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로 시작해 선거로 해가지는 신물나는 정치의 계절이다. 민생은 안중에 없고 오직 대권에만 정신이 팔려 개처럼 싸우는 정치권의 행태를 질리도록 지켜봐야 할 고통의 세월이다.벌써 '호랑이 없는 곳에 하루살이가 범 노릇' 하듯 DJ빠진 민주당에 저마다 일용(一龍)을 자처하는 대선주자의 도토리 키재기가 가관이다.YS에 토사구팽(兎死狗烹) 당하고 DJ에 두번 속았다는 JP의 우뭉스런 줄타기 꼼수가 이번에는 성공할지 불안하기 이를데 없다. 피할 수 없는 IMF업보의 수비수에서 공격수로 바뀐 한나라당의 속좁은 정치도 인기없기는 매한가지다. 국내에서는 사생결단을 하더라도 밖에 나가면 외교에 치중해야 할 야당총재가 이번에도 미국방문 첫날부터 정부공격에 각을 세우는 협량한 모습이 볼썽 사나웠다.법정관리 K마트의 충격설상가상으로 희망없는 저질정쟁에 등을 돌린 국민을 노기등등하게 한 것은 우리사회를 뒤덮고 있는 온갖 추문의 게이트들이다. 솔직히 과거 정권시절 경천동지 할 한보사태나 기아사건에 비하면 잔챙이 행각에 불과하지만 권력핵심이나 대통령 친인척 관련설이 터지면서 국민이 비분강개하고 있는 것이다.문제의 원천은 미국같이 투명한 나라에서 불거진 '엘론'사건처럼 열명이 지켜도 한명 도둑을 못당하게 돼있다. 양의 동서를 불문하고 '소금먹은자가 물켜 듯' 먹고 모른체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바로 근본제도가 바꿔지지 않는 한 차기는 물론 차차기 정권에서도 구정물은 계속 흐르게 돼있다. 아예 구린돈이 오갈 수 없도록 규제를 풀고 제도를 투명하게 운영하는 총체적인 시스템 구축이 선결 과제인 것이다.다시 우리 얘기로 돌아가 요즘 세상 돌아가는 통박은 과연 우리 섬유산업의 미래가 있는가 하는 강한 의구심과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21세기 하루가 과거 이집트에서 피라밋을 건설하던 시절의 40년과 맞먹는다는 분초의 격변속에 낙오된 주식회사 한국 섬유산업이 침몰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외 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고 경쟁력은 추락하는데 '바늘로 찔러도 한참뒤에 아야 소리'하는 무감각이 만연 돼있다.이 절박한 위기감을 모르고 태평성세가 이어질 듯 우왕좌왕하는 혼돈의 구조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현주소인 것이다.가장 큰 특징은 수출로 살아가는 우리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미국시장의 변화이다. 한국업계의 경쟁력이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는 것은 물론 근본적으로 오더가 줄고 가격이 폭락하는 심각한 불황이 계속되고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고급제품에 대해 가격저항이 없는 한국과는 달리 미국은 소비자 가격이 1% 만 올라도 그야말로 야단법석이 나는 곳이다. 이 때문에 4년째 의류수출 가격이 떨어졌고 작년 한해에도 최고 39%까지 대미수출 단가가 추락했다. 유행처럼 번진 인터넷 비딩이 이를 더욱 재촉했다. 합섬직물도 오더는 가물가물한 채 올 1월에만 작년 동월대비 20% 내외의 가격 추락이 이어졌다.더구나 포천지가 6년 연속 최우수 투명경영으로 극찬해온 미국 재계 랭킹 6위의 '엘론'사가 파산하고 월마트에 이어 미국내 서열 2위의 초대형 할인소매점 K마트마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국내 수출업계를 더욱 긴장시키고 있다. 미국내 백화점과 대형스토아 의류매출이 감소된데 따른 누적적자가 어느정도 심각했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불안성 가연 조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포천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면 그토록 잘 나가던 미국의 '갭'도 지난 몇 년간 지급이자에 비해 영업이익이 최소한 28배를 유지했지만 작년에는 이자지금을 뺀 영업이익이 8배로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의류소매 동향이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로 해석되고 있는 것이다.설상가상으로 지난 90년대와는 달리 이제는 세계 전역이 우리의 강력한 경쟁국으로 성장했다는 점이다. 카리브나 중국, 인도, 베트남, 방글라데시를 비롯한 개도국 모두가 우리보다 경쟁력이 앞서있다.더구나 중국이란 거대 장벽을 무슨 수로 돌파할 수 있을지 날밤을 새워 연구해도 좀처럼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 알다시피 중국은 원가개념이 없는 용광로다. 우리 업계가 채산을 맞출 수 없어 거들떠보지 않는 오더도 그들은 얼마든지 소화해 내고 있다. 이같은 바탕위에 의류는 이미 중국의 독무대가 됐고, 화섬산업도 세계 1위국으로 부상했다. 세계 최대 직물 산지인 대구가 속절없이 주저앉는 것도 경제 불황보다 중국 영향이 더 크다. 같은 원사와 가공을 거쳐도 한국원가는 야드당 1.50 달러면 중국은 1.10 달러면 해결된다. 오늘 이 순간도 세계 전역에서 중국이 우리의 합섬직물 시장을 무차별 침식하고 있는 것이다.중국의 돌풍은 상상을 초월한다. 가전제품 중 컬러 TV는 이미 전세계 시장의 50%를 점유했고, 냉장고 역시 같은 수준으로 시장 지배력을 과시하고 있다. 가전뿐 아니라 조선, 철강이 우리를 따라 잡고 있고 심지어 반도체까지 추격하고 있어 초일류기업 삼성전자가 긴장하고 있을 정도이다.하물며 원부자재를 자급자족하면서 풍부한 노동력과 값싼 임금에 기술력까지 갖춘 중국앞에 한국 섬유산업은 '차로 졸치기' 신세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섬유쿼터가 폐지되는 2005년부터는 중국의 독무대속에 연간 섬유 수출이 900억 달러를 상회할 전망이다. 이같은 중국의 괴력을 인정한 미국의 백화점과 대형스토아들이 너도나도 구매본부를 홍콩으로 옮기고 있고, 세계최대 소매체인인 월마트까지 심천에 구매본부를 설치할 정도이다. 미국 바이어들이 본 한국섬유산업은 오래전에 낙조가 드리워졌다는 증거다.이것은 필연적으로 미국바이어가 한국에 오지 않고 한국수출업체가 거꾸로 홍콩으로 가 오더상담을 하는 기막힌 현상이 현실로 다가왔다. 이미 1,500개 섬유기업들이 생산공장을 해외로 탈출한데 이어 이젠 무역부 사무실은 물론 해드오피스까지 홍콩으로 옮겨가야 하는 처연한 신세가 됐다. 중국이 WTO가입으로 시장이 열릴 것으로 기대하지만 제조업 경쟁력이 없는 우리가 무슨 재주로 중국시장을 공략할 수 있단 말인가. 소탐대실 경계해야이같이 절박한 상황인데도 우리업계나 단체, 정부는 태평하기만 하니 답답하고 분통이 터진다. 일부 수출단체들이 예산을 줄이기 위해 벌써부터 기구를 축소하는 감량체제를 구축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은 마지막 남은 최후의 전환기이다. 예산 몇푼 아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생각을 크게 가져 미래를 대비 해야한다. 오히려 쿼터폐지 이후를 대비한 중장기 전략으로 우리가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명제를 설정하기 위해 능력있는 인사들이 더 많이 참여해 미래를 위한 대안을 만드는데 투자를 늘려야한다. 자칫 염통이 썩고 있는 것을 모르고 손톱밑에 가시박힌 것만 중시하는 것은 그야말로 소탐대실(小貪大失)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올해 준비중인 섬유산업중장기 전략인 '섬유산업 미래전략 비젼'은 만시지탄의 감이 있지만 매우 다행스런 일이다. 정말 '주식회사 한국섬유산업' 미래를 위한 고단위 처방이 제시됐으면 하는 바램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지구의 역사에서 생명에 필요한 산소를 만든 것은 생태계 자신이 듯 섬유산업을 살리는 처방도 섬유업계 스스로 해결해야함을 알아야 한다. 이대로 방치하면 게도 구덕도 다 놓친다. 업계와 단체, 정부의 총체적인 분발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 <本紙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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