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보다 더 급한 인력난에 신음하는 중소기업은 계절의 여왕 5월이 더욱 죽을 맛이다. 첫주부터 일하는 날보다 휴일이 더 많아 공장을 세울수도 돌릴수도 없는 상황이다.

실제 근로자의 날과 어린이날 연휴가 겹쳐 첫 주에 4일 놀고 3일 일했다. 27일 석가탄신일도 대체휴일을 적용해 3일 연속 쉰다. 5월 한달 휴무일만 11일이다. 2023년 달력을 봐도 공휴일 16일, 토·일요일을 포함해 휴일이 총 116일이다. 새로 석가탄신일과 크리스마스 대체휴일을 포함해 2일이 더 늘어난다.

내수 활성화를 위해 휴일을 늘린다고 하지만 돈이 없지 시간이 없어 소비를 못하는게 아니다. 글로벌 경제가 발작을 일으키는 절박한 상황에서 이런 이유 저런 핑계로 휴일을 늘리는 것이 능사인지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아직도 선진국보다 일하는 날이 많다고 하는 정치권과 정부 당국자는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중소기업의 고통을 모른다. 선진국 따라하는 것도 좋지만 취약한 경제구조에서 자칫 ‘짱뚱어가 뛰니까 게가 따라 뛰다 복판이 부러져 죽는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TK케미칼· 성안합섬 사태 후폭풍

본질문제로 돌아가 ‘허허 웃어도 빚이 천량’이라고 우리 섬유산업이 무더위에 상해버린 숙주나물처럼 시금털털하다. 아니 섬유산업 전반에 천둥번개가 치며 혹독한 생존게임에 내몰리고 있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기업 현장은 물론 저자거리 마실나온 사람까지 한국 섬유가 “죽음의 계곡에 빠져들고 있다”고 한숨이다.

국내에 마지막 남아있는 직물·염색·준비공정의 미들스트림마저 어느덧 ‘바람보다 먼저 누운 풀’처럼 무덤을 향하고 있다. 수출이 70% 이상인 대구 화섬직물과 경기북부 니트직물은 그나마 유지하던 수출오더마저 3월 중순 이후 급냉현상을 보이고 있다. 돈이 남건 안남건 오더라도 있으면 가동을 하겠지만 수출오더가 성수기 중심에서 고꾸라지고 있는 형국이다. 겨우 채산 유지의 버팀목이었던 환율마저 다시 1200원대로 떨어지고 나면 수출할수록 눈덩이 적자를 각오해야 한다. 대구 직물업계에 4월에 들어와야 할 수출대금 T/T 결제가 전달보다 3분의 1로 줄어 아우성이다.

아무리 고래 심줄보다 강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한국 섬유라고 하지만 고립무원의 한계상황을 버티는데는 정도가 있다. 고임금 인력난의 근본문제로 인해 외국인근로자 월 임금을 400만원까지 지불하고 근근히 돌리고 있으나 최저임금이 내년부터 시간당 1만원을 넘어서면 극한상황을 피할 수 없다. 외국인 임금이 내년에 1일2교대 조건 월 500만원을 지불해야하는 상황에서 버틸 재간이 없다.

산업용 전기료가 1월초 역대 최고치인 킬로와트시(Kwh)당 13.1원을 올려 기업마다 비명을 지르는 상황에서 10원 가까이 추가 인상된다. 3월 인상을 늦춰 1분기에만 한전 적자가 5조3000억원 규모에 달한다고 인상에 제동을 건 정치권에 화살이 빗발쳤다. “한전이 하루 이자만 40억원에 달한다”고 언론까지 앞장서 전기료 인상을 채근하는 상황이다. 한전 살리자고 제조업 몰살시키자는 논리와 비슷하다.

또 하나 상황이 심각한 것은 대구나 경기북부 직물업계에 원산지 문제가 발등의 불로 직면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지와의 FTA협상에서 대부분 ‘얀 포워드’를 원칙으로 하고 있어 직물원단에 소요되는 원사는 국산 사용이 의무화되고 있다. 하필 TK케미칼과 성안합섬이 폴리에스테르 사업을 포기한데 따른 원산지 문제가 비상이 걸렸다.

한·미 FTA나 한·EU FTA 협정상 원산지를 위반했을 때는 수입자가 그동안 무관세 혜택분을 전부 토해내야 한다. 미국과 EU 바이어가 한국산 직물을 수입했을 때 받은 무관세 혜택을 가산금까지 얹혀 세관에 소급해서 환수해야 한다. 한국 수출업체를 믿고 수입한 바이어는 과거분까지 소급해서 관세를 환수했을 때 그 금액은 엄청날 수밖에 없다. 원산지 규정을 위반한 귀책사유가 수출업체에 있다면 수출업체는 거래선을 잃는 것은 물론 거액의 관세 혜택분을 고스란히 지불하는 무서운 패널티를 각오해야 한다.

아직은 국내 직물업체들이 FTA 협약국에 수출하는 직물은 국산 원사를 사용했다고 보지만 국내 원사가 부족해 중국산 수입사 의존이 많을 경우 FTA 협정국 수출용은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효성과 대한화섬, 도레이첨단소재, 휴비스 등 남아있는 화섬메이커들도 국내 직물업체가 FTA 협약국에 수출하는 직물에 차질이 없도록 원사를 공급해야 한다. 벌써부터 TK케미칼과 성안합섬 사업포기후 국내 화섬메이커들의 고자세가 드러나 수요업계가 불만을 표명하고 있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환율이 올라 국산과 수입사 가격이 동일해졌다. 국내 화섬메이커가 책임감을 갖고 폴리에스테르사 생산량을 대폭 늘려야 한다.

이 와중에 답답하다 못해 분통이 터지는 것은 TK케미칼과 성안합섬 사태로 화섬사 수급불안에 가격이 오르고 원산지 문제까지 비상이 걸려 대구와 경기북부 산지가 불구덩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데도 단체나 연구소가 불구경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산 화섬사 수입이 더욱 봇물을 이루면서 국내 원사메이커의 공급능력에 대한 정보마저 깜깜이다. 수많은 사종의 규격별 공급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정보가 없다. 원산지 문제가 발등의 불인 상태에서 국내 수요업계가 필요한 사종과 규격별 공급능력을 몰라 헤메는 기업이 많다.

불구덩이 직물산업, 단체· 연구소 불구경하나

단체와 연구소가 화섬사 수급에 차질이 없는지, 문제가 있다면 어떤 사종과 규격이 국내 공급이 어려워 대책을 세우라고 공지하는 성의라도 있어야 한다. 수입사라고 모든 사종·규격이 필요할 때 적기에 갖다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TK케미칼과 성안합섬 사태 이후 업계는 물론 언론이 상황의 심각성을 대소특필해도 죽건 살건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이 중차대한 시기에 중소기업 생산자 단체인 대구경북직물조합만이 호떡집에 불난것처럼 발을 동동 구를뿐 대다수 단체나 연구소는 무감각이다. 섬유단체나 연구소가 화섬메이커와 접촉해 국산증산을 촉구하고 실상을 정확히 전달하는 성의가 있어야 한다.

성급한 예단이지만 TK케미칼과 성안합섬이 업을 포기했다면 다른 화섬메이커 일부도 문닫을 개연성이 크다. 벌써 某 화섬메이커의 6월말 시한폭탄 루머가 파다하다. 주식회사 한국섬유산업의 허리부분인 미들스트림의 공멸을 알린 신호탄임을 알아차려야 한다. 단단히 준비해야 공멸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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