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실종됐다. 지랄맞은 한국 정치가 한심하다 못해 기가 막힌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후폭풍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거두절미하고 어패가 있지만 158명이 희생된 대참사에 대해 주무장관이 법적 책임 이전에 정치·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났어야 했다.

돌아가는 통박을 보면 먹고 사는 경제부터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에서 지난해 무역적자가 470억 달러에 달했다. 11개월 연속 무역적자가 이어지면서 올 1월 한달 무역적자가 수출 사상 최대규모인 126억9000만 달러에 달했다. 한국경제의 버팀목인 반도체 수출이 무너진 것은 나무로 치면 줄기가 아닌 뿌리가 심하게 다친 격이다.

뛰는 물가와 난방비 폭탄에 국민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민생을 책임져야할 여당은 당 대표 선출을 둘러싸고 후보끼리 물고 뜯는 사생결단 싸우고 있다.

의석수를 앞세운 거야의 독주와 횡포는 이 장관 탄핵으로 그칠 것 같지 않다. 김건희 여사 특검에 이어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 대표 경선에 개입한다”며 고발을 준비하는 것은 앞으로 대통령 탄핵도 불사하겠다는 전조등으로 비쳐지고 있다. 그야말로 갈지자(之) 행태에 정치는 파행이고 경제는 난국이다.

튀르키예에 지진피해 성금 보내자

본질문제로 돌아가 먼저 대지진으로 수십만명의 인명과 재산 피해를 입고 추위에 떨고 있는 튀르키예(터키) 국민들에게 심심한 조의와 위로를 보낸다. 6.25 남침 전쟁때 파병을 해준 형제국 튀르키예는 우리의 중요한 섬유 교역국이다. 이 나라는 섬유 수출이 연간 82억 달러로 세계 8위 국가다. 수입규모는 85억 달러에 달해 한국으로부터 화섬사와 화섬직물 등을 대량 수입하는 주요 시장이다.

지난해 국산 섬유류의 대튀르키예 수출은 4억5100만 달러 규모다. 이집트와 베트남 등 해외 진출국에서 수출한 실적을 포함하면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여진다. 반면 튀르키예로부터 수입한 섬유류는 1억7230만 달러 규모다. 튀르키예는 인구 8500만명의 광활한 내수기반이 있고 섬유의류 생산의 85%를 EU지역에 수출하는 주요 원단 수요국이다. 자라, H&M, 망고, 아디다스 등 글로벌 브랜드의 OEM 생산국이다. 한국과는 FTA 협정을 맺고 있어 무관세 교역국이란 장점을 지니고 있다. 하기에 따라 대구 산지의 주요 수출국 역할을 계속 확대할 수 있는 유망 시장이다.

정부에서도 형제국 답게 발빠른 대규모 긴급 구조대와 복구비 성금을 이미 전달했다. 세계 여러 국가에서 튀르키예에 구조단과 성금을 보내지만 규모면에서 우리가 가장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모양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어려울 때 돕는 것이 진짜 형제이자 의리란 점에서 튀르키예 수출이 많은 섬유기업들이 많건 적건 성금이나 구호품을 모아 전달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한국섬유수출입협회나 대구 직물조합이 창구가 돼 회원사나 조합원사가 십시일반 성의를 모아 모금운동에 나서 전달하는 방법을 신중히 검토 추진했으면 싶다. 필요하면 섬산련이 총괄해서 구호품을 보내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과거 20여년 전으로 기억되지만 터키에 대재앙이 발생했을 당시 화섬직물수출협의회가 회원사의 모금을 통해 성금을 보낸 일이 있었다. 당시 한국과 거래하고 있던 터키 이스탄불 섬유 수입업체들이 고마움에 감동을 먹고 한국 직물업계를 크게 신뢰한 경험이 기억난다. 당시 상황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화섬직물업계 중진인사는 때마침 자신의 사업장인 이집트에서 튀르키예 참상을 접하고 개별적으로 성의껏 성금을 보낼까하고 필자에게 상의해 왔다. 강요할 처지는 아니지만 긴 안목에서 극심한 절망감에 빠져있을 지진 피해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한국 섬유수출업체들에게 결코 교역상 손해볼 일은 아니라는 판단이 선다.

말을 바꿔 새해 들어 사방 팔방이 해저드와 지뢰밭으로 우려했던 글로벌 경제의 바닥론이 솔솔 돌고 있다. 아직 예단은 빠르지만 지난해말과 1월초의 비관론 일색에서 분위기가 반전되는 양상이다. 무엇보다 세계 경제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미국 경제가 기지개를 켜는 모양새다. 거의 54년만에 완전 고용에 가까운 실업률 해소와 Fed(미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상도 거의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관측이다.

세계 경제를 한파로 몰아넣은 우크라 전쟁도 이미 경제지표에 거의 반영된 상태다. 중국의 리오프닝도 한국 경제에 호재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최근 중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4.4%에서 5.2%로 높였다. 유럽 상황도 최악을 벗어났다는 평가다.

따라서 글로벌 섬유패션경기를 지나치게 비관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코로나 사태로 급냉됐던 미국의 소비심리가 살아나면 바닥으로 추락한 의류패션경기도 냉골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문가지다. 베트남에 진출한 의류, 원단 밀들의 소싱공장 가동률이 설 이후 높아지고 있는 것도 밝은 조짐이다.

세계 섬유소재 업체들의 향배가 걸려있는 지난주 파리텍스월드가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작년보다 바이어가 배이상 증가했다는 것이 한국관 참가업체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텍스월드보다 하루 늦게 개막한 파리PV(프리미에르비죵)도 첫날부터 입장객이 장사진을 치는 등 대성황리에 폐막했다. 세계 섬유패션경기의 향후 전망을 예견케 하는 대목이다. 이번 전시회에 참가한 대구의 한 여성기업인은 “작년 1월과 7월 대비 바이어가 2배 이상 많았다”며 “모로코, 아르헨티나, 벨기에, 스페인, 영국, 파리에서 골고루 바이어가 왔다”고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한국의 가격 경쟁력은 어렵지만 세계 각국의 틈새시장은 얼마든지 열려있다”고 당찬 자신감을 현지에서 본지에 알려왔다.

파리PV·텍스월드 경기 전령사 기대

그렇다. 타 산업도 매 한가지지만 우리 섬유산업의 가격경쟁력이 열세인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고임금 인력난에 에너지 비용까지 폭등해 제조업을 영위하기 어려운 것은 부인못할 사실이다. 기업이 제조업 코스트를 줄이기 위해 백방으로 마른 수건을 되짜고 있지만 기업의 영역이 아닌 전기료 인상은 치명타임을 부인할 수 없다. 실제 중국에서 제조업을 운영하고 있는 모 화섬업체 CEO는 “작년부터 현재까지 중국의 전력료는 13% 오른데 반해 한국은 26%, 딱 2배가 뛰었다”며 한숨을 내쉬고 있다.

중언부언하지만 외국인 근로자에게까지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알량한 우리의 월 평균 임금(1일2교대)은 400만원이다. 중국의 6배, 베트남의 10배다. 그마저 돈보다 더 귀한 것이 사람이다, 베트남, 중남미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의 규모경쟁을 보면 한국내 섬유제조업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고비용 저효율 구조에서 무슨 축지법을 쓰지 않고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중국과 베트남의 규모경쟁으로 할 수 없는 영역은 얼마든지 따로 있다. 바로 틈새시장이다. 차별화·특화 전략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저절로 되는 요술은 아니다. 자동화·로봇화·디지털화의 투자와 연구개발, 마케팅 전략이 병행돼야 한다. 중국·베트남산과 똑같거나 비슷한 제품은 자살행위다. 고임금 국가답게 더 좋은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승부해야 한다. 쉽지는 않지만 고래심줄보다 강한 우리 섬유산업을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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