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는 것이 아니고 마차를 이어 붙인다고 기차가 되는건 아니다. 행정안전부가 시·도에 보낸 행정지침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 ‘피해자’ 대신 ‘사고’ ‘사망자’ ‘부상자’로 표시한 것은 코미디성 말장난이다.

국민 애도기간이 끝나기 무섭게 득달같이 참사의 정치화가 본격화 되고 있다. 민심 또한 벌집 쑤셔 놓은 격이다. 무슨 요설로도 피할수 없는 고위 인사들이 처음부터 석고대죄하며 무한책임을 인정했으면 상황이 이렇게 악화되지는 않았다. 행정안전부, 경찰청, 용산구청이 무슨 궤변을 늘어놔도 성난 민심을 잠재울 수 없는 상황이다.

물은 배를 띄우지만 뒤엎을수도 있다. 윤석열 정부가 진솔하고 정중한 자세로 집단 참사의 국난을 빨리 수습해야 한다. 자칫하면 세월호때처럼 민란이 우려된다.

가뜩이나 지금은 먹고사는 문제인 우리경제가 화마가 난무하는 극한 상황에 몰려있다. 설상가상 춥고 배고픈 북한 집단이 이판사판 마구 미사일을 쏘아대며 발악을 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는 수십년만의 대공황이 불어 닥치고 벼랑 끝에 몰린 우리 경제에 강원지사의 레고랜드 헛발질로 금융시장에 불이 났다. 그야말로 경제·안보 복합위기 상황이다. 살기가 팍팍하고 불안하면 민심은 지지자들도 등을 돌린다. 진영간에 피터지는 싸움판이 재현되서는 안된다.

섬유패션인의 대명절 ‘섬유의 날’

본질문제로 돌아가 이태원 참사로 아직도 가슴이 시리고 먹먹한 시점에 제36회 섬유의 날을 무거운 마음으로 맞았다. 섬유패션인의 축제의 장인 섬유의 날 기념식이 11일 오후 섬유센터 3층에서 500여명의 인사가 운집한 가운데 열렸다.

올해도 섬유패션산업 발전에 기여한 유공자들에게 금·은탑 산업훈장과 산업포장, 대통령 표창, 국무총리 표창 등 정부 훈·포장이 수여됐다. 여기에 산업부 장관 표창, 섬산련 회장 표창 등 많은 유공자들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어렵고 힘든 시기이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이날만은 섬유패션인들이 하나가 되어 통합감을 불러 일으키는 아주 특별한 날이다. 자칫 불구덩이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벼랑끝 상황이지만 수상자를 축하하고 덕담을 아끼지 않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예전과 다름 없었다. 섬유인의 날 수상자 모두에게 아낌없는 격려와 축하 인사를 보낸다.

그럼에도 환희와 축제의 장이 돼야할 섬유의 날에 실망을 넘어 절망을 안겨주는 섬유패션산업의 녹록치 못한 상황을 외면할 수 없는 것이 솔직한 현주소다. 오동잎 떨어지면 가을인지 알아야 하고 기러기떼 날으면 겨울이 왔음을 알아야 한다. 가파르게 축소지향으로 가는 섬유패션산업의 글로벌 환경이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시장은 숫자로 말한다. 우선 섬유수출이 2010년대 중반부터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무역수지 흑자 효자품목이던 섬유수출이 매년 줄어들면서 지난해는 128억700만 달러에 머물러 수입 182억9900만 달러에 비해 54억9200만 달러의 적자를 봤다. 올들어서도 10월말 기준 섬유수출은 103억1500만 달러에 머문 반면 수입은 169억1700만 달러에 달해 벌써 무역수지 적자 66억2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연말까지 섬유무역 적자가 80억 달러를 상회할 것으로 보여져 사상 최대규모가 될것으로 보여진다.

무역수지 적자 주범은 의류를 중심으로 한 섬유제품 수입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봉제산업이 공동화된데다 개성공단마저 장기 폐쇄돼 내수용 의류를 대부분 동남아 등지에서 수입하기 때문이다. 고비용 저효율 구조의 국내 산업환경을 피해 6000개 가까운 섬유기업의 엑소더스속에 그중 의류봉제부문이 절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현지화 추세는 필연적인 현상이어서 봉제가 떠난후 원단·원사까지 덩달아 기업 이민이 러시를 이룬 결과다.

섬유산업의 해외 탈출을 인위적으로 막을 수 없는 상황이어서 특정 업종의 수입을 자제하라고 요구할수도 강요할수도 없다. 대신 국내 다운스트림 분야를 집중 육성하는 유인책이 시급한데도 속수무책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36돌을 맞은 섬유의 날을 보내면서 내년부터 포상 기준도 현실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 섬유산업의 규모경쟁은 흘러간 옛 얘기다. 해마다 아니 매월마다 급속히 축소지향으로 직행하는 현상을 감안할 때 섬유의 날 포상기준도 외형 위주 선정기준을 탈피해야 한다.

반도체나 자동차, 통신 분야는 상상을 초월한 수준으로 외형이 증가하고 있지만 하산(下山)길에 들어선지 오래인 섬유산업은 외형경쟁은 현실적으로나 시대적 흐름과 거리가 멀어졌다. 바로 포상 선정기준을 과감히 뜯어 고쳐야 한다. 아직도 심사 기준의 1순위는 ‘외형이 얼마냐’가 우선순위가 되고 있다. 업력이 얼마이고 섬유패션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 차별화, 특화, 국산소재 사용 비중, 기업의 사회적 책임 등을 중시해야지 외형을 우선순위에 두면 악전고투하고 있는 섬유패션기업은 수상 기회가 박탈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올해 지난 7월 섬산련에서 열린 36회 섬유의 날 정부 포상자 심사위원회가 끝난후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대구의 섬유업계 중진인사 한명이 저녁식사를 거절하고 돌아갔다. 이 심사위원은 지금과 같은 외형규모를 가장 중시하는 심사기준으로는 “대구 산지에서 모질게 고생하는 섬유기업인에게는 기회가 없다”는 탄식을 남기고 떠난 것이다. 고임금, 인력난을 비롯 온갖 악조건속에 아등바등 생존에 급급한 섬유제조업이 벤더나 패션브랜드에 비해 “외형경쟁이 가당키나 하느냐”는 지적이다. 87년 11월 11일 단일업종 최초 100억달러 달성을 계기로 섬유의 날이 제정된 당시는 호랑이 담배먹던 시절이다. 외형보다 기업의 역사, 차별성, 특화전략, 기여도를 중시해 심사기준을 개편해야 한다.

외형보다 특화전략 기여도 산업 중시해야

물론 정부 훈·포장을 담당하는 행정안전부 공무원들은 외형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한 것은 부인못할 사실이다. 산업의 특성과 기여도, 역사보다 눈앞의 외형을 중시하는 경도된 사고를 모르는바 아니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전문성을 가진 섬산련 사무국 관계자들이 산업의 특성과 역사, 기여도, 파급효과의 중요성을 내세워 행안부를 설득시켜야 한다. 그래서 섬산련의 역할이 필요한 것이다.

솔직히 이 땅의 빈곤퇴치 주역인 섬유산업이 소멸로 가는 징검다리를 건넌지 오래다. 하루가 다르게 망망대해 편주처럼 표류와 방황을 거듭하고 있는 섬유산업이 질적 전환을 모색하고 있는 상황에서 포상기준에 외형을 우선시하는 것은 난센스다. 피말리는 고통을 감수하며 열심히 노력하는 중소 섬유제조업체들에게 정부 훈·포상의 기회가 돌아가도록 배려해야 한다.

섬유산업중 외형이 큰 대기업인 면방·화섬산업마저 존립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극한위기에 몰려 있다. 제·편직, 염색가공, 사가공, 준비공정 모두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린지 오래다. 섬산련부터 섬유산업 현장의 절박함을 제대로 알고 그에 상응한 육성정책과 포상기준을 개편해야 한다. 섬유의 날 포상을 둘러싸고 산업을 모르는 행안부가 시비하면 오늘의 경제대국 초석을 어느 산업이 세웠는지 따끔하게 가르쳐야 한다. 업계와 단체도 섬산련의 노력에 힘을 보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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