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모진 비바람과 한파에 추위타고 얼어죽는 기업이 많았던 2023년을 마감했다. 지금 이순간 고통스럽고 다사다난했던 묵은해를 보내고 다시 한번 푸른 용의 해를 맞는 송구영신(送舊迎新)을 절실히 갈망한다.

돌이켜보면 2023년은 격동과 파란의 연속이었지만 역사의 아이러니를 부인할 수 없다.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고 나침판이다. 하지만 역사가 미래를 제시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에 기라성같은 경제학자가 많지만 IMF 국난을 아무도 예고하거나 점치지 못했다. 정부와 경제학자들이 펀더멘탈이 강하다고 큰소리 쳤으나 말짱 도루묵이었다.

세계적인 군사전문가들 역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장기전으로 갈줄 아무도 몰랐다. 하마스가 세계 최강 이스라엘 방공망을 미사일로 넘나들며 전쟁을 일으킬줄 첩보능력의 상징 모사드도 예견하지 못했다. 하마스의 불장난으로 억울한 민간인 수만명이 희생될줄 예상못한채 보복을 자초한 끔찍한 전쟁이 해를 넘겼다.

비바람 · 깊은 어둠은 일상이었다

다만 역사는 지난날을 거울삼아 미래의 처방을 제시한다. 설마했지만 6·25 남침을 거울삼아 이스라엘이 하마스에 당한 전철을 밟지 않도록 북한 도발에 철통같은 대비가 급선무다. 아시아의 히틀러 김정은은 이복형을 독살하고 고모부를 총살시킨 잔인한 살인자인데 무슨 모험을 못하겠는가.

거두절미하고 국민의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지 못한 무능한 정치에 사회가 극한 혼란의 악순환을 겪으면서 한국경제는 긴 겨울에 진입했다. 지난 11월 13일 일본 경제지 ‘머니1’은 ‘한국은 끝났다’는 기사를 대서특필했다. 한국 언론이 중국경제를 두고 ‘피크 차이나’란 용어를 쓴데 대해 “한국 경제가 정점을 찍어 ‘피크 코리아’”라고 일갈했다. 14세기 유럽의 흑사병 창궐때보다 더 심각한 한국의 인구 감소는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한국호의 침몰’이라고 뉴욕타임스가 대서특필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초고령사회 진입은 대한민국의 소멸을 재촉하고 있는데도 우리 정치권만 태평이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4월 총선을 앞두고 진영논리에 수단방법 가리지않고 국론이 분열되고 할퀴고 찌르는 싸움에 국민 혈압을 올리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경제가 빙하기를 맞은 비상사태에 도긴개긴 여야 정치권의 되바라진 행태에 국민의 마음은 소태씹은 심정이다.

새해 경기전망에 대해 국내외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는 2023년보다 크게 회복가능성은 적지만 더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란 조심스런 전망이 주류다. 미국이 두차례 금리 인하를 예고하면서 소비심리 회복에 방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는 고금리 정책으로 개인의 가처분소득이 감소했다. 먹고 사는 생필품 값이 뛰어 여윳돈이 없었다. 미국부터 고물가·고금리에 옷을 구매하려는 소비심리가 얼어붙었다.

그런 한편 미국의 금리인하 전망에 성급한 예단은 금물이다. 새해 금리인하 기대감이 커지고 있으나 “고금리 장기화 전망은 물가 상승세가 꺾여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지배적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간 누렸던 초저금리 시대로 회귀할 수 없단는 견해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중국의 경기침체가 심각한 변수다. 중국경제의 어려움은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경제, 특히 섬유산업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 실제 섬유산업 측면에서 봐도 한국뿐 아니라 중국도 말이 아니다.

자국 내수시장이 꽁꽁 얼어붙자 국제시장에서 무차별 덤핑투매를 일삼고 있다. 화섬사도 퍼내기 경쟁으로 시장을 교란시키고 있다. 중국의 최대 화섬직물 산지인 소흥(紹興) 일대 직물 생산업체들도 견디지 못하고 문닫는 공장이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중국 경제 추락은 한국은 물론 세계경제의 뇌관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섬유패션 기업들은 코로나에 이은 극한 한파를 겪은 지난해를 거울삼아 소폭 성장을 자신하고 있다. 새해 경기전망이 결코 밝지는 않지만 2023년보다 줄잡아 10%, 하기에 따라 그 이상의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

세아·한세·한솔을 비롯한 글로벌 의류벤더들은 2023년 매출이 전년보다 15~20% 내외까지 감소했다. 주시장인 미국시장 냉각으로 불가피했다. 중국과 베트남 기업들도 2023년은 고통의 세월이었다. 그럼에도 이를 거울삼아 2024년은 2023년보다 10% 이상 매출증가를 자신하고 있는 것이다. 사즉생(死卽生) 각오로 임하면 비상구는 있기 마련이다.

중언부언하지만 문제는 국내 남아있는 미들스트림이다. 면방에 이어 화섬 원사메이커들이 모조리 사업을 포기했거나 축소조정 상황에서 바늘과 실 관계인 대구와 경기 화섬직물과 니트원단의 미들스트림이 풍전등화다.

돌아가는 통박으로 봐 대구 화섬직물과 경기 니트직물이 새해에 대내외적인 환경이 개선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한 상황이다. 일부 미국 경기회복에 기대를 걸고 있으나 유럽과 동구권, 특히 중동 시장은 캄캄하다는 것이다.

우크라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확전이 몰고온 경기냉각과 오더 캔슬, 수출대전 결제지연과 함께 중동 바이어 재고가 의외로 많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품목 특성상 연중 3~4월부터는 성수기이지만 새해 오더 상황은 대다수 직물·편직업체들이 절망상태다.

이젠 고비용·저효율 구조로 한국경제의 일등공신인 섬유산업이 소멸되는 막다른 길에서 지금 당장 판을 다시 짜야한다. 기업의 생성과 소멸은 언제든지 진행형이지만 산지 기능이 상실돼 한국을 향한 바이어 발길이 그치면 끝장이다. 소멸의 속도가 너무 빨라지면서 지난해의 줄초상보다 올 상반기가 더욱 심각한 발등의 불이다.

차별화 투자기업 불황 모른다

그동안 본지가 시도때도 없이 제시했던 수없는 고단위 처방책을 더 이상 미룰 여유도 시간도 없다. 기업 스스로 각자도생의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고 투자해야 한다. 지금 이순간도 신념을 갖고 투자해온 기업은 불황을 모른다. 첨단자동화·R&D개발·차별화전략에 전력투구한 기업은 2023년에도 안정성장을 유지한 점이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불황·공황보다 무서운 것은 포기하는 것이다.

정부와 단체, 연구소가 제기능을 찾아야 한다. 한국보다 먼저 시들었던 일본 후쿠이 산지가 풀가동하고 엔조이하는 상황을 한국섬유산업이 벤치마킹해야 한다. 싱크탱크 역할을 자임한 섬산련이 일본·이태리·중국·대만 섬유패션산업을 심층분석해 ‘(주)한국섬유산업’의 처방을 제시해야 한다. 최병오 회장이 의욕적으로 발표한 백서도 만들고 혁신위도 구성해 중장기 전략을 새해초부터 서둘러야 한다.

반도체보다 5배나 큰 시장인 섬유패션산업 중흥을 위해 정부와 담판을 지어야 한다. 일본 유니클로뿐 아니라 프랑스·이태리 하청국이었던 스페인에 자라·망고가 생성된 역사적 사실을 한국에 못할리 없다는 신념을 공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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