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진년 청룡의 해 시작이 불길하다. 무섭고 질리는 대형참사와 악행이 예사롭지 않다. 죽고 죽이는 응징과 생존의 처참한 전쟁이 지구촌 두곳에서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이웃 일본에선 끔찍한 지진이 발생해 수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입었다.

국내에선 무도한 한 원리주의자에 의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피습사건이 불거졌다. 진영간에 극단의 대립과 분열이 야기되고 있다. 백과 흑밖에 모르는 원리주의자는 자기만 옳고 남의 비판과 의문을 받아들이지 않는 확증 편향자다.

혐오와 극단의 정치가 국민을 내편·네편으로 갈라놓았고, 진영간의 대립은 사회의 혼란과 분열을 부추기는 패악을 자초했다. 백주 대낮에 제1야당 대표가 괴한에게 예리한 칼로 피습을 당했는데도 온라인에서는 ‘자작극’ 운운하며 음모론과 가짜뉴스가 극성을 부렸다.

흉기가 아닌 “나무젓가락”이라며 궤변과 요설이 판을 치는 천박하고 상스러운 행태가 난무했다. 지켜본 국민의 분노는 임계점을 넘어 자탄의 한숨소리가 절로 난다. 실종된 정치가 복원돼 무섭고 우스운 극단과 혐오의 편가르기 병리현상을 시급히 치유해야 한다.

잃어버린 20년 극복한 일본 답습하는 한국

본질문제로 돌아가 쌩뚱맞은 얘기지만 흔히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물으면 해답은 “희망으로 산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보다 내일이, 올해보다 내년에는 나아지겠지” 속으며 기대하고 있다. “희망은 바라보는대로 된다”고 한 월트 디즈니나 “희망은 말하는대로 이루어진다”는 빌 게이츠의 성공비결과 같은 맥락이다.

우리 섬유패션업계도 비록 올해 글로벌 경제전망이 어렵지만 위기를 기회로 극복하겠다는 신념을 갖고 변화와 혁신을 전개하면 가능성은 있기 마련이다. 위기없는 경제도 없고 극복못할 위기도 없다는 강한 신념이 해답이다.

그런 한편 이 시점에서 우리 각 섬유스트림이 왜 이모양 이꼴로 녹슬고 부식돼 거친 한숨을 몰아쉬고 있는지 복기할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경기탓, 남탓 이전에 기업 스스로 변화에 둔감한채 혁신을 거부한 것이 원죄다.

하나의 예증으로 우리보다 훨씬 역사가 길고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 섬유산업도 장강의 뒷물에 앞물이 밀려나듯 한국·대만·중국에 밀려 모질게 고생했다. 물론 일본 섬유업계는 한국보다 먼저 글로벌 소싱에 눈을 돌려 해외투자로 돌파구를 마련했다.

그런 한편 지금 이순간 일본은 면방적 설비 70만추를 풀가동하고 있다. 우리 면방업계가 전성기때 380만추를 가동하다 해외 탈출해 현재 겨우 20만추 규모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는 실상과 대비된다.

한국의 면방업체는 10년·20년전이나 똑같이 주종품목이 20수·30수·40수 코마사에 의존하고 있다. 경기 호불황 가리지 않고 코마사만 주야로 생산해 창고에 쌓아놓고 판매한다. 반면 일본 면방업계는 일반 코마사 생산이 거의 없다. 전부 특수사다. 수요자인 직물업체와 의류패션업계가 요구한 트렌드에 맞는 특수사를 생산 공급하는데 전 시설을 활용하고 있다.

도요보와 가네보를 비롯한 일본 면방업체들은 이같은 수요자의 니즈에 맞춰 트렌드에 맞는 특수사로 잃어버린 20년을 극복하고 안정 가동하고 있다. 국내 면방회사들이 2021년과 2022년 상반기 10년만의 호황을 누리다 다시 대공황에 빠져들어 창고에 재고가 산더미처럼 쌓인채 고리당 300달러씩 적자내고 판매하는 참담한 상황과 비교된다.

일본 국민기업이자 세계적인 섬유화학기업인 도레이는 차별화 소재 양산은 말할 것도 없고 아사이카세이를 비롯한 일본 화섬기업들 역시 한국처럼 일반 폴리에스테르, 나일론사 생산을 철저히 피하고 있다. 특수물성을 활용한 다양한 소재개발과 함께 가연기술을 통해 다양한 특수사를 생산한다.

일본 화섬메이커와 가연업체는 2합·3합·4합·5합까지 복합기술을 활용해 후가공기술을 접목해 차별화 직물과 이를 사용한 양질의 의류 원단을 양산토록 리드하고 있다. 한국의 가연업체는 20개사에도 훨씬 못미치고 고속가연기를 전부 합해도 100대도 안되지만 일본은 가연기에 특수 부품을 부착해 차별화 복합사를 생산하면서 설비규모가 현재도 2000대 가까이 풀가동하고 있다.

면방이나 화섬, 가연 등 일본의 소재 업체들은 제품 생산에서 철저한 수요자 요구에 맞춰 개발하고 있다. 도레이에 글로벌 SPA 브랜드인 유니클로 직원 수십명이 상주하며 다음 시즌에 어떤 소재를 개발해 달라고 제안하면 그 제품 개발을 위해 연구진과 생산팀이 전력투구해 성공시키고 있다.

‘기술 앞에 불황 없다’고 다양한 신소재 기능성 제품으로 주문생산을 하다보니 재고부담 없고 소재메이커나 수요자인 직물·어패럴 업체가 차별화로 제값받고 있다. 우리 대구 화섬직물이나 경기북부 니트업체가 획기적인 고기능성 차별화 소재를 어떤 효과가 나도록 개발해 줄 것을 요구하며 효성이나 대한화섬, 도레이첨단소재에 몇팀씩 상주한 일이 있는가 생각해볼 일이다.

소재의 차별화를 이루지 못한채 중국과 똑같은 FDY·POY·DTY를 갖고 시장에서 경쟁하면 누가 승자고 패자가 되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 마지막 남은 국내 미들스트림이 시난고난 신음하다 벼랑 끝에 몰린 대구 화섬직물과 경기 니트직물 업계의 수명이 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편직에서 아무리 재주를 부린다 해도 그밥에 그나물일 수밖에 없다. 소재의 차별화가 안되는 상황에서 원단의 차별화는 공염불일 수밖에 없다.

일본은 되고 한국은 안되는 이유 배워야

이런 상황에서 대구와 경기북부 니트산업이 이만큼 견디어 온것도 기적같은 일이다. 차별화는 커녕 어느 회사가 신제품을 개발해 재미 좀 본다하면 득달같이 카피해 소나기 공급하는 들쥐떼 근성에 자신도 남도 함께 망했다. 치폰 직물이 유행한지 몇십년이 됐는데 아직도 터키시장에서 중국과 맞짱을 두고 있으니 대구 직물의 운명이 간당간당하는 것은 불문가지다.

비수기때 쟁여놨다 성수기에 퍼내는 천수답 경영을 반복하다 아예 성수기가 사라진 시장구조 속에 “죽는다”고 아우성 치고 있다. 제·편직, 염색가공을 포함한 미들스트림 업체는 신규투자마저 게을리했다. 부분 개선에 그치며 생산성과 품질향상을 위한 첨단자동화 투자와 R&D 투자는 뒷전이었다. 해외 마케팅 능력도 진전이 없는 처지에서 고비용 저효율 구조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어 성장은 커녕 생존이 어려운 막다른 길에 몰렸다.

여기에 이런저런 단체는 많지만 업계의 진로를 제시할 나침판 기능을 못하고, 연구소 역시 과제 하나라도 더 따서 직원들 생존전략에 매달리다보니 제대로 된 신제품 연구개발은 엄두를 못낸다. 단체가 많지만 업계를 이끌기보다 업계가 죽건 말건 자신과는 무관하다며 태평해 대한민국 섬유산업이 이모양 이꼴이 되고 말았다. 스트림별 각 주체인 기업은 물론 단체·연구소·정부 모두 통렬한 반성을 바탕으로 이웃 일본을 벤치마킹하며 반전의 포석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저작권자 © 국제섬유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