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단임인 한국 대통령이 제대로 일할 시간은 3년이다. 첫해 1년은 현황 파악이자 실습기간이고 마지막 1년은 레임덕으로 령이 안서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아직도 지지율 30%대 후반에 머물고 있지만 5월 한달 외교적 성과가 크게 돋보인다. 더구나 온 국민의 눈과 귀가 쏠린 누리호 발사도 성공해 그동안 상심했던 국민의 마음이 많이 누그러졌다.

이제부터는 진짜 자신감을 갖고 정치를 복원시키고 먹고 사는 경제문제를 챙겨야 한다. 각혈하는 정치권의 샅바싸움도 한두달이지 1년 이상 대치정국은 여야 모두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글로벌 경제는 발작을 일으키고 그사이 한국경제는 눈덩이 무역적자에 재정적자, 세수 감소까지 겹쳐 성장률이 고꾸라지고 있다.

생뚱맞은 얘기지만 요즘 인터넷을 달군 ‘사슴뿔의 교훈’에 국민들이 무릎을 치는 이유가 있다. 숲속에서 영역다툼을 치열하게 벌이던 사슴 두 마리가 격렬한 싸움중에 뿔이 엉켜 옴짝달싹 못하는 지경이 됐다. 자존심 때문에 서로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단체장은 감투 아닌 봉사자

반나절이 지나자 사슴들은 싸움을 멈추려 했으나 뿔이 뒤엉켜 빠지지 않았다. 굶어죽게 생긴 사슴들은 그제서야 뿔을 빼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끝내 빠지지 않아 두 마리 모두 죽고 말았다. 수도원 신부님이 산책을 하다 뿔이 엉켜 죽은 두 마리 사슴들을 발견하고 엉킨 뿔을 그대로 잘라 수도원에 걸어 놓았다. 방문객이 뿔을 보고 물어볼 때마다 사슴의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서로 힘을 과시하다 죽은 두 사슴처럼 분노에 눈이 멀어 자존심만 내세운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요즘 정치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본질문제로 돌아가 지난주(5월 25일밤) 강남 삼성동 섬유센터에서 아주 특별한 행사가 있었다. 한국섬유수출입협회 창립 60주년 기념식이다. 이 땅의 빈곤퇴치 주역인 섬유수출 60년을 반추하고 미래 비젼을 제시하는 거창하고 화려한 이벤트였다. 정부 인사와 섬유패션 단체장, 업계 중진, 연구소, 학계 인사 등 200여명을 초청한 이 매머드 행사는 잠시 웃고 즐기는 그런 행사가 아니었다.

지난 역사의 재조명과 회원사 직원중 30년 이상 장기 근속직원 및 모범근로자 자녀, 그리고 모범 외국인 근로자까지 총 68명을 선발해 포상하는 의미있는 행사였다.

포상 수상자에게는 1인당 100만원이 넘는 행운의 열쇠와 장학금 100만원, 격려금 100만원씩 현금으로 지급됐다. 현장에서 장기간 묵묵히 땀흘려 일한 직원들 및 직원 자녀 장학금과 외국인 근로자에게까지 적지 않은 금액을 현금으로 포상해 섬유산업에 자긍심을 갖고 더 열심히 일해 달라는 값진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작은 섬산련으로 불릴만큼 위상이 높아졌다 해도 섬수협이 어려운 시기에 2억원 가까운 경비를 감당하면서 큰 행사를 치룰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협회를 ‘우리를 위한 단체’로 차돌처럼 믿고 신뢰하는 회원사의 적극적인 동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섬수협은 당초 1억원 미만의 예산으로 조촐하지만 의미있는 행사로 치룰 방침이었다. 민은기 회장과 사무국이 회장단 회의와 이사진 회의에 행사 개요를 설명하자 “아주 좋은 발상”이라면서 “어렵지만 우리가 십시일반 동참하겠다”며 자발적인 참여를 선언했다.

정확한 액수는 파악되지 않았지만 회장단이 1000만원에서 500만원, 이사진에서 300만원 내외씩 협찬하면서 앞다투어 500만원, 1000만원을 추가 기탁했다. 某 이사 상사는 솔선해서 2000만원을 쾌척했다.

이번 섬수협 회원사의 소속 단체에 대한 신뢰와 애정은 소 닭보듯 하고 회비마저 기피하는 업계의 풍속도와는 천양지차란 점에서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수많은 섬유패션 단체가 창립뿐 아니라 뜻깊은 행사를 갖고 싶어도 엄두를 내지 못한 이유가 기본 회비마저 기피하는 등 경비 조달 때문이다. 섬수협은 전국 섬유패션 단체중 회비 납부율도 섬수협이 단연 1위일 정도로 참여율과 결속력이 압도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협회나 조합은 소속 업종의 구심체다. 조합원·회원사가 어려울 때 온몸을 던져 해결하고 지원해야 하는 것이 단체의 설립 목적이고 의무다. 섬수협 역사가 60년이 아니라 100년이 됐다 해도 돈 얘기만 나오면 ‘변 묻은 새발 털듯’하는 업계 풍토와 섬수협의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섬수협의 이번 쾌거는 단체를 위한 단체가 아니라 업계를 위한 단체란 사명감과 소명의식의 결과다. 현 민은기 회장과 전임 박상태 명예회장, 그 이전 백영기, 박창호, 강태승씨 같은 기라성 같은 덕목들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다.

한마디로 이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섬수협을 이끄는 이사진·회장단들이 아낌없이 거액을 쾌척하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사 단체들이 부러움과 충격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회원사·조합원사의 사고 양태에 달려 있지만 단체장이 얼마나 진솔하게 헌신적인 봉사를 하느냐에 따라 회원사의 반응이 다를 수밖에 없다.

섬유패션산업의 상황이 망망대해 편주처럼 위기상황에 몰릴수록 업계와 단체가 혼연일체가 돼야 한다. 업계에 필요한 최대한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업계 역시 단체와 가족처럼 소통하며 난제를 해결해야 한다. 봉사가 목적인 헌신적인 단체장을 감투로 착각하는 쌍팔년식의 사고양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벼랑끝 섬유패션산업 구원투수는?

지금 벼랑 끝에 몰린 섬유패션산업을 기사회생 시키기 위해서는 섬유패션 단체장을 정점으로 지도자들이 팔소매를 걷어야 한다. 무슨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당장 구조고도화를 겨냥한 조(兆) 단위 통큰 지원을 정부로부터 받아내야 한다. ‘울지 않으면 젖주지 않는다’. 정·관계 인사들을 수시로 만나 섬유패션업계의 당면 현안을 관철하기 위해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열정을 겸비한 전투력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정부가 변해야 은행도 달라진다.

때마침 섬유패션 단체의 총본산이자 명실상부한 섬유패션업계 수장(首長)인 섬산련 차기회장 선출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난세에는 영웅이 필요하고 전쟁에는 노련한 장수가 필요하다. 극한 위기상황에서 불구덩이로 치닫고 있는 섬유패션산업의 소방수이자 구원투수로 누가 적임자인지 교황을 뽑는 콘클라베 기능의 5명 추대위원의 현명한 판단이 요구된다. 도처에서 고비용 저효율 구조속에 벼랑 끝에 몰린 섬유패션업계의 줄초상을 재촉하는 포성이 예사롭지 않다.

현실적으로 정부의 파격적인 관심과 지원이 절실한 섬유패션산업의 기사회생을 겨냥한 능력자로서 정·관계 설득의 구원투수가 누구인지 애국하는 심정으로 열정과 추진력의 지도자를 선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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