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曺永一 칼럼] 최병오 회장 날개가 무겁다

교황은 카톨릭 교회의 수장이다. 로마 주교 바티칸 시국의 선출직 군주로 이름하여 ‘왕중의 왕’이다. 교황 선출은 선거권을 가진 추기경단이 소집되어 진행되는 비밀회의다.

‘콘클라베’는 라틴어의 cum(함께) clavis(열쇠)의 합성어인 쿰클라비에서 유래된 비밀회의를 뜻한다. ‘열쇠로 잠긴 방’이라는 의미는 선거권을 가진 추기경들이 외부와 차단된 시스티나 성당을 걸어 잠그고 그 안에서 선거를 하는 비밀회의를 뜻한다.

논리의 비약이지만 우리나라 섬유패션산업 수장(首長)을 뽑는 ‘회장 추대 5인 위원회’가 콘클라베처럼 회장 선출권을 행사하는 막중한 책임이 부여된다. 섬산련 정관규정에 회장 임기 만료 2개월전에 이사회에서 5인 추대위원회를 선출하고 만장일치가 안되면 과반수인 3인의 찬성으로 차기 회장 추천권을 행사한다. 이에 따라 지난 5월 30일 열린 섬산련 회장 추천 5인 추대위가 구성돼 콘클라베 역할을 수행했다.

5인 추대위 콘클라베 역할 훌륭했다

아뿔사 5인 추대위원 구성을 둘러싸고 특정 인물에게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비판이 고조되면서 전대미문의 날선 공방이 이어졌다. 5인 위원회 멤버중 후보로 압축된 최병오 부산섬유패션산업연합회장과 김 준 방직협회장을 둘러싸고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타나 의견조율에 난항을 거듭했다.

이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변수가 불거졌다. 일반적으로 김 준 회장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진 5인 위원회 멤버들이 반대파의 불평불만을 해소하는 합목적인 취지에서 역사에 없는 후보 정견발표를 전격 채택했다. 지난 7월 26일 이사간담회에서 최·김 양후보의 정견발표가 있었고 여기서 최병오 회장에 호감을 갖지 않았던 이사들의 반응이 180도 바뀌었다. 이때부터 합리성과 공정성을 앞세운 5인 위원회의 기류가 급변하면서 누구를 선택할지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양상으로 바뀌었다.

더구나 대구경북과 부산·경기남부 산지와 서울 수도권 중앙단체장의 최병오 회장에 대한 쏠림현상이 두드러졌다. 이 과정에서 ‘누구는 절대 안된다’는 장외 중진들까지 훈수에 가세해 의견조율에 난항을 거듭했다. 결국 섬유패션업계의 어른이고 지도자인 5인 위원회는 대승적 결단을 내렸다. 두 후보 모두 흠결은 있지만 이 시점에서 벼랑 끝에 몰린 섬유산업, 특히 공멸의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는 미들스트림 업계의 열화같은 분위기를 고려해 최병오 회장을 최종 낙점하는 용단을 내렸다. 역시 업계의 숭상받는 덕목이고 훌륭한 지도자들의 현명한 판단이었다.

더욱이 본인이 원하기만 하면 연임은 따놓은 당상임에도 마음을 비우고 단임으로 끝내며 3년간 헌신적으로 봉사해온 이상운 회장과 글로벌 섬유패션업계 거목인 성기학 회장의 결단에 존경을 금치 못한다. 민은기 회장의 탁월한 조정역할과 김 준 회장 측근이란 오해를 감수하면서 최종 선택에 힘을 보탠 김정수 이사장과 한준석 회장의 사려깊은 결단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아무튼 거의 3개월간 이어진 섬산련 차기 회장 선거전은 막을 내렸고 연부역강한 최병오 회장 체제가 본격 시작됐다. 최 회장은 전임자들과 달리 박근혜 정부 막판에 인수위마저 구성못하고 출범한 문재인 정권처럼 막바로 엄혹한 섬유패션산업 현황에 마딱뜨렸다.

회장 선출과정에서 다소 흠집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약점없는 기업인이 있겠는가. 40년전 동대문 시장에서 3평짜리 가게로 시작해 한때 뼈아픈 실패도 경험했지만 최 회장은 누가 뭐래도 한국을 대표하는 패션기업인으로 우뚝선 인물이다. 실패를 경험으로 재기한 수많은 기업인들처럼 최 회장은 불굴의 의지와 탁월한 경영능력으로 맨땅에 헤딩하며 패션그룹 형지를 축성했다.

그는 빌게이츠의 명언처럼 ‘태어날 때 가난한 것은 죄가 아니지만 죽을 때 가난한 것은 자기 죄다’라는 좌우명을 새기면서 사업영토를 성공적으로 확장했다. 한국의 70~80대 기업인 모두 배고픈 설움을 안고 면학과정에서 모진 설움과 고통을 겪었지만 공부하는 기업인의 상징으로 추앙받고 있다. 서울대학교 패션산업 최고경영자 과정을 수료하면서 최병오 홀을 설립했다. 순천향대학과 전주대학·단국대학·부산대학교·전남대학 등에서 명예 경영학박사와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앙대와 숭실대 경영대학원 초빙교수로 활약하면서 명강의를 통해 인기몰이를 하기도 했다.

경영일선의 분초를 다투는 격무에도 경제계와 사회단체 활동을 폭넓게 전개하면서 관계·정치권·경제계에 폭넓은 인맥을 구축한 마당발이기도 하다. 한국 국제기아대책기구 명예 나눔대사, 대한상의 중견기업위원장,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수석부회장, 유니세프한국위원회 부회장, 환경재단 이사 등 수많은 경제·사회단체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맹물에 티가 섞일 수밖에 없듯 이같이 폭넓은 봉사활동에는 적지않은 규모를 쾌척한 것도 부인못할 사실이다.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듯이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 빠진 우리 섬유패션업계를 위해 최 회장은 더많은 희생과 봉사를 강요받을 수밖에 없다. 본디 섬유패션업계는 산업의 특성은 섬섬옥수 착하지만 성격은 급한 편이다. 우물가에서 숭늉 찾듯 당장 무슨 업적과 실적을 내라고 요구할지 몰라도 이것은 성급한 처사다. 더구나 지금 글로벌 경제사정은 중국경제 위기론과 함께 악화일로에 있고 우리 정부의 재정사정도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각 부처의 내년 예산작업 역시 이미 마무리됐고 R&D자금을 비롯한 지원자금도 무차별 칼질 당하고 있다.

내편 네편은 없다. 화합과 단결이 먼저다.

최 회장은 다급한 업계의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 발빠른 노력을 경주하되 한꺼번에 모든 것을 속결하려는 조급증에서 벗어나야 한다. 섬산련 사무국부터 개혁과 혁신을 통해 중장기 섬유패션산업 싱크탱크 역할을 제대로 수행토록 해야 한다.

그 바탕위에서 남다른 친화력과 교섭력, 투쟁정신을 활용해 정부로부터 통큰 지원을 얻어내야 한다. 하기에 따라 섬유패션산업은 반도체보다 5배나 큰 광활한 시장을 갖고 있다. 고비용 저효율 구조에서 탈피해 경쟁력의 비교우위를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다.

끝으로 최 회장은 3수 끝에 섬유업계 수장으로 화려하게 등극한 것을 계기로 자신을 지지했던 인사는 물론 반대했던 인사들도 함께 포용해 당면한 섬유패션업계의 화합과 단결을 통해 재도약을 성취해 줄 것을 당부드린다. 안팍으로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 재도약을 주도할 최병오 회장의 날개가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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