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만큼 국민을 하나로 묶는 비책은 없다. 감동과 환호,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교차했던 카타르 월드컵에서 선전한 한국 선수단에 국민은 열광했다.

보기싫은 것은 외면하고 보고싶은 것만 보는 것은 행운이었다. 자고 새면 물고 뜯는 정치권의 타락되고 전복된 행태는 잠시 국민의 안중에 없었다. 동지 섣달 칼바람에 각혈하며 발작하는 화물연대 파업도 관심 밖이었다.

시멘트 공급이 안돼 건설공사가 중단되고 물류가 멈춰서는 고통은 일시적이다. 국민은 국가 경제의 백년대계와 사회혼란의 폐해를 막기 위해 당분간 고통을 견디어낼 각오다. 강성노조의 춘투(春鬪)는 물론 때아닌 동투(冬鬪)를 차제에 발본색원 해야 한다. 고질적인 한국병인 강성노조의 도를 넘는 정치 파업은 이참에 고리를 끊어야 한다.

5100만명 식솔을 책임지는 윤석열 대통령이 “불법 정치파업과는 타협하지 않겠다”는 선언은 모처럼 반가운 소식이다. 방약무도와 자가당착을 일삼는 불법파업을 뿌리뽑아야 지지율이 올라간다. 그 바탕에서 극단적인 대립과 대치로 갈린 국민을 하나로 묶는 정치 연금술을 발휘해야 한다.

난항 예고한 면방 임금교섭 전격 타결

시도때도 없이 설쳐되는 강성노조와 달리 ‘훅’ 불면 날아갈 처지인 섬유사업장의 노동자들은 양반이다. 시멘트에 이어 철강·석유화학 분야에 업무개시 명령이 내려지는 극한 대립구조에서 섬유산업 노동자들은 협상과 타협을 견지하고 있다.

하나의 예증으로 난항을 예고했던 면방업계 임금공동교섭이 7일 전격 타결됐다. 당초 8.7% 임금인상안을 들고 나온 노조측이 5% 인상으로 양보했고 사용자측의 3.8%와 줄다리기를 했으나 대승적으로 4% 인상안에 합의한 것이다.

가파른 물가인상률을 감안해 노조측이 마지노선으로 제시한 내년 임금인상률 5%는 결코 무리한 요구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끝까지 3.8%를 고수한 사용자측과 4%선에 합의한 것은 노조측의 대승적 결단이라고 볼 수 있다.

알다시피 국내 면방은 대부분 베트남 등지로 투자이민을 떠났다. 고임금·인력난의 고비용 저효율 구조에서 국내 존립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10년만에 지난해부터 올 상반기까지 초호황을 만끽했으나 하반기부터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면사 고리당 200달러씩 적자를 감수해야 하고 재고가 산더미처럼 쌓여 국내 공장마다 창고가 부족해 야적을 해야하는 상황이다. 베트남에 진출한 면방공장들도 재고를 쌓아둘 창고가 없어 고통스럽게 경련을 일으키고 있다.

근로자들은 이같은 회사의 참상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 이대로 가면 남은 국내 공장들도 포기사태가 속출할 수밖에 없다는 절체절명의 상황을 꿰뚫고 있다. 회사가 간판을 내리기 전에 협력하며 유지하길 바라는 현실적인 판단이다. 쇠파이프 만지는 철강·조선 등과 달리 인간적인 정념이 넘친 섬유산업의 특성 차이다. 1차 상견례에 이어 2차 양보안을 제시하고 3차 협상에서 통크게 양보한 면방 노사 양측 협상단의 노고를 평가한다.

그런 한편 섬유산업 전반은 부서지고 망가져 극한의 위험지대에서 이미 벼랑 끝에 매달리고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한국 섬유산업의 대들보인 화섬산업이 혼수상태에 빠졌다. 화섬산업의 위기는 미들스트림 직물산업의 급격한 몰락을 향한 적색경보이다.

솔직히 대기업인 화섬기업 모두가 성한 곳이 거의 없다. 중국산 화섬사의 저가공세에 밀려 설 땅이 없다. 화섬메이커별로 전부 아니면 부분적으로 강도 높은 감산을 확대하면서 숨을 죽이고 있다. 이대로 가면 3년은 커녕 1~2년 사이에 6대 화섬메이커중 한두곳밖에 생존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화섬업계의 급격한 몰락현상은 예고된 참사다. 식견높은 전문가들은 20년전에 화섬산업의 공멸을 예고해왔다. 규모경쟁의 중국산에 가격경쟁력을 잃고 표류하면서 시난고난 오래 끌어왔다. 한국의 폴리에스테르 필라멘트 전체 생산캐퍼가 50만톤 남짓이고 현재 생산량은 월 2만7000톤도 안되는 상황이다. 중국산 폴리에스테르 수입이 많을때는 월 2만톤, 요즘같은 불황에도 1만7천톤이 들어오고 있다.

중국의 1개 회사 캐퍼가 800만톤이다. 맘먹고 재고를 풀어버리면 한국 화섬업계는 그대로 졸도다. 인위적으로 중국산을 막을수도 없다. “외할머니떡도 싸고 맛있어야 사먹는다”는 엄연한 시장논리 아래 값싸고 품질차이 없는 중국산을 선호하는 것은 보편적 흐름이다. 설상가상 엄청난 캐퍼의 중국 화섬업계 사정도 지금 녹록치 않다는 소문이다. 수출경기가 녹록치 않고 자국 내수경기도 시원치 않아 재고가 폭증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중국의 크고 작은 화섬업체들도 강도 높은 감산이 유행이다. 일부 화섬메이커는 이미 중합라인 불을 꺼 새해 춘절 이후부터 가동하겠다는 계획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대한(對韓) 저가투매는 불을 보듯 뻔하다. 국내 화섬메이커가 중국산과 경쟁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이같은 화섬산업 구조속에 억장이 무너지고 분통이 터지는 것은 국내 재고가 4만톤에 달하는데 대구산지에서는 실이 없어 제직작업에 비상이 걸렸다는 하소연이다. 화섬메이커는 실이 안팔려 재고를 4만톤이나 잠겨놓고 감산하는 판에 실수요업계가 구득난을 호소하는 것은 업체간 단체간 소통의 문제가 어느정도 심각한지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기본품목인 치폰용 75-72, 75-36 필라멘트가 공급능력이 충분한데도 산지에서는 없다고 아우성이다. 물론 잠재권축사 등 일부 품귀사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대구산지 직물업계는 구득난을 이유로 직물조합이 중국산 수입사를 공동구매해 공급해 줄것을 요구하고 있다. 조합도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 실이 품귀상태이면 공동구매를 하건 말건 탓할수 없다. 하지만 4만톤 재고를 갖고 있음에도 원사 품귀 하소연이 나오고 심지어 조합이 공동구매설까지 나온 것은 원사메이커의 영업전략뿐 아니라 단체의 무능과 무책임의 소산이다.

직물 수입사 의존 中 포로 불보듯

상황이 이 지경에 오기전에 적어도 화섬협회는 회원사의 재고 상황을 면밀히 파악해 사종별·규격별 내용을 대구직물조합에 전달했어야 했다. 이를 받아든 직물조합 역시 사종과 규격별 국내 재고상황을 조합원에게 공지해 남아도는 재고원사의 품귀소동을 방지했어야 했다.

대구직물업계 역시 중국 화섬업계가 한국 화섬산업 고사전략으로 투매하는 가격에 놀아나 업체당 500톤, 1000톤씩 수입해 국내 산업의 설 땅을 없애는 행태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겠지’만 장기적으로 국내 직물산업이 중국 화섬산업의 포로가 되는 날이 앞당겨짐을 직시해야 한다. 코째기 내기를 해도 한국 화섬산업이 공멸하면 가격과 납기가 지금과는 확연히 달라짐을 명심해야 한다. 이 바탕에서 관련 단체끼리, 업계끼리 소통과 협력이 필수임을 당부한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 시린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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