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曺永一 칼럼] 상처 입은 조개가 진주를 만든다

정복자는 성을 쌓지 않는다. 성을 쌓는데는 10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기 때문이다. 말은 해야 맛이고 고기는 씹어야 맛이다. 표현이 다소 정련되지 못하지만 할말은 해야 한다.

요즘 돌아가는 통박을 보면 대한민국 국격에 재수 옴붙은 기분이다. 불과 한달전 후진국형 참사인 충북 오성 지하차도 희생자를 비롯 50여명의 사상자 가족의 눈물이 채 마르기 전에 묻지마 칼부림이 전국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새만금 잼버리 대회까지 망쳐 국제적 망신을 자초했다. 선장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장관급 대회조직위원장이 5명이나 되는데도 총괄책임자가 안보인다. 1000억원의 준비예산이 어디로 갔는지 당최 알수가 없다.

진흙땅에 가마솥 열기가 모아지면 지열에서 나타나는 온도는 실제보다 훨씬 높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 습도가 85%에 달하는 새만금에서 4만여명의 지구촌 잼버리 대원들은 땀으로 멱을 감으며 생고문을 당한 것이다.

섬유산지 산더미 재고에 아비규환

상식도 진실도 통하지 않는 것은 새만금 잼버리대회를 유치한지 6년이 지난 동안 전정부와 현정부는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새만금은 바다를 막아 조성한 광활한 매립지로 대한민국 지도가 바뀌었다.

바다를 메운 매립지는 염분이 많아 나무도 풀도 자라지 못한다. 수년간 담수나 풍화작용으로 빗물에 염분이 씻겨야 비로소 작물이 자랄 수 있다. 다만 한가지 예외가 있을 뿐이다.

전북 군산 소재 54홀짜리 군산CC 골프장은 원래 염전 자리이다. 군산CC 경영진이 염전에 잔디를 자라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를 놓고 국내외 유명 식물학자를 찾아 나섰다. 답변은 “불가능하다”는 통보였다.

하지만 천신만고 끝에 잔여 염분이 있는 곳에서도 자랄 수 있는 특수잔디를 개발했다. 지금의 군산CC가 세계 식물학자들의 손사래를 극복하고 염전자리에 골프장용 잔디를 심은 최초의 쾌거였다.

잼버리 조직위가 군산CC가 염전에서 생존할 수 있는 식물 초목을 개발한 것처럼 필사적 노력을 했는지 물으나 마나다. 새만금 잼버리 대회가 파토난 국가 망신속에 설상가상 태풍 카눈이 한반도를 때려 또다시 물폭탄 피해가 덮쳤다.

세계 10위 경제대국이 13위로 밀려난 상실감속에 나라 돌아가는 꼴이 되는 일도 안되는 일도 없어 보인다. 자연의 대재앙이 몰고온 천재지변이야 우리 힘으로 해결하기 어렵지만 치안강국에서 백주 대낮에 묻지마 칼부림이 난동하는 것은 상식도 진실도 통할리 없다. 대한민국은 이런 나라가 아니잖은가.

화제를 바꿔 인두로 이마 지지는 가마솥 더위의 고통이 섬유산업 전반을 휩쓸고 있다. 중언부언 반복된 지적이지만 이제는 “진짜 공멸로 가는구나”하는 자포자기성 체념이 깊게 밴 한숨뿐이다.

물론 지금은 지구촌 구석구석이 불타는 열기로 섬유패션 장사도 사실상 올스톱 상태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내년 S/S시즌까지 가능성이 없어졌지만 유럽시장 또한 모두 하기휴가에 들어가 신규 상담은 전멸상태다.

마의 비수기와 무관하게 이미 골병이 든 섬유산업 생태계가 급속히 무너져 성한 곳이 없다. 줄초상 돌림병이 대구·경기·부산 산지를 강타하면서 어느 기업이 흰 까마귀인지 검은 까마귀인지 구분이 안된다. 대구산지에는 지금 이순간 원단생지 재고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기업의 죽고 사는 문제는 기업 스스로 책임지는 각자도생이라 해도 산업정책을 담당하는 정부 부처는 “죽던 살던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업종별 단체도 많고 잘먹고 잘사는 단체도 있지만 초토화되고 있는 섬유산업을 기사회생시킬 능력도 의욕도 없다.

참새가 죽으면서 ‘짹’하고 죽듯 이땅의 모태산업인 섬유기업들은 마지막 ‘짹’하고 죽겠다는 분위기다. 기업이 자력으로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타개하기 어렵지만 생존하기 위해 최소한 지원을 요청하는 언덕이라도 찾고 있는 것이다.

때마침 차기 한국섬유패션산업 수장인 한국섬유산업연합회장 선출을 둘러싸고 업계가 핏발선 눈으로 주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누가 되건 섬산련 회장이 죽어가는 섬유산업을 살릴 수 있는 전지전능한 인물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다.

하지만 물에 빠졌을 때 지푸라기라도 잡기 위해 발버둥치듯 섬유업계가 그래도 정부에 목소리를 내고 떼를 써서라도 무엇인가 얻어낼 수 있는 적임자를 학수고대한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마지막 깔딱깔딱하는 숨소리를 제대로 듣고 정부와 담판할 수 있는 능력과 투쟁정신, 소통능력을 갖춘 인사를 기대한 것이다. 그 장본인이 최병오·김준 두사람중 택일하는 일이다.

섬유패션업계가 바라는 지도자로서 적임자는 이미 최병오라는 압도적인 비교우위가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섬산련의 정관규정상 차기회장 선출에는 5인 추대위가 결정해 총회에 상정하도록 돼있다. 바로 5인 추대위원회의 결정이 늦어지면서 섬유패션업계가 긴장과 우려속에 마지막 결정을 조바심속에 기다려 왔다.

섬산련 회장 선출에 핏발선 섬유업계

지난 10일 섬산련 회장 추천권을 쥐고 있는 5인 추대위가 열렸지만 무슨 연유에서인지 또 결정을 미루고 16일에 최종 결론을 예고했다. 호불호가 심한 최병오 회장과 김 준 회장에 대한 의견 조율 필요성이 있었겠지만 너무 늦어 걱정이다.

물론 현 이상운 회장의 임기가 8월 18일이어서 17일 총회는 정식 공고됐다. 하지만 지금쯤 차기 회장 윤곽이 드러나 이취임식 준비와 차기 회장의 청사진과 미래 비젼을 보고 느껴야할 시점이다.

폐일언하고 섬산련 역사상 이번처럼 차기 회장 선출을 놓고 업계가 둘로 쪼개져 반목과 대립이 빚어진 것은 처음이다. 세상은 분초를 다투며 변곡점의 꼭대기에 와있는데 우리 업계의 사고는 아직도 쌍팔년도 식이다. 무슨 정치판도 아니고 내편·네편으로 갈려 각혈하며 누구는 절대 안된다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누가 벼랑 끝에 몰린 섬유산업, 특히 미들스트림을 살릴 구원투수일지 최선이 아니면 차선책을 강구해야 한다.

우리 경제계의 명망가이자 섬유패션업계 지도자인 5인 추대위가 현명한 판단을 내려 분열위기의 섬유패션업계를 하나로 움집시켜야 한다. 만에 하나 5인 위원회의 판단착오가 발생하면 17일 총회는 난장판이 되고 사분오열의 비극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돌아가는 통박을 지켜보면서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다. 비온뒤에 땅이 더 굳어지고 상처입은 조개가 진주를 만들도록 지난 두달간의 표류와 방황에서 벗어나야 한다.

저작권자 © 국제섬유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