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曺永一 칼럼] ‘(주)한국섬유산업’ 기사회생 ‘묘수’

말이란 깃털처럼 가벼워 주워담기 힘들다(탈무드 교훈). 사람의 말에 지문이 남아 아무리 감추려해도 드러나기 마련이다.

요즘 정치권의 막말 공방이 천박하고 상스럽다. 입에 도끼와 바늘을 물고 상대를 찌르고 할퀸 모습이 도를 넘었다. 심지어 대통령을 향해 ‘쿠데타’ 운운하고 여당은 야당을 향해 ‘마약 도취’ 운운하는 극단적인 언사를 서슴없이 내뱉는다.

저잣거리 잡배나 뒷골목 조폭들이 쓰는 용어와 비슷하다. 악에 받쳐 궤변과 요설이 난무한 극언과 저주를 주고 받는 형국이다. 여야의 막말 공방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근래들어 입에 담기 민망할 정도로 거칠고 과격하다. 여야가 마치 흑백의 두가지 색만 보는 극단적인 원리주의자를 방불케한다.

아무리 정치가 실종됐다 해도 극단적이고 천박한 막말 공방은 정치를 스스로 황폐화하고 국민의 정치 혐오를 부추길 뿐이다. 이들 덜 떨어진 정치인 때문에 국민은 둘로 분열되고 국가는 악화되는 악순환을 양산한다. 정치권이 주고 받는 말과 행동에서 지켜야할 상도(常道)와 금도(襟度)를 지켜야 한다.

대구 홍 시장과 섬산련 회장 찰떡 공조 기대

본질문제로 돌아가 생사기로에서 거칠게 한숨을 토해내는 섬유패션업계에 최근 한가지 낭보가 있다. 섬유산지 대구에서 섬유라면 ‘변묻은 새발 털’듯 고개를 젓던 홍준표 대구시장이 섬유재건론을 들고 나와 지역 섬유업계가 환호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취임초부터 지역 기간산업인 섬유산업을 사양산업으로 간주하고 시정의 산업정책에서 섬유를 철저히 배제시킨 그가 천지개벽의 변화를 보인 것이다. 그는 시장 취임 3일만에 “대구에서 섬유를 포기해야 한다”고 포문을 열었다. 6대 중점 산업에서 섬유를 제외시켰다. 심지어 대구의 심볼마크인 ‘컬러풀’이 섬유를 연상시킨다며 ‘파워풀’로 바꿔 미운 오리 취급했다.

섬유산업을 냉대하고 도외시해 대구 섬유업계 인사들이 부글부글 끓으면서 홍 시장 시정운영을 비판했다. 필자도 비분강개하는 대구 섬유인들의 하소연을 듣고 지난 2월 6일자 본란을 통해 ‘대구 홍 시장의 위험한 섬유사양론’이란 주제로 홍 시장의 경도된 사고와 무지를 집중 성토했다.

사실 한국의 대표적인 섬유산지인 대구는 싸고 좋은 제품만 살아남는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고 줄초상 위기에서 몸부림 치고 있다. 이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전임 권영진 시장이 취임 일성에서 작심하고 ‘섬유는 한물간 산업’으로 간주하며 시 정책에서 천덕꾸러기로 몰고 갔다. 대구 섬유업계 지도자들과 거의 8년 임기 내내 대립과 갈등을 이어갔다.

권 시장이 하루속히 물러가기를 학수고대하던 지역 섬유인들은 홍 시장이 취임하자 “여우 피하니까 호랑이가 나타났다”며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지난 3월 대구 PID행사에서 홍 시장의 밀라노 방문계획이 처음 불거졌다. ‘밀라노를 둘러보고 섬유산업 포기 또는 육성’을 결정하겠다는 취지였다.

5월 밀라노 방문이 연기돼 9월 11일부터 21일까지 홍 시장의 밀라노, 독일, 파리 방문 일정이 잡혔다. 이 준비과정에서 섬유사양론의 고정관념이 사라지고 ‘섬유산업 재건론’이 나오고 있다. 당초에는 엽계 인사를 대동하지 않겠다고 했으나 이번에는 지역 섬유패션업계 인사 10여명을 사절단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밀라노·파리의 세계적인 패션도시와 독일의 산업용 섬유 실태를 파악하고 벤치마킹해 ‘대구를 아시아의 밀라노’로 만들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지방정부로부터 모진 괄시와 냉대를 각오하며 각자도생을 모색해온 지역 섬유업계가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으로 환영하고 있다.

화제를 바꿔 한국섬유산업연합회가 주관하는 ‘섬유패션 제주 CEO 포럼’이 12일부터 2박 3일간 열린다. 올해도 섬유기업인과 단체, 연구소 등에서 총 370여명이 참가해 작년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여진다. 특히 올해는 작년 행사때 섬산련을 향한 곱지않은 시각으로 불참했던 대구경북 섬유업계 지도자들이 대거 참여해 모양새가 좋아졌다.

하지만 무슨 연유인지 섬유패션업계가 모처럼 고달프고 팍팍한 일상에서 벗어나 유명 강사들의 특강을 듣고 운동과 관광을 통해 화합과 단합을 모색하는 축제의 장에 면방과 패션업계, 의류벤더 인사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대한방직협회 회원사와 패션산업협회 회원사들은 사무국 직원 한두명을 제외하고 업계 인사들은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면방과 패션업계의 불참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각 스트림별 소통과 화합·단합을 위한 이 행사를 외면하면서 섬산련을 향해 따따부따하는 것은 앞뒤가 안맞다.

물론 행사를 주관한 섬산련 사무국의 참가비용 산출도 사려깊지 못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참가비를 1인당 60만원씩 부담시켜 만찬비용과 강사료를 충당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한심하다. 참가비 60만원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항공료와 먹고 자며 운동·관광 비용은 참가자 몫이지만 강사료와 만찬비용을 참가자에 부담시키는 것은 여행사들이 하는 방식이다.

벼랑끝 섬유산업 진정한 구원투수는?

연간 150억원 이상의 섬유센터 임대료를 받아 빈곤단체에 비해 흥청망청 여유있는 단체가 최대 축제행사에 강사료까지 부담시키는 것은 속보이는 짓이다. 중기중앙회는 규모도 크고 내용도 알차지만 식사대 정도는 중소기업은행이 전액 부담하는 사례를 벤치마킹 했어야 했다. 작년에도 이 문제가 지적됐지만 조금도 변하지 않은 사무국의 사고양태가 섬유패션인들이 섬산련을 곱지않게 보는 이유중의 하나임을 알아야 한다.

끝으로 이번 제주 CEO포럼에서는 참가자들이 스트림별로 따로 만나는 시간에 현재 진통을 겪고 있는 차기 섬산련 회장 선출문제가 거론될 것은 불문가지다. 이미 보도를 통해 알려진 최병오·김준 양 후보에 대한 나름대로 호불호 성향이 드러날 것으로 보여진다.

5인 회장추대위가 결정을 전격 연기하고 26일 두 후보의 소견발표를 듣고 질의응답을 갖기로 결정했다. 섬산련 회장 선출 역사상 후보가 이사회에서 출마의 변을 밝힌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그만큼 의견이 다양하고 참여의지가 강해진 징후다. 벼랑끝 죽음의 계곡에 빠져들고 있는 섬유산업에 진정한 구원투수가 누구인지 현명한 판단이 요구된다. 기업 경영능력은 물론 정부와 정치권과의 소통능력, 배짱과 강단있는 지도자를 선택해야 한다. 향후 3년은 ‘주식회사 한국섬유산업’의 소멸과 기사회생의 분수령임을 직시해야 한다. 대구 홍 시장과 차기 섬산련 회장의 공조를 통한 맹활약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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