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想像)과 예상(豫像)의 사전적 의미는 천양지차다. 상상은 가상, 공상, 구상과 같은 맥락이고 예상은 계산, 예견과 같은 의미다. 상상은 실제 경험이 아닌 사물에 대해 마음속으로 그려본 것이다. 예상은 현재에 없지만 대상을 직관하고 그려보는 능력이어서 실제와 많이 접근한다.

‘사우디와 17표차 박빙’! 결선투표에서 뒤집을 수 있겠다는 망상에 부산 갈매기와 국민·대통령도 속았다. 뚜껑을 열어보니 182개국 투표에서 부산 29표, 리야드 119표. 예상은 물론 상상도 할 수 없는 참패였다. 경제효과 60조원, 고용창출 50만명... 국민 허파에 바람만 잔뜩 불어놓은 외교라인과 관련자들은 치도곤을 쳐야 한다. 얼마나 충격이 크고 창피했으면 대통령이 좀처럼 안하던 사과까지 했겠는가.

아무리 외교가 밀당이라고 하지만 돌아가는 통박을 보면 기적을 바라지 않는한 불가능하다는 것을 예상은 물론 상상도 가능했다.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지상사다. 졌으면 깨끗하게 승복해야 한다. 뜬금없이 ‘과거 정부탓’ ‘돈으로 매수’ 운운은 비겁하고 민망한 처사다. 가뜩이나 경제·안보가 불안하고 나라가 소멸할 수 있는 저출산 고통에 부산 갈매기까지 먼곳으로 날아가 국민의 가슴은 소태씹는 심정이다.

이미 양극화는 판가름 났다.

본질문제로 돌아가 풍전등화 벼랑 끝에 몰린 우리 섬유산업이 이모양 이꼴로 폭망위기에 몰린 원인과 근인을 내시경으로 들여다 본다. 언필칭 고임금 인력난의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내세우지만 과연 모든 책임이 타율에 의한 조상탓인지 성찰하고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

요즘 전국 섬유산지에 불어 닥치고 있는 줄초상 참사는 중언부언 할 필요가 없다. 섬유기업들 모두가 체감하고 고통을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섬유산업 뿌리인 면방이 속절없이 붕괴됐고 한국 섬유산업 대들보인 화섬산업이 거덜난 것이 꼭 제도의 잘못으로 인한 타율때문인지 성찰해야 한다. 국내 섬유산업중 마지막 남은 미들스트림이 초상을 치르는 참상도 꼭 고임금 인력난으로 돌릴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물론 여러 가지 타율에 의한 악재가 섬유기업의 숨통을 조였다는 점을 배제할 수는 없다. 인력 의존률이 높은 섬유산업 특성상 중국보다 6배, 베트남보다 10배가 높은 인건비와 떡쪄놓고 빌어도 오지 않는 내국인력을 구할 수 없는 치명적인 악재는 경쟁력 상실의 가장 큰 원인이다. 비싼 전기요금에 중국이 러시아에서 사온 원유값은 배럴당 65달러이고 한국은 중동 등에서 85달러에 사오는 기초원료의 30%가 역시 극복하기 어려운 약점이다. 더구나 규모경쟁으로 원가절감과 생산성을 높이고 중국과 베트남, 인도를 극복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이같은 한국의 고비용 저효율 구조에서도 끄떡없이 성장하는 기업은 아직도 많다. 이들 성장하는 기업들은 오너나 CEO의 의지가 남다른 것이다. 인력난과 생산성을 극복하기 위해 총력을 경주해 자동화 첨단설비 투자에 앞장섰다. 각고의 노력으로 차별화 전략에 올인하여 국내나 해외 시장에서 확고한 신뢰를 구축한 것이다.

여러번 강조하지만 부산의 신발원단 전문업체 동진은 올해 줄어들긴 했으나 매년 연간 2000억원 내외 매출에 600억원 내외의 영업이익을 올려 삼성전자 못지않은 우량기업으로 정평이 나있다. 3년전 오너가 7800억원을 받고 사모펀드 회사에 경영권을 넘긴후 작년에 주거래선인 나이키·아디다스 측으로부터 다소 불편한 모습이 있었지만 지금은 해소돼 안정성장을 견지하고 있다. 비결은 세계 기계메이커에서 제작된 신기종을 가장 먼저 사들여 품질과 생산성으로 승부하는 전략이다.

안산에 있는 영텍스타일 계열 신한산업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적인 아웃도어 전문 염색가공과 특수 코팅 전문업체다. 품질 성가가 뛰어나 미국 노스페이스 본사에 원단을 대량 공급하고 있으며 미국과 유럽은 물론 까다로운 일본에서도 대량 오더가 쇄도하고 있다. 이 회사 역시 규모는 베트남 공장들 못지않게 대규모인데다 차별화 전략으로 작년에 1000억 매출에 영업이익 95억원을 달성했다. 올해는 물론 이미 내년 4월까지 오더가 꽉차있다. 160명 직원중 외국인 근로자가 6명에 불과할 정도로 인력이 모여들고 활황을 누리고 있다. 품질과 생산성, 납기에서 세계 정상급을 인정받고 있으며 고어텍스와 맞짱을 두기 위해 신한산업 대신 ‘화이트브로우’란 새 브랜드를 입히고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여러번 소개했지만 세계 1위 모자 전문업체인 유풍은 모자 단일품목으로 연간 5500억원 이상의 매출과 130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기록하고 있다. 2위부터 4위까지 합쳐도 유풍의 외형을 못따라가고 영업이익·시장쉐어를 접근하지 못한다. 해외공장에 첨단 자동화 설비로 무장하고 다양한 차별화 소재와 기능성 모자로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섬유사양론’ 주창자들을 ‘무식한 인사’로 단정할 정도로 섬유산업이 첨단문화산업임을 확신하는 숭상받는 기업이다.

대구 화섬직물산업이 지금 죽을 쑤고 있지만 덕우실업, 하나섬유 등은 차별화 전략은 물론 첨단자동화 투자로 품질과 생산성을 높이고 다양한 소재개발로 까다로운 글로벌 SPA 브랜드를 공략하고 있다. 사가공 전문 대영합섬은 파격적인 에너지 절감 투자와 로봇화를 선도해 중국 경쟁사들이 겁을 먹고 있다.

작지만 강한 ITY싱글스판 니트직물 전문업체 부건니트 역시 자동화 설비와 연사설비의 비교우위와 다양한 원단 개발로 설비를 풀가동하고 있다. 대구염색공단내 감량가공 전문인 통합과 계열 염동염직은 올해같은 불황에도 수십억원을 투자해 설비를 자동화로 개체하면서 생산성과 품질의 비교우위로 양대 공장을 주야간 풀가동하고 있다.

불황에도 성장하는 기업의 특징

이들 외에도 대공황에 가까운 깊은 터널속에서도 끄떡없이 승승장구하는 기업은 얼마든지 있다. 얼씬하면 중국 타령하지만 고임금 인력난을 호소하면서 중국과 똑같은 레귤러 제품으로 승부하는 것은 자살행위다. 중국도 화섬과 면방사중 10% 이상은 아크릴·나일론과 아라미드까지 혼방한 차별화 제품을 회사당 300여종 개발해 세계시장을 주도할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대규모 설비를 자랑하는 중국 화섬메이커들부터 DTY·FDY의 레귤러 제품에서 벗어나 다양한 혼방 복합방사 기술로 기능성 차별화로 앞서가고 있다.

이미 시장의 평가는 분명히 구분됐다. 차별화·R&D·첨단설비 투자 업체는 승승장구하고 투자에 굼뜬 기업은 도태됐거나 되고 있다. 인력난 고임금 타령은 이제 흘러간 노래다. 기업 오너나 CEO의 의지와 철학이 기업의 생명력과 직결되고 있다.

지금은 지구촌에 울타리가 사라진 글로벌 시대다. 일반 레귤러 제품은 전세계가 지천으로 공급하고 있다. 화섬, 면방, 직물, 염색가공, 사가공 전반에 걸쳐 레귤러 제품으로는 생존할 수 없다. 늦었지만 지금 이순간 발상의 대전환이 살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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