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땅거미가 짙은 2022년은 유난히 고통스럽고 다사다난했다. 국민은 이순간 팍팍하고 고달팠던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송구영신(送舊迎新)을 절실히 갈망한다.

돌이켜보면 2022년 임인년은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격동과 파란이 많았다. 정치적으로는 0.7% 초격차로 윤석열 정부가 탄생했다. 시도때도 없는 북한의 미사일이 하늘을 날으고 이태원 참사란 국가적 대재앙속에 국제적 망신을 당했다. 유비무환은 커녕 158명의 어린 생명을 앗아간 그 순간 국가는 없었다.

더욱 어안이 벙벙한 것은 세계 6위 군사대국의 수도 서울을 북한의 드론이 마음껏 휘젓고 지나갔다. 포연이 자욱한 100발의 대공포 발사에도 단 한 대의 드론을 격추하지 못했다. 도끼로 모기잡는 식이었다. 설상가상 출동한 공군 헬기는 총 한번 못 쏘고 여지없이 땅바닥에 쳐박혔다. 가공한 성능의 미사일 현무가 거꾸로 쏘더니 또 한번 망신을 당했다.

거칠게 몰아친 폭풍과 수 없는 벼락을 맞으면서도 건재한 산꼭대기 고목나무가 손톱으로 문지르면 죽는 딱정벌레에 쓰러지는 이치와 비슷하다. 소형 드론이 앞으로 서울 상공에서 무슨 짓을 저지를지 당최 알 수가 없다. 북한 드론에 속수무책인 우리 군의 실력에 국민은 불안하고 겁난다.

섬유산업 신년 더 춥지만 길은 있다

분초를 다투는 변곡점의 꼭대기에서 계묘년 새해를 맞는다. 여전히 경제는 난국이고 정치는 파행이고 사회는 혼란의 거친 숨을 몰아 쉴 수밖에 없다. 먹고사는 문제가 걸려있는 경제는 리먼 사태 이후 가장 혹독한 혹한이 예상된다. 글로벌 경제가 위축되면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은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새해 수출을 6800억 달러로 구상하고 있지만 경제연구소는 6500억 달러도 힘겨울 것으로 보고있다. 득달같이 글로벌 경제 위축이 국내 경제를 강타해 중소기업뿐 아니라 중견· 대기업까지 성장은 커녕 생존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우리가 속한 섬유산업도 상황은 녹록치 않다. 이미 지난 2022년에 역대 최대규모인 70억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한 섬유수출은 더욱 위축될 것으로 보여지고 국내 섬유산업이 추풍낙엽의 고통이 예고 되고 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과 고금리가 몰고온 파고는 예상보다 넓고 컸다. 많은 섬유기업이 축소지향속에 상당부분은 추위타고 얼어죽었다.

한국 섬유패션산업의 대들보인 화섬산업이 속수무책으로 붕괴되고 있다. 규모경쟁의 중국산 저가공세에 백약이 무효였다. 10년 불황에 호황이 찾아온 면방도 2년 미만의 짧은 호황을 뒤로하고 코마사 고리당 300달러씩 얹혀 파는 기막힌 고통을 겪고 있다.

한국 섬유산업에서 이제 남은 스트림은 미들 스트림이다. 대구 화섬직물과 경기북부 니트산업, 이를 떠받치고 있는 염색, 가연, 연사분야다. 미들스트림이 끝나면 한국 섬유산업은 그 길로 조종(弔鐘)이다. 이미 대구 직물과 경기니트직물은 하산(下山)길에 들어선지 오래다.

그렇다면 이 산업을 포기하기전에 어떻게 중흥시킬 것인가가 관건이고 책무다. 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성은 있다. 돌이켜보면 지난 30~40년간 국내 섬유산업은 언제라고 어렵지 않은 때가 없었다. 부분적으로 많은 기업이 조난됐지만 그것은 부분이었지 전체는 아니었다. 노송이 무덤을 지키듯 섬유기업인들의 내공은 고래심줄보다 강했다.

구조적인 고비용 저효율 구조속에 사방이 지뢰밭과 해저드인데도 나름대로 꿋꿋이 버티어 왔다. 원인은 국외자들의 편견인 섬유가 사양산업이 아닌 첨단문화산업이기 때문이다.

반세기 모자 한우물로 세계의 모자왕이 된 조병우 ㈜유풍 회장은 이런 신념으로 세계 초일류 기업을 일으켰다. 연간매출 3500억원에 연산 1000만타의 모자를 해외 8개 법인에서 생산해 세계 2위에서 4위까지 합쳐도 유풍을 따라오지 못한 일류기업을 만들었다.

그의 지론은 “어떠한 첨단 산업도 변화에 대응 못하면 사양산업”이 된다는 철학이다. 반면 “섬유는 첨단 생활문화산업”이고 소득이 높아지면 더 비싼 옷을 원하는 것은 동서를 불문하고 변하지 않는 원칙이라서 “섬유는 절대 사양산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글로벌 초일류 기업인 영원무역그룹과 글로벌 세아, 한세, 한솔등 유명 벤더들은 여전히 일취월장하며 이를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고비용 저효율 구조에서 어렵지만 원창과 신한산업, 해원통상 같은 아웃도어 전문원단업체들도 성장동력을 잃지 않고 있다. 정우섬유, 세양, 삼일니트 같은 글로벌 니트 원단밀들도 일시적인 기복은 있지만 안정성장을 견지하고 있다.

내수패션 기업들도 승승장구하는 곳이 많다.

그러나 이 같은 선도 글로벌 기업과는 달리 대다수 국내 섬유패션기업, 특히 섬유제조업은 경쟁력을 상실해 소리소문없이 소멸되는 현상을 되돌릴 수 없는 것이 현주소다.

고임금 인력난에 주52시간제, 수시로 오른 전기료 인상에 노동정책의 기울어진 운동장 등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아닌 기업할 수 없는 나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 중심에 섬유산업이 간당간당 버티고 있다. 획기적이고 혁명적인 전환과 혁신이 전제되지 않고는 줄초상의 불행을 막을 수 없는 극한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여기서 필자는 꿈과 희망이 담긴 새해 원단을 맞아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섬유패션업계와 단체, 정부에 제안한다. 섬유패션산업의 중장기 전략의 판을 다시 짜기 위해 재도약의 길인 ‘섬유 백서(纖維白書)를 만들자고 호소한다. 우리 섬유산업이 어떤 전략으로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대전제 아래 총론과 각론을 새로 정립해 성장동력을 추진하자는 것이다.

과거 1985년에 이동찬 코오롱그룹 회장이 섬유산업연합회장을 맡고 있을 당시 섬산련이 주도해 당시 서울대 섬유공학과 故 이재곤 교수가 총괄 중책을 맡아 ‘섬유산업 재도약의 길’이란 섬유백서 대작을 만들었다. 섬유패션 단체장과 학계와 업계 중진 등 대표적인 전문가가 대거 참여해 최고의 역작을 만들었다.

당시 김각중 경방 회장이 총괄 위원장을 맡고 이 교수가 총괄 부위원장을 맡아 각 스트림별 전문위원회를 구성해 각 단체장과 기업인, 교수 그리고 상공부 섬유국장이 중진위원회에 참여해 심혈을 기울여 재도약 전략을 완성한 것이다.

잠깐 요약하면 △섬유산업의 특성변화와 △세계 섬유산업의 현황과 전망 △무역 및 수입규제 △기술개발동향 △섬유산업 기술변화 전망 △각국의 섬유산업 진흥지원정책 및 제도 △중국의 섬유산업 △한국의 섬유산업현황과 전망을 통해 세부적인 각론이 광범위하면서도 체계적으로 정리됐다.

38년전 섬유백서 성장동력 지침서

지금부터 38년전에 이 섬유산업 재도약의 길 섬유백서가 만들어졌기에 2000년대까지 한국섬유산업이 성장동력을 유지하는 지침서가 됐다. 나라의 근간과 발전을 위해 헌법이 있는 것처럼 산업도 중장기 전략을 담은 백서가 헌법 역할을 하며 성장을 견인할 수 있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의 상황과는 많은 괴리가 있지만 적어도 10년 20년은 백서에 근거해 한국섬유산업이 고도성장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는 배가 방향을 찾기 위해 나침반이 필요하듯 난파선이 된 한국섬유산업이 재도약하기 위한 백서는 필연적인 논리이고 혁신적인 대안이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가 38년전 업계 중진과 학계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해 백서를 만든 그 정신으로 올해 제대로 된 섬유백서를 만들 것을 제안한다. 처삼촌 묘 벌초하듯 대충 할 것이 아니라 섬유패션산업 백년 대계를 위해 통 큰 결단으로 역작을 만들어 중장기 미래를 열어갈 것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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