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희와 영광으로 가득해야할 섬유패션인의 축제의 한마당 섬유의 날을 맞아 올해도 착잡하다 못해 끝없는 자괴감을 떨칠 수 없다. 지난 반세기 긴 겨울도 많았고 어둠도 있었지만 한국경제의 일등공신인 섬유산업이 지금처럼 불구덩이 속으로 소멸되고 있는 것은 처음이다.

섬유 스트림 곳곳이 맷돌에 깔려 할퀴고 찢긴 참상에 신음하고 있다. 산업은 하루가 다르게 곤죽이 되고 줄초상인데 업계를 이끌어야할 단체나 기관은 제 구실을 못하고 부박한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섬유패션산업의 싱크탱크인 한국섬유산업연합회부터 풍전등화의 실상을 강건너 불구경하며 하지하책(下之下策)의 무능과 무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에서 낙하산으로 내려온 상근 부회장부터 관료개념에서 벗어나 기업 마인드를 갖고 산업중흥을 위해 총력을 경주하지 못한 한계 때문이다. 바다에서 태풍을 만나면 선원들은 하늘을 보기 전에 선장의 얼굴을 쳐다보듯 벼랑끝 위기에 몰린 섬유업계가 섬산련을 쳐다보는 막중한 책임을 느끼지 못한 것 같다.

되는 일 안되는 일 없는 섬산련의 ‘허당’

섬산련은 사무국 직원 50여명이 섬유패션산업 중흥을 위해 일하고 있다. 회장은 비상근 이어서 야전사령관은 상근부회장이다. 이 자리를 주무부처가 인사권을 행사해 낙하산으로 내려보낸다. 상근부회장뿐 아니라 상무 1명까지 내려보내 직원들의 한명 남은 임원 승진은 하늘의 별따기다. 직원들은 평생을 봉직하다 부장을 끝으로 물러갈 퇴(退)를 당한다.

섬산련의 예산 규모는 자그마치 연간 240억원 규모다. 이중 강남 삼성역 노른자위 빌딩 임대료 180억원과 정부 사업지원지금 60억원 규모다. 이 재원으로 직원 인건비와 사업비, 건물 유지관리비, 세금 등을 제외하면 20억~30억원 규모 흑자를 낸다.

상근부회장 주소령 부회장 연봉은 자그마치 2억4000만원 규모다. 제네시스 G90 최고급 승용차와 운전기사가 따른다. 명목만 있으면 업무추진비와 판공비를 거의 제한없이 사용한다. 피골이 상접한 대다수 협단체와 비교할 수 없는 황제급이다. 장관은 물론 한국전력 사장 연봉보다 많은 신의 직장이다. 노조가 없어 감시나 견제도 없는 최고의 배부르고 등 따뜻한 자리다.

필자는 작년 10월 주소령 부회장 부임때 ‘30년만에 최고의 적임자’라고 대서특필 했다. 고시 출신이 아니고 산업부 본부 국장을 경험하지 못했지만 서울대 섬유공학과 출신에 산업부 섬유과장을 거친 전문가란 점에서 기술표준원 국장이던 주소령씨 부임을 대대적으로 환영하고 홍보했다.

그런 주 부회장이 재임 1년이 지나면서 기대가 실망으로 변했고 이제는 체념상태로 빠져들었다. 관료 마인드는 과감히 떨쳐버리고 기업 마인드로 변해 오직 위기의 섬유산업 중흥을 위해 전력투구해야 함에도 아직도 관료 사고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능력이 달린것인지 노력을 해도 안된것인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처음에 맞딱뜨린 것이 대구에서부터 열화같은 요구가 있었고 본지가 여러차례 필요성과 절박성을 기획특집한 뿌리산업 지정이었다. 결과는 가장 앞장서 학수고대한 제·편직은 쏙 빠지고 염색가공 등 일부만 지정됐다. 물론 주 부회장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겠지만 결과물은 반토막이었다. 주무부처를 설득하지 못하고 예산 타령하는 주무과로부터 설득당하지 않았나 하는 가설이 나돌기도 했다.

노희찬 전임 회장이 최경한 전 장관 등과 개인적인 인맥과 대구경북 국회의원들의 협조를 얻어 연간 400억원 규모로 지원돼던 스트림간 기술개발 협력자금이 2년전 일몰됐다. 대신 주 부회장 총지휘아래 R&D자금 5900억원을 2024년부터 7년에 걸쳐 지원 받겠다고 호돌갑을 떨었으나 본 예타에서 낙동강 오리알이 되고 말았다. 여러 사정이 있었겠지만 주 부회장의 역량과 통큰 행보가 아쉬운 대목이었다.

지난 7월 제주에서 열린 섬유패션CEO포럼에 예년의 장·차관 참석 관례와는 달리 산업부 국·과장 한명 참석하지 않았다. 옆에서는 대한상의 주최 포럼에 기재부 장관, 법무부 장관, 한은 총재가 경쟁적으로 참석했는데, 반해 섬유패션 포럼에 산업부 주무과장 한명 코빼기도 안보인 것은 주 부회장의 역량을 의심케 했다.

섬유의 날 훈·포장은 섬유패션인들에 가장 인기있는 정부 포상제도다. 20여년간 아무 탈없이 이어져온 은탑산업훈장이 올해부터 날아간데 대해 업계가 허탈해 하고 있다. 행안부 국·과장 하나 설득하지 못한 강단과 배짱이 없었는지 묻고 싶다.

갈수록 경쟁력을 잃고 있는 국내 섬유산업의 가장 쉽고 빠른 기사회생 방안의 하나는 국방섬유 국산화다. 국방부와 방위사업청 문턱을 드나들면서 차고 넘친 당위성과 시급성을 설득해야 될텐데 아직도 답보 상태다. 국방섬유 국산화를 법제화하기 위해 안규백 의원을 대표 발의자로 14명의 야당 의원이 국방위에 법안 발의 사실을 본지가 대서특필했다. 발의 의원들에게 고마움과 함께 후속대책을 간청해야 함에도 아직 움직임이 안보인다는 것이다. 내년 총선이 끝나면 법안 발의가 자동 폐기되는데도 다급한 모습이 안보인다.

내년 섬유패션업계 정부 정책자금 수요조사에서 1조5000억원 규모가 나왔다. 한푼의 예산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지금 국회와 기재부에서 살다시피해야 함에도 그런 노력이 안보인다.

줄초상 비상사태 강건너 불구경인가

반면 업계가 줄초상이 나도는 절체절명의 비상상황에서 주 부회장은 뜬금없이 최근 섬유센터에 아카데미 교육장인지 컨벤션 센터 기능을 명분으로 대수리 방침을 세우고 30년, 20여년 된 임차인에게 “방빼라”는 통지문을 보냈다. 섬유센터 17층과 2·3층에서 연간 14억원의 알찬 임대료를 받고 있는데도 섬산련이 거액을 들여 수리하여 직영하면서 섬유패션업계에 저렴하게 사용토록 하겠다는 것이다.

말인즉 쉽지만 이것이 타당하지도 쉽지도 않은 장벽을 모르는 무모한 발상이다. 우선 섬산련이 맡아 17층에 컨벤션센터로 리모델링한다는 것은 건물구조상 층고가 낮아 불가능할뿐 아니라 그만한 수익성을 창출할 수 없다. 새롭게 단장해 섬유패션단체에 저렴하게 차등대우하면 곧바로 배임죄에 말려든다. 과거 2002년 3층 패션센터를 직영하다 엄청난 손실만 보고 포기한 경험을 고참 간부들은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공기업 성격인 섬산련이 악덕 부동산 임대업자 갑질처럼 수십년 고락을 같이한 임차인을 토끼몰이하듯 내몰아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것은 아직도 관료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위험하고 경솔한 행태다. 자칫 열정을 쏟아 헌신하겠다는 최병오 회장에게도 화살이 갈 수 있는 비합리적인 발상이며 시대적 화두인 공정과 상식에도 어긋난다. 주 부회장은 무능·무책임의 통렬한 성찰과 함께 지금 절체절명 비상시기에 이런 일로 소모전을 할때가 아님을 직시해야 한다.

본지 조영일 발행인.

저작권자 © 국제섬유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