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曺永一 칼럼] 부끄러운 단체장의 소명의식

세월이 총알같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대명절 추석이 임박했다. 인두로 이마 지지던 폭염도 한풀 꺾여 일상이 한결 누그러졌다.

하지만 자연의 섭리와 달리 요즘 나라 돌아가는 통박을 보면 갈수록 염장을 지르고 혼란스럽다. 무엇보다 정치가 실종되면서 길은 보이지 않고 뜻은 갈라져 있다. 우선 먹고사는 경제문제에 적색 신호가 켜졌다. 말만 번드르하던 상저하고는 신기루였다. 각종 경제지표가 빨간색이다 보니 올해 나라 세수가 수십조가 펑크날 전망이다. 급기야 정부가 내년 지출예산을 긴축예산으로 편성했다.

노송이 무덤을 지킨다고 했으나 전통 첨단문화산업인 섬유가 망가지고 반도체 수출이 속절없이 무너져 경제 전반이 아작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국내 총생산(GDP)이 큰 폭으로 줄어 경제규모 순위가 2021년 세계 11위에서 13위로 두계단 추락했다. 9년전인 2013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더욱 겁나는 것은 중국 경제가 곤두박질치며 발작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은 세계 최대 중간재 수출국이고 중국은 최대 완제품 생산국이다. 중국 경제 붕괴가 한국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는 것이다.

취임초부터 25시를 뛰는 최병오 회장

설상가상 지랄맞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사태로 국론이 갈라지고 진영논리가 극에 달하고 있다. 여기에 일부 대기업 노조가 또 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정치는 비타협과 배척의 투쟁이고 경제는 망가지고 사회는 분열돼 이래저래 실망을 넘어 절망을 안겨주고 있다.

본질문제로 돌아가 우여곡절을 거듭하며 한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한국섬유산업연합회장 선출이 끝나기 무섭게 섬유산업 재도약을 위한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연부역강한 최병오 회장이 취임하자마자 구심체인 섬산련이 쇄신과 개혁을 위한 전환기를 맞고 있다.

최 회장은 본디 흙수저 출신답게 맨땅에 헤딩하며 패션그룹 형지를 축성한 저력과 집념을 발휘해 초반부터 싱크탱크로 거듭나기 위한 섬산련 개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취임 이튿날부터 아침 일찍 섬산련에 출근해 상근 임원과 실장·팀장급 합동회의를 주재하며 낮 늦게까지 업무보고를 들었다. 일주일에 3~4일씩 출근해 긴시간 업무보고를 받고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기 위한 각 팀별 재도약 과제를 부여했다.

섬산련 회의가 끝나면 주무부처 고위인사를 예방하고 섬유산업 중흥을 부탁하며 특유의 넙죽 절하고 있다. 경제 5단체장 등과의 협력 강화를 위해 예방인사를 거르지 않고 있다. 벼랑 끝에 몰린 국내 미들스트림을 기사회생 시키기 위해 온몸을 던지는 특유의 행보가 눈길을 끈다. 인천 송도 소재 패션그룹형지 본사를 4~5일간 가지 않고 섬산련 업무에 전력투구하는 모습이다. 더욱이 “모든 답은 현장에 있다”는 일념으로 수도권과 대구·부산 산지를 직접 찾아가 현황을 파악하고 애로사항을 청취해 대정부 건의와 제도 개선책을 철저히 챙기고 있다.

그는 전국 각 섬유기업을 직접 방문해 애로점을 파악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6300만원짜리 코란도를 구입했다. 섬산련 팀장급 2명과 전국 방방곡곡 섬유사업장을 찾아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를 외치고 있다. ‘25시를 발로 뛰는 섬산련 회장’! 오랜만에 보는 헌신적인 지도자의 진면목이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섬유패션업계 역대 수장은 탁월한 덕목이자 훌륭한 지도자였다. 최 회장도 전임 회장들의 업적과 명예에 흠이 가지 않기 위해 팔소매를 가다듬고 있다. 감당하기 어려운 과제를 수시로 제시하며 채근하는 바람에 섬산련 사무국이 된시어머니를 만난 격이다.

사실 섬산련 회장은 무보수 봉사직이다. 시간과 돈, 몸을 던져 무너지는 섬유산업을 기사회생 시키기 위해 격무를 자임하는 위치다. 최병오 회장은 시기적으로도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중책을 맡았다. 죽어가는 섬유산업을 살리기 위해 때로는 정부 인사나 정치인에게 싫은 소리를 마다않고 설득과 투쟁력을 발휘해야 하는 어려운 자리다. 섬유패션 기업인들은 선거과정에서 있었던 오해와 왜곡을 모두 잊고 최 회장이 일할 수 있도록 역지사지 심정으로 전폭 지원하고 협력해야 한다.

너무 성급한 지적일지 몰라도 대한민국 섬유패션업계 수장의 공식·비공식 행사에는 단체장과 업계 중진들이 웬만하면 동참하는 아량과 협조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하나의 예증으로 오는 9월 5일부터 중국 청도에서 2박3일간 한·중·일 3국 섬유산업협력위원회가 열린다. 코로나 사태로 중단됐던 3국 섬유협력위원회는 주최측인 중국에서 방직협회장이자 ITMF 회장인 쑨 뤠이저 회장을 단장으로 거물급 40여명의 대표단이 참석한다. 일본에서도 섬유산업연맹 캄바라 마사나오 섬유산업연맹 회장을 단장으로 20여명의 업계 대표단이 참석한다.

물론 한국에서도 최병오 회장을 비롯한 20여명의 대표단이 참석하게 된다. 문제는 이번 한국 대표단에 최 회장과 민은기 섬유수출입협회장, 조정문 대구경북섬산련 회장 등 단체장은 달랑 3명에 불과하다(9월 1일 기준). 한국의 섬유패션업계 수장이 첫 국제무대에 참석하는 이 행사에 이런 이유 저런 핑계로 단체장·기업인이 동행을 거부한 것은 깊이 성찰해야할 문제다.

사실 지난 2018년 9월 대한민국 섬유패션업계 수장인 성기학 회장이 아프리카 케냐에서 영광스런 ITMF(세계섬유제조업자연맹) 회장으로 선출될 당시에도 처음에 섬유 단체장들이 무관심했다. ITMF 회장은 성 회장의 개인의 영광 못지않게 한국 섬유패션산업의 글로벌 지위를 한층 강화하는 뜻깊은 행사이자 국가적 경사이었다.

한·중·일 회의에 단체장은 달랑 3명

당시 모두가 외면하고 무관심한 실태를 안타깝게 바라보던 노희찬 전임 회장(삼일방 회장)이 “이래서는 안된다”며 “자신이 성 회장과 함께 케냐에 가겠다”고 나섰다. 섬유수출입협회 민은기 회장이 “당연한 말씀”이라며 동행했고 김준 방협회장도 동참했다. 필자도 자랑스런 이 자리에 동참하겠다고 나서 언론계 대표로 케냐에 함께 갔다. 학계에서 한양대 공대학장 정성훈 교수와 연구소 관계자가 동행해 한국인 섬유제조업자 대통령 선출을 축하하며 자랑한바 있다.

세상은 역지사지다. 누가 섬산련 회장이나 관련 단체장을 맡건 업종별 단체장이나 능력있는 기업인들이 국제 행사에 동참해 한국 섬산련 회장을 지원하고 성원하는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 섬유패션 단체장들이 웬만하면 2~3일 시간을 내 국제행사에 동행하는 아량이 요구된다. 단체장과 중진 지도자들의 참가는 한국 섬유패션산업의 국격과도 연결된다. 단체장은 싫건 좋건 업계의 지도자임을 명심하고 소명의식을 발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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