를 명언으로 알고 혼신의 노력을 경주하지 않으면 생존자체가 불가능하다.레귤러 품목을 짤 바엔 중국과 원가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수준으로 파격적인 전략을 마련해야하고, 차별화 품목은 아예 상당기간 따라오지 못하도록 특화 시켜야한다. 과거와 같은 어영부영 사고로는 이 무서운 급류에 조난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한다.더불어 한가지 아쉽고 안타까운 것은 대구 합섬직물업계가 현재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상당수가 내부적으로 온전한 상태가 아님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이 절박한 상황에서 유일한 희망은 신소재개발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다.그러나 우리의 화섬업계 구조로 봐 신소재개발이 녹록치 않고, 더구나 소량공급은 아예 기피되고 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대구 한국섬유개발연구원의 신제품개발센터의 기능이다.방사설비 훼방놔선 안 된다. 여기서 더욱 강조되고 있는 것은 첨단 방사설비를 응용한 다양한 신소재 개발이다. 독일같은 선진국도 레귤러화섬 원사를 중국에 넘기고 이같은 첨단 방사설비를 이용한 신소재개발로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다행스럽게 이같은 기능을 개발연구원 신제품개발센터가 추진하고 있어 직물업계에 획기적인 대안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이 지상명제의 신소재개발을 위한 방사설비 운영이 막바지에 표류하고 있다는 것이다.업계 일각에서 훼방을 놔 무산위기에 처했다는 안타까운 얘기이다. 깊은 내용은 모르지만 대구 직물업계를 살리기 위한 고단위처방을 해코지하는 이유가 어느나변에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원사메이커 입장에서는 영역을 침범할까 두려워 반대할 수 있겠지만, 직물업계는 쌍수를 들어 환영해야할 사업이다. 설사 방사설비 운영이 실패해 90억원의 예산을 송두리째 떡 사먹는다고 해도 이 사업은 추진해야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대구 업계 중진들이 쓸데없는 자존심이나 권위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이 사업만은 전폭적으로 지지해 소기의 결실을 맺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대구 섬유업게 지도자들이 좀더 성숙한 모습을 보였으면 싶다. <本紙 발행인>
저작권자 © 국제섬유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