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는 효자산업... 실제는 그물로 바람 잡는 정책 희생
‘난세에는 영웅이 필요’ 섬유패션 首長 잘 뽑자
각자도생 한계 고비용 저효율 구조 타개 통큰 지원 시급
친환경· 디지털· IT차별화 구조고도화 지원 속도 내야
화염에 휩싸인 섬유산업, 소방수가 필요하다

독보적인 국내 정상의 섬유패션 전문지로 우뚝선 국제섬유신문이 6월 2일로 창간 30주년을 맞는다. 산술적으로 강산이 3번 변하는 짧지 않은 세월동안 이땅의 섬유패션산업 중흥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경주해 왔음을 자부한다.

분초를 다투는 변화무쌍한 글로벌 시대 변곡점의 꼭대기에서 섬유패션산업의 진정한 나침판으로서 어디로 가야한다는 대전제를 제시하기 위해 25시를 뛰며 전력투구해 왔다.

글로벌 섬유패션 정보 보고(寶庫)로서 업계가 필요한 지구촌 유익한 정보를 신속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총력을 경주해왔다. 그 결과 유사 전문지와 비교될 수 없는 열독률 1위라는 신뢰와 권위의 금자탑을 쌓았다.

국내뿐 아니라 미주, 유럽, 중남미, 동유럽, 아시아권 등 지구촌 전역에서 한국의 섬유패션 전문지의 대명사로 불리며 공신력을 인정받고 있다. 국제섬유신문의 오늘이 있기까지 성원해주신 식견 높은 애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고마운 인사를 드린다.

그러나 지금 이순간 환희와 성취욕으로 가득해야할 창간 30주년에 즈음해 심한 자괴심과 열패감을 떨칠 수 없는 착잡한 심정을 솔직히 고백한다. 코로나 팬데믹의 모진 세월을 넘겼지만 여전히 글로벌 경제가 발작을 일으키고 아슬아슬한 안보·경제·정치 상황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통크게 양보해 한·일 관계가 정상화되고 한·미·일 3국 안보 공조체제가 차돌처럼 강해졌지만 정치·경제 상황은 총체적인 위기 상황이다. 우선 먹고 사는 경제문제가 시계 제로다.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에서 무역적자가 14개월째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세수가 수십조나 펑크나 나라 곳간이 비어가는 위험수위에 몰리고 있다. 지난해 무역적자가 사상 최대인 470억 달러를 기록한데 이어 올들어 4월말 기준 벌써 적자가 250억 달러에 달했다. 구조적인 고비용 저효율 구조는 정권이 바뀌어도 개선되지 않고 제조업 경쟁력이 날개없이 추락해 18년만에 1인당 GDP가 대만에 추월당하는 참담한 상황이다. ‘상저하고’는 구두선일뿐 글로벌 경제가 하반기에 회복될 가능성은 더욱 가물가물하다. 세계 10위 경제대국, 경제규모 세계 8위, 세계 5위 수출대국 위상에 적색경보가 켜졌다.

무엇보다 정치가 문제다. 국민의 흐르는 눈물을 닦아줘야할 정치가 오히려 국민의 뺨을 때려 눈물을 강요해 부박한 민낯을 여과없이 드러내고 있다. 정권이 바뀐지 1년이 지났어도 대화와 설득의 정치는 실종됐고 물고 뜯는 악행과 폐단이 난무한다. 여야 불문하고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너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적과 아군의 논리만 가득하다.

본질문제로 돌아가 섬유패션산업 현주소 역시 30년만에 가장 어둡고 깊은 죽음의 계곡에 빠져들고 있다. 지난 30년, 돌아보면 긴 겨울도 있었고 깊은 어둠도 있었지만 지금처럼 심하게 부서지고 망가지는 천둥번개는 처음이다.

중언부언하지만 고비용 저효율 구조에서 재벌 축성의 지름길인 화섬산업부터 속수무책 고꾸라지고 있다.

화섬산업 붕괴는 득달같이 대구와 경기 산지 직물산업에 도산 돌림병이 창궐해 혹독한 생존게임에 내몰리고 있다. 해외 시장은 악화되고 사람은 없고 재고만 쌓이는 악순환 때문에 벼락거지가 양산되고 돈을 벌고 못벌고가 아니라 ‘사느냐’ ‘죽느냐’가 관건이다.

각자도생의 냉엄한 현실 앞에 죽고 사는 문제는 기업에게 달렸으나 기업의 힘으로 기사회생 하기에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반도체, 조선, 소부장에 수십조씩 지원해도 제조업 수와 고용에서 가장 큰 비중인 섬유산업에는 ‘그물로 바람잡는 정책’ 뿐이다. 지난 71년 섬유수출이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53.6%를 차지하며 첨단산업에 필요한 외화조달 일등공신이었다. 이 땅의 빈곤퇴치 주역이자 경제성장의 근간인 섬유산업은 역대 정부로부터 배신 당했다.

물론 정부 정책에서 목표와 방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친환경, 디지털, IT접목, K-패션, 스마트 공장, 첨단 자동화 등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한 정책이 쏟아져 나왔거나 나오고 있다. 하지만 목표와 방향의 총론만 있고 신속한 정책 집행을 위한 각론이 없다.

섬유산업이 ‘옹기짐 지고 가다 자갈밭에 넘어지는 상황’임에도 ‘토사곽란’에 소독약 바르는 돌팔이 정책 뿐이다. 첨단 자동화 스마트 공장을 표방하지만 이를 위한 공장 면적과 자금이 없어 항상 도돌이표 립서비스 뿐이다.

‘선무당 사람 잡고 반풍수 집안 망한다’는 옛말처럼 섬유패션산업의 진면목을 외면한채 ‘사양’이니 ‘한계’니 하며 미운 오리 취급하는 청맹과니들 때문에 섬유산업이 화염에 휩싸이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2020년 세계 섬유패션 시장규모는 반도체의 4000억 달러보다 2배 이상 많은 1조 달러였다. 2026년의 섬유패션 시장규모는 2조 달러로 늘어난다는 것이 유럽 전문가들이 제시한 정설이다. 세계의 부호는 루이비통, 자라, 유니클로, H&M 오너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 광활한 시장에서 고가품은 선진국이, 중저가는 후발 개도국이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업·미들·다운스트림 기술과 생산능력을 고루 갖춘 강국이다. 그럼에도 스트림간 협력과 지원이 따로 놀아 효과를 못보고 있다.

섬유패션산업 구조를 선진국처럼 고도화하면 길은 얼마든지 있다. 문제는 투자 능력이다. 화섬산업부터 대구와 경기 산지 제·편직, 염색 등 미들스트림이 급속도로 붕괴되는 것은 투자를 외면하거나 기피했기 때문이다. 첨단 자동화 설비와 기술개발이 붕괴 방지는 물론 안정성장의 지름길이다. 그럼에도 곳간이 빈 기업의 자체 능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한계상황을 맞은지 오래다. 중국과 같거나 비슷한 제품으로는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조(兆) 단위 통큰 지원책이 현실적인 대안이다. 정부의 과감한 지원·육성 의지는 은행권의 태도도 바뀔 수 있다. 유능한 지도자가 총대를 메고 관철해야 한다.

때마침 섬유패션산업의 구심체인 한국섬유산업연합회장 선거가 임박했다. 일각에서는 국내외 시장 경기가 좋아져야지 회장이 바뀐다고 해결될 사항이 아니라는 냉소적인 반응도 있다.

하지만 지도자의 역량에 따라 정·관계, 대통령까지 설득할 수 있다. 섬유패션산업 육성이 국가 경제와 고용 확대를 위해 필연적인 논리이자 현실적인 대안임을 전면에 나서 설득할 지도자가 필요하다. 난세에는 영웅이 필요하다. 섬유패션산업은 태평성대가 아닌 누란의 위기상황이다. 이상운 현 회장이 끝까지 유임을 고사할 경우 섬유패션산업 특히 마지막 남은 미들스트림을 살릴 수 있는 구원투수, 배짱과 강단 있는 지도자를 잘 선택해야 한다. 배가 태풍을 만나면 선원들은 바다를 보는 것이 아니라 선장의 얼굴을 쳐다본다는 사실과 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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