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는 구호는 섬뜩했다. 화물연대 파업은 국가 경제 동맥을 끊는 잔인한 발작이었다. 급기야 법과 원칙을 강조한 대통령의 업무개시 명령이 떨어지면서 파업 양상이 새 국면을 맞고 있다. 경제를 마비시키고 자동차 휘발유를 못넣어 시쳇말로 ‘엥꼬’ 직전인 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가뜩이나 경제와 안보의 복합 위기상황에서 국민의 일상까지 고통을 주는 화물연대 파업은 그들만의 주장에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툭하면 극단적인 방법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려는 고약한 병폐를 차제에 뿌리뽑아야 한다.

반면 극한상황을 몰고 오기까지 정부는 그동안 뭐했는지 답답하다 못해 분통이 터진다. 불과 5개월전 2조원의 피해를 입고 온나라 경제가 마비되는 홍역을 치르고도 무대책이었다. 이태원 참사때도 정부가 안보이더니 이번에도 초반 사태 예방을 위한 정부는 안보였다. 과격하고 무자비한 화물연대 파업을 반대하면서도 무사안일 백면서생들의 행태에 국민이 성토하는 이유다.

면방 붕괴 붕대· 거즈 파동까지

화제를 바꿔 지난 26일 남산 둘레길에서 열린 ‘섬산련 주최 섬유패션인 한마음 걷기대회’는 예상을 뒤엎고 900여명이 참석하는 대성황을 이뤘다. 고비용 저효율 구조속에 코로나로 맷돌에 깔려 부서지고 망가진 섬유제조업의 피말리는 고통과는 상관없는 모습이었다.

섬유패션 장학금 모금을 위한 취지에 공감해 모금 규모가 5억1000만원에 달했다. 섬유패션인의 화합과 단결, 통합감을 불러일으킨 값진 쾌거였다.

반면 돌아가는 통박으로 보아 악화일로의 섬유산업 상황을 감안할 때 이같은 순수함의 발로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에 대한 깊은 우려 또한 부인못할 사실이었다. 아직은 ‘파이팅’하며 많은 참가자들의 함성이 울려 퍼지지만 급속히 붕괴되고 있는 섬유산업의 현주소를 감안하면 결코 오래갈 것 같지 않다. 참담한 섬유산업 현장의 절규를 ‘기찻길 옆 개짖는 소리’로 듣는 섬유산업연합회 사무국은 요순시절이 계속될 것으로 볼지 모르겠으나 지혜있는 사람들의 판단은 다르다. 현재의 섬유산업 상황이 획기적으로 뒤바뀌지 않는 한 서울 강남의 금싸라기 건물 섬유센터가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있는 웅장한 잠사회관으로 전락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잠업이 사라졌는데도 잠사회관은 존재하듯 섬유산업이 결딴났는데도 섬유센터가 존재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갈수록 화마가 난무하는 극한의 위험지대로 치닫는 섬유산업을 보는 정부의 경도된 산업정책부터 잘못됐다. 4차산업 시대에 섬유는 안중에도 없지만 섬유산업의 진면목을 이해못하는 행태가 한심하다.

하나의 예증으로 국내 섬유산업이 투자망명 러시를 이루면서 면방업체들도 엑소더스를 피할 수 없었다. 전방과 태광산업만이 국내 가동을 고집했을뿐 대다수 면방이 해외로 나갔다.

불황이 심화되자 최근 전방과 국일방이 버티어오던 국내 공장 한곳씩을 세웠다. 부작용은 엉뚱한 곳에서 나타났다. 코마사 생산에서 웨스트가 발생하면 그 노일로 병원용 붕대와 거즈를 생산해 의약품으로 사용한다.

최근 난데없이 국내에 메디컬용 붕대와 거즈 파동이 불거졌다. 면방에서 나오는 노일이 없어 붕대, 거즈를 생산할 원료가 없는 것이다. 만약 전쟁이 발발한 유사시 중국에서 붕대, 거즈를 수입해서 사용할 수밖에 없다. 가당치 않은 일이다. 일본이 아무리 어려워도 붕대·거즈용 면방공장만은 고집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섬유가 단순히 의류용으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방산용품임을 알아야 한다. 군 피복류와 전투복이 중요한 군사전략 물품인데도 3년전 겨우 전투복에 한해 국산화가 이루어졌을뿐 아직까지 추가 확대가 안되고 있다. 6800억원의 연간 국방섬유 예산중 580억 규모 전투복만 겨우 국산화가 됐고 나머지는 내년 예산에 국산화가 반영된 것이 없다. 섬유가 중요한 방산품인데도 국방부나 관련 부서는 현상유지에 안주하려는 기존의 사고양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정된 회로를 바꾸려는 생각이 없는 것이다. 보직이 자주 바뀐 실무선 접촉보다 장관을 상대로 담판을 내는 노력과 전략이 부족하다.

다른 얘기이지만 최근 들리는 정보에 따르면 우크라와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가 군복을 대량으로 북한에 발주했다는 소문이 나돈다. 북한에는 예전에도 평양 인근에 피복공장들이 있긴 하지만 짐작컨대 우리 기업 재산인 개성공단에서 몰래 생산할 개연성이 농후하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부족한 외화를 조달하기 위해 밀수나 마약거래까지 서슴치 않은 북한 당국자들이 개성공단 설비를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국제적인 무법자 북측이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남측기업 재산인 개성공단 설비를 이용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유추 해석할 수 있다.

안타까운 얘기지만 2016년 2월 10일 당시 박근혜 정부에 의해 폐쇄된 개성공단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가 지금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개성공단에 연간 인건비로 1억달러를 주면서 우리기업은 5억달러, 10억달러 이익을 보는 곳이다. 어줍잖게 국외자들이 개성공단이 북측에 퍼주는 것으로 왜곡하고 심지어 미사일 핵개발 재원으로 사용한다고 뒤집어 씌웠다. 요즘 사흘이 멀다하고 하늘에 쏘아올린 북한의 미사일 비용이 조(兆) 단위에 달할것으로 보여져 근거없는 모략이었다. 개성공단 5만6000명 북측 근로자의 의식이 60~70%가 남측 사고로 바뀐 변화는 더욱 값진 성과였다.

지금와서 죽은 자식 뭐 만지는 격이지만 개성공단이 존재했다면 대구와 부산, 경기 섬유·신발산업이 이토록 처참하게 붕괴되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원부자재를 남측에서 보내고 1인당 월 100달러 미만의 양질의 노동력을 활용하면서 엔조이할 수 있는 곳이었다.

북, 개성공단 몰래 가동설 국제 도적질

마지막 개성공단 부활에 기대를 걸었던 것은 2019년 북미 정상회담때였다. 당시 알려진 것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간의 이른바 ‘스몰딜’에 개성공단 가동과 금강산 관광 재개,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폐기의 빅딜설이었다. 당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에게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가 하노이에서 안보리 제재 5건 해제를 주장하는 과정에서 개성공단 문제가 거론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영변의 노후한 핵시설외에 추가 핵시설이 적발되면서 협상은 교착상태에 빠졌고 트럼프가 하노이를 떠나 무산되고 말았다. 미국과 북한의 이 아젠다가 수포로 돌아가면서 개성공단 재개는 물거품이 됐고 지금 이순간 북한이 자기네 소유처럼 활용하는 국제 도적질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개성공단 폐쇄는 이팝에 고기국을 잃은 북한 인민들에게만 손실이 아니라 황금의 생산기지를 잃은 남측산업에 직격탄을 안겼다. 통치자의 순간의 판단 실수가 섬유를 비롯한 경공업의 기사회생이 물거품이 됐고 그로 인한 파고는 높고도 장기화되고 있다. 게도 구럭도 다 놓친격이다. 총체적인 국내 섬유산업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할지 암담하고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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