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명절 설 직전 주마간산격으로 베트남을 일주일간 다녀왔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섬유업체들의 가동 상황을 알아보고 나름의 국내 섬유산업 해법을 구하기 위해서다.

일정상 북부와 중부지방까지 카버는 무리여서 호치민시의 대표 공단인 동나이성 연짝 공단에 소재한 한국 섬유기업들을 주로 방문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4개월에 걸친 셧다운 후유증으로 지난해 오더기근의 모진 홍역을 치른 베트남의 섬유경기 침체에 고통스런 경련을 일으켰지만 대다수 기업들은 새해를 맞아 희망의 끈을 바짝 추스르고 있었다.

실제 30~40%까지 추락했던 한국 섬유기업들의 가동률이 새해 들어 60%대로 올라섰고 설연휴가 끝나는 2월부터 80% 내외까지 올리겠다는 계획이었다. 아직 아랫목에 겨우 온기가 스며들뿐 수출경기가 회복 단계는 아니지만 하반기부터는 미국 오더가 증가할 것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였다.

중국보다 강한 베트남 섬유산업

향후 시장상황을 낙관하기 어렵지만 베트남에 진출한 기업들은 자신감에 차있다. 대다수 한국 기업들은 중국과 맞짱 뜨는 규모경쟁력과 함께 첨단기계로 무장해 생산성과 품질경쟁력에서 어느 나라보다 강한 비교우위를 장담하고 있다.

벌써 일부 봉제기업은 인력난을 호소할 정도로 제조업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속에 인구가 1억명에 가깝고 최저임금이 20만원(원화) 수준에 사회보장기금 15%, 연장근무를 포함해 월 40만원이면 뒤집어쓰는 저렴한 임금이 장점이다. 전기료 또한 수력발전이 많아 한국보다 18% 정도 싸다.

한국계 공장은 한국내 공장보다 규모는 5~10배나 크고 설비도 최신설비다.

고임금 인력난에 외국인근로자 임금이 월 400만원(1일 2교대)에 달하고 전기료도 무지막지하게 오른 한국의 경쟁력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점을 지니고 있다. 한국산 섬유제품이 뚜렷한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닌 대동소이한 상태에서 한국 섬유산업이 이겨낼 재간이 없음을 재확인했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규모나 자동화, 세계적인 점유율은 상상을 초월한다. 단순 몇 개 기업을 예증으로 들어보자. 연짝공단에 위치한 효성 동나이성 법인은 총누적 투자액이 39억달러에 달한다. 9000여명의 임직원이 타이어코드, 스판덱스, 나일론, 모터 폴리프로필렌, ATM 등을 생산하며 지난해 매출이 34억달러에 달한다. 단일공장으로는 타이어코드 세계 1위, 스판덱스 세계 1위, 시트벨트용 산업용 원사 세계 1위의 난공불락 위치를 과시하고 있다. 이 거대한 역사를 이상운 부회장(섬산련 회장)의 두뇌와 기획, 선견지명으로 이루어진 점을 현장에서 느끼며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

연짝공단내 세계 일류 니트원단 밀로 정평이 나있는 정우비나 역시 단일공장으로는 세계 최고의 손꼽는 자동화·표준화 공장이다. 편직기, 염색기, 날염기, 기모기에 이은 부대시설의 자동화 시스템은 물론 웬만한 시험연구원을 방불케한 첨단 시험검사설비, 오더 수주 작지에서 원부자재 투입, 생산과정, 완제품 선적, 전 과정이 일목요원하게 자동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는 가운데 현지 진출 한국계 원단 밀중 가장 높은 가동률을 유지하고 있다. 연짝공단의 편직·염색·날염·기모 자동화 시스템에 이어 동나이성의 대규모 편직공장의 생산성과 품질균일도도 뛰어나 막강한 비교우위를 과시하고 있다. 통크고 치밀한 정우비나 오병철 회장의 배짱과 강단이 확연히 느껴졌다.

연짝공단내 정우비나 인근 소재 면방업체인 DI동일 공장은 한국계는 물론 대만계 면방사들이 재고가 산더미처럼 쌓여 가동률을 50% 이하로 낮추고 고전해온 지난해에도 재고없이 풀가동하고 있어 주목을 끌었다. 대표적인 간판 원단 밀인 J社의 주거래선인 DI동일 연짝 공장은 6만3000추 설비가 불황이 극심했던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끄떡없이 풀가동해 한국과 대만 면방업체들의 부러움을 샀다.

연짝 공단에 위치한 섬유용 계면활성제 글로벌 기업인 동림유화는 품질의 비교우위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지난해 설비를 더욱 확장하고 안정성장을 견지하고 있다. 50년 전통의 글로벌 섬유용 계면활성제 전문 메이커인 동림유화는 독일 풀크라케미컬 한국 공식 에이전트이자 국내업체 최초 공식 국제 친환경 블루사인 인증 획득업체의 명성을 바탕으로 신뢰높은 기업으로 정착해있다. 이 회사는 지난 4년간 모든 원부자재 가격이 급등했는데도 거래선 보호를 위해 제품값을 동결해 거래기업들로부터 확고한 신뢰를 구축하고 있다.

대다수 섬유기업들이 대규모 자동화 투자를 통해 안정성장을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시험연구원으로 도약하고 있는 KOTITI의 과감한 행보도 주목받고 있다. 호치민 시내 중심가에 1000만달러를 투자해 자체 사옥을 완공하고 첨단 시험분석설비와 다양한 파일롯 설비를 구축해 벌써부터 우뚝서고 있다. 첨단 시험기기와 편직·염색 파일롯 설비, R&D 센터를 구축해 현지 진출 한국기업뿐 아니라 베트남 섬유기업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글로벌 시험원으로 도약하고 있다.

한마디로 베트남에 진출한 대다수 한국계 섬유·의류업체들의 규모경쟁과 자동화 투자는 상상 이상으로 과감하고 통크게 이루어졌다. 여기에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의 교역정책과 맞물려 베트남 진출 기업들의 일취월장을 의심하기 어렵다.

코로나 팬데믹 당시 4개월의 셧다운으로 미국 바이어로부터 괘씸죄를 적용받아 혹독한 시련을 겪었던 베트남은 아이러니하게도 교역량이 더 늘어났다. 베트남의 작년 교역량은 7325억달러로 전년보다 9.5% 성장했다. 무역수지도 112억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섬유수출은 440억달러로 전년보다 9%나 증가했다. 1위 수출국인 미국에 180억달러를 수출했고 2위인 한국에 80억달러를 수출했다. 일본과 중국에 각각 70억달러를 수출했다. 올해 섬유수출 목표는 480억달러다. 작년보다 11% 높혀잡은 목표다.

한국의 작년 섬유수출은 123억달러다. 초라하다 못해 부끄러운 실적이다. 단순 경쟁으로 중국은 물론 베트남, 인도네시아에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그만큼 베트남의 경쟁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천배 만배 강하다. 한국 섬유산업은 백약이 무효다.

공멸위기 한국섬유 판을 다시 짜야

그래서 필자가 새해 원단부터 “이대로는 안된다. 판을 다시 짜자”며 최소한 지침이 될 교본을 만들자고 했다. 바로 40년전 섬유 전성기때 선배 기업인·단체장·지도자들이 제시했던 섬유백서를 만들자고 한 것이다.

그렇다고 인류가 있는 한 섬유가 소멸되거나 사양화되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규모 경쟁의 중국과 베트남이 하지 않거나 못하는 틈새시장을 개척하자는 것이다. 틈새시장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주먹구구식 천수답 경영으로는 안된다. 무엇을 어떻게, 어디로 갈것인가의 나침반이 필요하다.

각자도생 원칙 아래 개별기업의 사즉생(死卽生) 노력과 함께 보다 빠른 국방섬유 국산화와 섬유산업 뿌리산업 지정이 급선무다. 이것만으로는 안된다. 패션과 접목한 혁명적인 벤더 및 패션브랜드와 끈끈한 공조 대책과 획기적인 소재개발을 어떻게 성사시키고 앞당길 것인가가 발등의 불이다. 시금털털 기찻길옆 개짖는 소리로 치부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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