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안팍이 경제·안보의 복합위기로 불확실성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글로벌 경제는 엄동설한이고 북한 김정은은 연일 핵시위로 겁박하고 있다. 설마가 사람 잡듯 핵 모험의 불장난을 즐기는 김정은이 언제 무슨 짓을 저지를지 당최 알 수 없다. 모골이 송연한 국민들은 불안성 가연심리에 집단 공포증에 시달리고 있다.

배신감과 불쾌감을 떨칠 수 없는 것은 한국의 선의를 배은망덕으로 되갚은 일본의 태도다. 홀딱 벗다시피 강제동원에 면제부를 준 정상회담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뒷통수를 쳐 국민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이 와중에 한·미정상회담을 목전에 두고 뜬금없이 대통령의 측근이자 실세인 안보실장이 전격 경질됐다. 필유곡절이 있겠지만 서슬퍼런 정권 초기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권력핵심이 물러갈 퇴(退)를 당해 ‘권불 10년’은 커녕 1년짜리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안보가 겁나고 먹고 사는 글로벌 경제가 발작을 일으키는 이 판국에도 정치권은 여전히 타협과 절충은 없고 우격다짐과 내지르기 독심술이 판을 친다. 벚꽃놀이가 절정에 이르고 거리와 산야에 꽃구경 인파가 대열을 이룬 이 순간에 민초의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엄동설한이다.

이달 전기료 또 인상 받아놓은 밥상

화제를 바꿔 제조업으로 먹고 사는 나라에서 제조업을 할 수 없는 악순환속에 또다시 전기료·가스요금이 들먹거리고 있다. 지난 29일 정부·여당의 당정협의에서 유체이탈식 전기·가스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두루뭉실 발표했다. 1분기 전기요금을 사상 최고 수준으로 올린데 이어 2분기 문턱에서부터 요금인상을 기정사실화하고 신호탄을 쏜 것이다.

정부·여당 주장은 “한전의 경우 하루 이자부담이 38억원 이상이고 가스공사의 경우 하루 이자부담이 13억원 이상이어서 전기·가스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에너지 공기업 대변인같은 너스레를 떨었다.

제조업은 경영구조상 원자재, 인건비, 전력료 3대 요소가 원가구성의 핵심 포인트다. 원자재는 국제가격이 기준이지만 한국은 가파른 최저임금과 주52시간의 노동하기 좋은 나라이다. 고임금·인력난도 벅차 경쟁력이 추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리했던 전력료까지 중국·베트남보다 비싸 섬유 제조업중 원가의 40%를 차지하는 업종이 많다. 한전과 가스공사 부채 해소도 중요하지만 제조업의 고비용 구조를 덜어주기 위해 전기요금·가스요금 인상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한전은 지난해 3차에 걸쳐 전기료를 인상했고 올 1월에 작년 인상분 전체보다 무려 68%나 높은 Kwh당 13.1원이나 올려 에너지 다소비 업종은 비명을 지르고 있다. 가연기 1대에 전기료가 작년의 1500만원 수준에서 올해 2000만원으로 급등했다. 제조원가중 전기료가 40%에서 50%로 늘어났다. 염색공장 역시 작년에 업체당 5000만원 수준에서 8000만원으로 높아졌다. 면방도 전기료 인상으로 가뜩이나 업황 공황에 눈덩이 적자를 감수하는 절체절명 상황에서 전기료 인상으로 적자규모가 더욱 커지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2분기 문턱부터 전기료와 가스료를 올린다는 것은 한전·가스공사 살리려다 제조업을 사지로 내모는 격이다. 지난해 한국이 26% 전기료를 인상할 때 중국은 13%밖에 올리지 않았다. 불과 몇년전까지 우리보다 불리했던 베트남의 전기료가 이제 한국보다 18% 싸다. 에너지 비용이 제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결국 국내 제조업은 간판 내리거나 해외 탈출을 재촉하는 처사다.

물론 한전과 가스공사의 천문학적인 적자를 방치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들 공기업이 제조원가를 줄이기 위해 구조조정은 물론 원유나 가스 수입과정에서 최선을 다했는가 하는 점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 침공으로 기피하고 있지만 러시아산 원유나 LNG 수입을 미국이 꼭 반대한 것은 아니다. 미국은 부족한 EU에 가스를 공급하기 위해 한국이나 일본에 러시아산 가스를 들여오는 것을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환영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유럽에 공급하는 가스 가격보다 절반 또는 3분의1 가격에 수입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해도 가스공사가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주와 카타르, 말레이시아산 LNG를 러시아보다 배 가까이 비싸게 사들이고 있다. 가스공사가 수입하는 LNG 가격이 포스코, SK, GS가 수입하는 것보다 54% 이상 비싸다는 보도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은 미국 눈치보고 작년 상반기에 러시아산 가스 수입을 일시 중단했다가 다시 연간 600만톤, 5년간 3000만톤이나 유럽 공급가보다 파격적으로 싼 값에 대량으로 구입해 한국처럼 가격폭탄을 겪지 않았다. 같은 가스수입국인 일본은 난방비 폭탄이 없는데 한국만 겪는 이유를 깊이 새겨야 한다. 결국 가스공사가 비싸게 LNG를 수입하는 거래선을 바꾸지 않은 것이 국가적으로 무역적자를 눈덩이처럼 늘어나게 했고 난방비 폭탄을 유발한 큰 원인중의 하나라는 것이 전문가의 분석이다. 더구나 지금은 사우디산 LNG가 톤당 350달러 수준의 절반값으로 공급하고 있으나 웬일인지 값이 저렴한 사우디산 수입을 아직도 외면하고 있는지 알수가 없다.

동맹은 중요하다. 더구나 한미동맹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미국이라면 십리밖에서부터 기는 일본도 미국 눈치를 보며 미쓰비시에서 투자한 러시아 가스전을 작년초 포기할 듯 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시비하지 않는다는 것을 재빨리 알아차리고 대량으로 장기계약해 들여오고 있다는 것이다.

2분기 전기료와 가스료 인상은 이제 받아놓은 밥상이다. 지금도 제조원가의 40~50%에 달하는 전력료에 경쟁력이 풍비박살난 제조업의 생존에 빨간불이 켜질 수밖에 없다. 한전과 가스공사가 동맹인 미국이 반대하지 않은 수입선을 발굴해 싸고 좋은 가스를 들여오는데 팔소매를 걷어야 한다. 고정 거래선이라고 비싼값으로 에너지를 스스럼없이 수입하는 것은 국가경제의 핵심인 무역수지와 제조업 경쟁력을 망치는 길이다. 정치권이 낮밤 가리지 않고 각혈하며 싸울 것이 아니라 이같은 모순과 폐해를 제대로 파헤쳐 바로 잡아야 한다.

제조업 불구덩이 속으로 내몰아서야

어폐가 있지만 전기료·가스료가 지금같은 속도로 인상행진을 거듭하면 섬유산업 등 중소기업은 버틸 재간이 없다. 그렇지 않아도 국내 제조업 현장은 하루가 다르게 거미줄과 곰팡이가 만연되고 있다.

제조업 현장에는 지금 이순간 살아남기 위해 마른 수건 쥐어짜듯 비용 절감을 위해 총력전을 전개하고 있다.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자동화 설비 확충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고임금·인력난의 고통을 덜기 위해 생산성을 올리기 위한 투자와 R&D 개발에 몸부림치고 있다. 기업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다하고 있다. 하지만 전기료·가스료는 기업의 힘으로 막아내거나 해결할 재간이 없다. 공멸위기의 백척간두에 몰려있는 제조업을 불구덩이 속으로 몰아넣는 전기료·가스료 인상은 최소한으로 제한해야 한다. 날마다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제조업 기업인의 피말리는 고통을 성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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