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악마와의 거래’라는 어느 영화 대사가 실감난다. 요즈음 돌아가는 정지권 통박과 무관하지 않다. ‘진보는 분열로 망하고 보수는 부패로 망한다’는 촌철살인을 되새기게 한다. 야당은 물론 집권 여당의 진흙탕 싸움또한 도긴개긴이다.

민주당은 단일대오로 차돌처럼 뭉쳐도 국가 권력과 싸우기엔 힘이 부친다. 그럼에도 이재명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자중지란을 일으켰다. 원인제공은 이재명 대표에게 있지만 자폭적인 반란표는 걷잡을 수 없는 후폭풍을 몰고온다. 벌써 개딸(개혁을 위한 딸들)들의 수박색출 광풍이 불고 있다. “진보가 분열하면 망한다”는 역사의 교훈을 망각한 처사다.

집권 여당인 국민의 힘 대표 경선에서도 연포탕은커녕 진흙탕 싸움이 가관이다.여론조사 1위인 김기현 후보 땅투기를 둘러싸고 아군끼리 총질하는 모습이 불성 사납다.대표 후보간 독설과 욕설의 분탕질과 유체이탈식 궤변에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8일 대표 경선이 끝나면 만신창이 상처는 봉합되겠지만 깊게 파인 흉터는 고스란히 남을 수밖에 없다. 수출이 망가지고 미분양주택이 급증한데다 세수가 펑크나는 비상경제 체제에서 비타협과 배척의 투쟁으로 물고 뜯는 정치권의 악행과 폐단에 국민은 넌덜머리 난다.

확산되는 중국산 POY 반덤핑 제소 갈등

본질문제로 돌아가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고 했지만 요즘 섬유업계 상황은 말릴 수도 붙일 수도 없는 난감한 처지다. 60년 화섬 역사상 전대미문의 엎어진 상태인 화섬업계와 대구화섬직물 업계의 보이지 않는 총성이 예사롭지 않다. ‘주식회사 대한민국섬유산업’이란 공동체 의식은 사라진 채 ‘너죽고 나살자’는 식이다. ‘안방에 가면 시어머니 말이 맞고 부엌에 가면 며느리 말이 맞는’ 모양세다.

중국산 화섬사의 규모 경쟁을 통한 밀어내기 덤핑 수출로 생명줄이 끊기고 있는 화섬업계가 마지막 남은 수단으로 수입 POY에 대한 덤핑 제소를 단행했고, 급기야 무역위원회가 조사개시 결정을 내렸다. 반덤핑 제소는 국내산업 피해 방지를 위해 법적으로 보장된 제도다. 오죽했으면 반덤핑 제소 후 조사개시결정이 내려지기 전에 제소당사자가 업을 포기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겠는가?

국내 POY생산 중견기업인 TK케미칼과 성안합섬을 대신해 화섬협회가 총대를 메고 제소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무역위원회가 앞으로 6개월 안팎 국내 피해기업 실태와 중국 덤핑업체 7개사에 대한 조사작업에 들어간다. 제소당사자인 TK케이칼은 폴리에스테르사업을 포기했음에도 무역위 조사에는 적극 임하겠다는 자세다. 한국화섬업계의 목줄을 끊고 있는 중국 화섬메이커의 덤핑행위 근절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겠다는 자세다. 제소자 측이 제기한 덤핑행위에서 중국내 가격보다 17%이상 한국에 싸게 팔았다는 것이다. 이 제소내용을 어느정도 예비판정때 반영될 지 두고 볼 일이다.

반면 대구산지 화섬직물 연관업체는 화섬협회의 중국산 POY 반덤핑 제소가 부당하다며 제소취하를 요구하고 있다. 중국산 POY를 들여와 DTY를 만드는 가연업체와 ITY사를 만드는 연신업체, 이를 최종 사용하는 화섬직물업체들이 완강히 반발하고 있다. 급기야 중소직물 생산자 단체인 대구직물조합이 ‘제소가 부당하다’며 제소취하 건의서를 주무부처에 제출했다.

대구직물업계 측은 이미 국내 소비량의 60%를 중국산이 장악한 상황에서 ”만약 반덤핑관세가 부과되면 그만큼 수요자들의 제조원가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실제 국내 화섬업계는 공급능력을 대거 상실해 “중국산 POY가 없으면 제직공장가동을 멈출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시장원리에 따라 국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POY수입을 자유롭게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뿐만 아니다. 대구직물조합은 며칠 전 정기 총회에서 조합이 중국산 화섬사 수입창구를 개설해 공공사업을 진행하기로 결의 해놓고 있다. 국내화섬산업이 줄초상 당하는 상황과 비교해 야속하지만 현실적인 대안을 미룰 수 없다는 것이다.

이미 폐색이 짙은 화섬업계는 대구직물업계 처사에 “그럴수 있느냐”며 부글부글 끓고 있다. 그럼에도 마땅한 대응책이 없다. 대구직물업계 역시 “화섬업계가 이 모양 이 꼴이 될 때까지 뭐했느냐?”며 반발하고 있다. “세월 좋을 때 단물만 챙기고 대만처럼 설비 자동화 재투자를 외면한 결과”라며 ‘자업자득’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일단 현실적으로 공급능력을 대거 상실한 화섬메이커가 코너에 몰린 것은 부인 못할 사실이다. 그러면서 내심으로 국산원사 사용을 기피하고 중국산 수입사에 의존한 대구직물업계의 야박한 처사가 화섬산업을 이지경으로 몰고갔다는 항변이다.

문제는 양 업계의 대화 창구마저 없다는 점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 당연히 화섬메이커의 구심체인 화섬협회가 나서야 하지만 이미 회장이 이달말로 퇴진하기로 해 능력도 의욕도 없는 상태다. “화섬사 수입 창구까지 개설하겠다”는 대구직물업계가 펀치를 날려도 ‘아얏’ 소리 못하고 얻어맞고 있다. 화섬재벌의 60년 구심체가 반신불수가 돼 식물단체로 전락하는 과정에 있다. 하루빨리 화섬협회가 제기능을 발휘해 남은 회원사들의 공멸을 막는데 담장이 돼야한다.

직격탄 상상만 하지말고 예상도 하자.

아쉽고 안타까운 것은 국내 화섬산업이 공멸하면 이미 중국 손아귀에 들어간 화섬사수급에 직격탄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TK케미칼의 화섬산 생산 중단이 선언되자 중국산 가격이 오르고 있다. 당장은 국내 직물업계의 화섬사 재고가 어느정도 남아있어 충격이 덜하지만 2~3개월후엔 파동이 우려된다. 납기도 중국메이커 마음대로 늦춰지기 마련이다.

전량 중국산에 의존하는 염료사태의 재연이 불을 보듯 뻔하다. 한마디로 국내 화섬메이커 몰락은 득달같이 대구화섬직물업계에 전이되는 것은 받아 놓은 밥상이다. 국내 화섬 메이커가 건재할 때와 소멸후의 중국상술은 180도 달라지는 것은 충분히 예견이 가능하다.

화섬산업이 몰락하기전 지난 60여년 한국의 섬유산업은 고도 성장했다. 풀리에스테르, 나일론, 아크릴 3대 화섬메이커는 재벌축성의 바로미터였다. 때로는 화섬사 배급시기의 횡포도 있었지만 화섬 메이커덕에 대구화섬산업이 생성되고 성장했다. 염색가공이 급성장한 것도 맥을 같이 한다.

그토록 끈끈한 관계의 화섬업계와 대구화섬직물이 어느덧 “네가 죽건 말건 나만 살겠다”는 안면몰수로 바뀌었다. 웬만하면 섬유산업연합회와 대구섬산련 등 관련 단체들이 중재에 나서 양측의 입장을 조율하는 노력을 해야 할 텐데 강 건너 불구경이다. 성을 쌓는 데는 10년이 걸려도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한국의 섬유산업성이 무너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귀청을 때린다. 남아있는 섬유산업이 죽기전에 물을 주는 비상대책이 시급하다.

<조영일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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