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하고 엄숙해야할 6월 호국의 계절이 무색하다. 여전히 나라가 뒤숭숭하고 혼란스럽다. 국내는 물론 글로벌 경제가 발작을 일으키는 엄혹한 상황이다. 정치는 협치에 관심이 없고 물고 뜯는 정쟁에 초점이 맞춰있다. 후쿠시마 오염수로 인한 사회는 혼란스럽고 민생은 파탄위기다.

공정과 정의를 강조한 윤석열 정부가 출범 2년째를 맞았지만 노동·연금·교육 3대 개혁은 시작부터 공회전하고 있다. 국민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강성노조 개혁이 탄력을 받는가 싶더니 시작부터 바람이 빠졌다. 급기야 온건파인 한국노총마저 정부에 각을 세워 경사노위 불참을 선언했다.

설상가상 강성 민노총과 한노총이 산업활동의 마비와 민생을 파탄내는 대규모 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한국 노동계의 고질병이 폭발하려는 징후다.

노동계의 폭력시위는 엄격히 대응해야 하지만 정부도 온건 노조와는 사회적 대화를 위해 유연한 전략이 필요했다. 손자병법 계책인 우직지계(迂直之計)를 고려했어야 했다. 때로는 곧장 가는 것보다 우회하는 것이 효과적인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말로는 ‘국민’ ‘민생’이라면서도 정작 국민은 없다.

제조업 말살정책이 해외로 내몬다

본질 문제로 돌아가 글로벌 경제 상황은 안팍의 불확실성이 최고조에 이른 전례없는 위기상황이다. 내수경기 역시 궁핍의 질곡에서 실망을 넘어 절망상태로 추락하고 있다.

제조업의 생명줄인 전기료가 1월에 13.1원이 오르더니 5월에 8원(Kwh)이 올라 올들어 21.1원이 올랐다.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이 최소화된다 해도 5%는 오를 가능성이 높다. 줄잡아 시간당 1만100원이다. 사실 기본급 5~6% 인상은 말장난이다. 이미 중소기업 산업현장의 최저임금은 주휴수당, 식사 제공 등을 포함 1만3000원 수준이다. 돈보다 더 급한 인력난을 비롯 전기료, 최저임금 인상은 사실상 국내에서 제조업을 하지 말라는 말살정책이다.

오래전부터 고비용 저효율 구조에서 심각한 기저질환을 앓아온 섬유를 비롯한 중소기업은 해외로 탈출하거나 문을 닫거나 양단간에 택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미 산지에 줄초상 포연이 자욱하다.

엄살이 아니라 대구경북과 경기지역 섬유산지는 이미 화마가 난무하는 극한의 위험지대로 향한지 오래다. 설상가상 국내 섬유산업의 버팀목이던 화섬산업이 중국산의 저가공세에 백기투항하면서 득달같이 미들스트림을 덮치고 있다.

SM티케이케미칼과 성안합섬이 사업을 정리한 후폭풍은 화섬직물, 니트직물, 염색가공 등 겨우 남아있는 미들스트림의 목졸림을 강요하고 있다. 원사 수급불안에 원산지 문제까지 겹쳐 미들스트림 전반에 생명줄이 가물가물하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수습하지 못하면 향후 2~3년내에 ‘주식회사 한국섬유산업’에 조종이 울리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21년 등록기준 제조업과 도소매업을 합쳐 광의의 섬유패션산업 사업체수는 32만3746개사에 달한다. 종사자수는 역시 제조업과 도소매업, 서비스업을 포함해 75만2027명에 달한다. 4인가족 기준 300만명 이상이 섬유패션 제조업과 도소매, 서비스업으로 먹고 사는 막중한 산업이다. 전 산업의 외화조달 젖줄이던 섬유수출은 70년대 총수출의 54%에 달했고 아직도 국가 기간산업이다.

이같이 막중한 섬유패션산업이 공멸했을때 오는 국가경제의 혼란과 사회적 파문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할 수밖에 없다. 지난 반세기 이상 부침은 있었어도 포기할 수 없는 섬유패션산업의 가치와 생명력이 그렇게 이어져 온 것이다.

하지만 나무도 1년마다 나이테가 늘어나 세월이 흘러 고목이 되고 섬유산업도 중화학·첨단 산업의 외화조달 창구로서 늙은이 뱃가죽이 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분초를 다투는 글로벌 시장의 변곡점에서 첨단화, 기능화, 친환경, 디지털화를 향한 구조고도화의 압력 속에 다시 태어나야 하는 거센 압력과 마주하고 있다.

그동안 기울어진 정책의 경도에 따라 섬유패션산업은 미운 오리처럼 괄시속에 냉대받아 왔다. 전체의 99%가 중소기업인 섬유산업은 자력으로 고비용 저효율을 극복할 구조고도화 달성 능력이 없다. 그래서 이제는 당당히 섬유패션산업을 제물로 성장한 반도체·중화학·IT 산업의 곁불을 요구할 자격과 구실이 있다.

세계 정상의 위치로 우뚝선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며칠전 윤석열 대통령이 팔소매를 걷어 올리고 총력지원을 지시했다. 2027년까지 2조8000억원의 정책금융을 지원하고 유망기술 확보를 위해 1조4000억원의 예타를 추진한다는 것이다.

반도체뿐 아니라 조선, 배터리, IT 산업 등에 파격적인 정부 정책지원이 앞다투어 이루어지고 있다. 섬유패션산업이 개평을 달라는 것이 아니다. 섬유산업으로 조달한 그 많은 첨단 또는 중화학 산업의 외화조달의 빛을 갚으라고 당당히 주장해야 한다.

미래에 대한 가능성이 없다면 주장하지도 않는다. 작년 제주에서 열린 ‘섬유패션 CEO 포럼’에서 특별 강사로 나온 최양희 한림대학교 총장은 섬유패션 시장규모가 반도체의 5배라는 사실을 수치로 근거해 역설했다. 아직은 전후방 스트림 구조가 건실한 한국 섬유패션산업이 선진국이 장악한 중·고가품의 일부만 제대로 탈환해도 재도약 가능성이 충분하다. 다만 대전제는 앞서 지적한 구조고도화의 선행요소가 관건이다.

구조고도화가 말로 되는 것이 아니다. 업계의 각자도생에 따른 자구노력이 전제돼야 하지만 업계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정부가 조(兆) 단위 이상의 통큰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 섬유패션산업의 진면목을 제대로 알리면 아무리 탁상에서 잣대를 돌리는 백면서생(白面書生)들도 눈과 귀가 번쩍 뜨일 수 있다. 국회의원, 행정부 장관, 금융권 인사, 총리까지 막힌 눈과 귀를 뚫고 설득해야 한다.

향후 3년이 생사기로의 분수령이다.

문제는 누가 정부 장·차관, 국회의원들을 직접 만나서 설득할 수 있는 소명의식 강하고 진정한 능력과 지도력을 갖췄는지 내시경으로 봐야한다. 섬유패션산업은 누가 뭐래도 영원한 생활문화 첨단산업이란 대전제 아래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정부 고위인사나 정치인을 설득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지도자가 지금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때마침 한국의 섬유패션산업 首長인 섬유산업연합회장 선임작업이 본격 진행되고 있다. 이론적으로 아무리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어도 모기소리만큼 목소리를 못내는 인사로는 되는 일도 안되는 일도 없다. 투철한 소명의식을 바탕으로 정부 고위인사와 정치인을 설득시킬 수 있는 소신과 전투력, 친화력을 갖춘 섬산련 차기 회장이 필요하다. ‘꿩 잡는 것이 매’라고 불구덩이 속으로 타들어가는 ‘주식회사 한국섬유패션산업’, 특히 미들스트림을 기사회생시킬 구원투수를 찾아야 한다. 향후 3년이 생사기로의 분수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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