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曺永一 칼럼] 파국은 막아야 한다

500년만에 하늘에서 물폭탄이 쏟아져 50여명의 안타까운 생명이 희생됐다. 천재지변으로 돌리기에는 너무 어처구니 없는 무방비·무책임·무능의 후진국형 인재였다.

아무리 역사는 망각이라고 하지만 불과 3년전 부산 지하도에서 발생한 끔찍한 참사를 충북 오송에서 똑같이 재현했다. 잘못이 드러나도 고치지 않고 남탓하는 공직자의 상투적인 과이불개(過而不改)에 민심의 포성이 귀청을 때린다.

때마침 제주에서 400명 가까운 섬유패션인이 집결한 CEO포럼이 열렸다. 육지에서는 물난리로 아비규환인데 날씨가 너무 좋아 거대행사를 무리없이 치렀다. 대 행사를 치르느라 노심초사하며 긴장을 풀지 못한 이상운 회장과 밤잠을 설치며 진행에 전력투구한 섬산련 사무국 직원들에게 찬사와 격려를 보낸다.

제주 CEO포럼 외면한 김 준 회장의 처신

하지만 어려운 경제여건에서 적지 않은 참가비를 부담하고 참가한 섬유패션인들이 볼 때 어딘가 이가 빠지고 구멍이 뚫린 아쉬움과 허전함을 떨칠 수 없다. 제주 CEO포럼은 단순히 일상에서 벗어나 휴양지에서 웃고 즐기는 놀이가 아니다.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경제 전문가의 특강과 성공한 CEO의 성공사례를 통해 경영전략을 새롭게 세우고 정신적·육체적 재충전의 계기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

무엇보다 섬유패션산업 육성정책의 방향과 의지를 직접 듣고 미래를 설계하고 싶었지만 정작 주무부처 장·차관은 커녕 실·국장조차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여·야 정치권 인사 몇명이 참석해 얼굴 알리기 축하의 변을 남기긴 했지만 산업부나 중기벤처부 고위인사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같은 시기에 제주에서 열린 대한상의 하계 세미나에는 경제부총리, 한은 총재, 법무부장관 등이 참석해 정책방향을 밝힌 것과는 대조적이다. 우리 섬유산업 위상이 어느 정도까지 처참하게 무너졌는지 웅변으로 말해줬다.

외부인사뿐 아니다. 전국 각 섬유산지에서 많은 기업인들이 큰 맘먹고 참석해 성황을 이뤘으나 정작 나타나야 할 섬유패션업계 인사는 빠졌다. 그중 해마다 반복된 얘기지만 ‘한국섬유패션산업연합회’로 명칭 변경이 거론되는 시기에 패션기업인들은 여전히 무관한 행사로 외면했다. 패션단체 관계자와 젊은 디자이너 몇분이 구색을 맞춰줬을뿐 크고 작은 패션기업인 대다수가 외면했다. 더욱이 섬유산업 뿌리라고 자부해온 면방업계 인사들도 방협 사무국 임원 2명을 제외하고 철저히 외면했다. 심지어 차기 섬산련 회장으로 출마한 김 준 방협회장마저 매년 이 행사에 불참하더니 올해도 외면했다.

무슨 필유곡절이 있는지 모르지만 전국 섬유패션인들이 모인 아주 특별한 대행사에 섬산련 회장을 욕심내는 당사자가 불참한 것은 상식도, 예의도 아니다. 제주 CEO포럼에 참가한 전국 산지 CEO들이 김회장을 성토한 사실을 본인이 새겨들어야 한다.

때가 때인지라 섬산련 차기 회장 선출전이 본격화되면서 400명이 운집한 제주에서 삼삼오오 이 문제에 화제가 집중됐다. 누가 벼랑끝 위기의 섬유패션산업을 기사회생시킬 구원투수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잦았다.

사실 섬산련 회장은 전국 섬유패션인의 수장(首長)이지만 직책의 대전제는 봉사다. 봉사를 소명으로 삼는 지도자는 싫건 좋건 몸과 시간과 돈의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이 어렵고 엄혹한 상황에서 최병오 회장과 김 준 회장이 섬산련 회장으로 봉사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매우 다행스럽고 환영할 일이다. 두 분의 열정과 충정에 찬사와 갈채를 보낸다.

문제는 누가 더 헌신과 열정을 다해 봉사할 수 있는 자질과 능력을 겸비했느냐 하는 점이다. 솔직히 두 분 인사는 똑같이 호불호가 뚜렷한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각설하고 최병오 회장은 맨땅에 헤딩하며 자수성가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탁월한 능력과 추진력에 친화력은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인사다. 정·관계에 폭넓은 인맥과 남보다 반발짝 앞서가는 경영과 처세술로 중견기업연합회 부회장을 비롯 많은 공·사 단체에서 봉사하고 있다.

다만 40년전 동대문 시장에서 사업하던중 한차례 실패한 전력이 있지만 공소시효가 훨씬 지났고 세인들이 까맣게 잊은 당시 생채기를 일부에서 약점으로 부각시킨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제주 CEO포럼에 참가한 중진 기업인은 “초등학교 시절 공부를 나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평가한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힐책했다.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 회장도 사업 초기 폭망해 모진 실패를 맛보았고 심지어 자신의 집은 물론 동생들 집까지 전부 날리고도 재기해 한국 재벌 1위, 세계가 존경한 재벌 총수로 우뚝 섰다.

김 준 회장은 그야말로 금수저 출신으로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재벌 후계 기업인으로 대과없이 살아온 명문가 자손이다. 일제 식민지 시대 최초의 민족자본으로 경성방직을 설립해 섬유산업과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한 훌륭한 가계를 갖고 있다.

그러나 김 회장은 글로벌 시대의 흐름이라 해도 대한민국 경제의 모태였던 경방을 송두리째 베트남으로 탈출시켰다. 국내 제조업이 없는 인사가 국내산업에 무슨 애착이 있겠느냐는 비판이 거세다. 그가 11년간 방협회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한국면방은 80%가 해외 탈출로 소멸됐다. 전성기 한때 25개 회원사 380만추 설비가 6개 회원사 30만추 미만으로 처참하게 축소됐다. 몇 개 되지 않는 회원사가 죽기살기식 제살깎기 경쟁으로 눈덩이 적자에 신음하고 있는데도 조정능력이나 자정능력이 없어 불협화음이 불거지고 있다. 5~6개 면방업체 구심체인 방협회장이 광범위한 섬유 스트림별 이해조정과 정부 설득과 투쟁해 통큰 지원을 받아내야할 섬산련 회장으로서 이르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70대 중심의 섬산련 회장단이 59세의 젊은 회장에게 줄을 서서 따라다니는 것도 쉽지 않다.

5인 추대위 두동강 위기 섬유업계 수습해야

물론 김회장의 노력에 따라 약점을 보완할 수 있겠지만 많은 섬유패션인들은 의구심을 토로하고 있다. 김 준 회장이 20일 대구에 내려가 자신을 비토하고 있는 대구경북·부산 섬유패션업계 인사들을 설득할려다 거센 사퇴압력만 받고 돌아온 것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걱정스런 것은 최·김 양후보가 양보기세가 없는데다 5월말 선출된 5인 위원회가 김 준 회장쪽이 유리하게 편성된데 대한 반감과 거부감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합법을 가장한 사실상 편법 지명이라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누가 되건 섬산련 회원사가 양분되고 분열의 극한상황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여진다. 차기회장 선출권을 쥐고 있는 5인 추천위가 지혜를 모아 전대미문의 이 사태를 수습할 수밖에 없다.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시해야 한다.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고 했다. 파국은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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