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망가졌다. 21대 국회는 역대 최악이다. 협치는 실종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6개월이 다되도록 질그릇 깨지는 파열음이 그칠 기미가 안보인다.

어느 편이 더 잘못했다고 평할수도 없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의 시정연설이 보이콧 당했다. 보이콧한 야당도 원인 제공한 정부·여당 모두 도긴개긴 일본말로 ‘가부시키’ 망신이다.

마주보고 달리는 기차처럼 위험천만한 정치권의 행태는 무섭고 또 우습다. 비타협과 불신, 배척의 투쟁이 배를 산으로 몰아가고 있다.

지금 우리에겐 경제·안보위기란 양날의 칼날위에 서있다. 글로벌 경제는 수십년만에, 아니 2차대전 이후 처음 겪는 대공황의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은 시도때도, 장소불문하고 하늘을 날고 있다. 7차 핵실험 준비까지 완료했다는 보도다. 가상이 아닌 세기적, 실질적 위기다.

폭풍이 예고된 극한 위기 상황에도 정치권만 오불관언 공격하고 헐뜯고 조소하며 날밤을 세운다. 나라를 자칫 불구덩이 속으로 쑤셔넣는 그들만의 권력싸움에 국민은 넌덜머리 난다.

섬유 전 스트림 성한곳이 없다

본질문제로 돌아가 만추의 계절에 추풍낙엽을 연상하듯 우리 섬유산업의 처지가 비통하다. 보면 볼수록 가면 갈수록 사방이 지뢰밭과 해저드다. 섬유 스트림 어느곳 하나 성한곳이 없다. 찢기고 망가지고 부서지며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제조업이 국가경제의 일등공신인 나라에서 제조업이 뿌리채 망가지고 있다. 어느 중소기업보다 뿌리가 깊고 탄탄하던 섬유산업이 처절하게 붕괴되고 있다.

중언부언할 필요없이 섬유 대기업인 면방·화섬이 이미 바람보다 먼저 누운 풀잎 처지다. 제직·편직도 망가지는 속도에 가속이 붙어 얼마나 소멸됐는지 집계조차 안된다. 올들어 화섬사 판매량이 코로나19 시대인 지난해보다 30%나 감소한걸 보면 설비가 얼마나 축소됐는지 짐작이 갈 정도다. 별로 나아지지 않은 수출경기에도 감량가공 염색캐퍼가 달리는걸 보면 이 부문 업체도 많이 줄었다는 분석이다. 직·편직을 받쳐주던 연사 등 준비공정부터 겉잡을 수 없이 무너지고 있다.

상황의 심각성을 웅변으로 말해주는 것은 최근 경기북부 양·포·동 소재 잘 나가던 날염업체의 줄파산이다. 기껏해야 이 지역 13개 남짓이던 날염전문업체가 지난 8월말부터 한두달 사이에 6개 업체가 떡쌀 담그고 말았다. 불과 한달여만에 기라성같은 이 지역 날염업체 절반이 자진폐업, 법정관리, 화의신청이란 막다른 길을 가고 있다. 이들 줄파산 업체뿐 아니다. 남은 기업들도 누가 흰 까마귀이고 검은 까마귀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아쉽고 답답하다 못해 분통이 터지는 것은 섬유산업이 70년 기반과 노하우를 그대로 포기하려는 자포자기 현상이다. 비록 망가지는 도정이지만 폭넓게 안정된 스트림별 생산기반과 노하우, 순발력, 여기에 코카콜라 시장보다 더 광범위한 글로벌 시장 기반을 포기하려는 체념현상이다.

물론 얼마나 힘들고 어려우면 땀과 눈물로 일궈온 기업을 포기하겠는가 마는 이것이 결코 최선의 당위성은 아니다. 무자비하고 몰인정한 해외 바이어뿐 아니라 국산소재를 외면해 애국심마저 의심스러운 국내 패션기업들의 야박한 상혼을 탓할수도 없는 것을 모르는바 아니다.

한주먹 가득쥔 모래가 물속에서 사라지듯 걷잡을 수 없이 소멸되는 섬유산업의 기사회생 노력에 과연 얼마나 전력투구했는지 각 주체가 깊이 반성해야 한다. 각자도생에 실패한 기업 자체는 물론 단체, 연구소 나아가 주무당국이 무슨 대응처방과 적극적이고 다원적인 노력을 했는지 성찰해야 한다. 이같은 대전제에서 우리가 판을 다시 짜야한다.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물론 시장은 경쟁력이다. 글로벌 시장의 치열한 경쟁을 뚫기 위해 기업 당사자는 물론 단체·연구소·정부가 협심노력을 기울여 차별화·특화 전략으로 승부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와 별도로 규모가 작지 않은 내수시장을 국내 섬유기업들이 얼마나 장악하고 있는지, 못한다면 원인이 어디 있는지 파고 캐며 집중했어야 했다. 내수패션 업계에 품질에 비해 비싸다는 고정관념을 심어준 것도 우리 섬유기업이다. 과장도 있고 왜곡도 있을수 있다. 패션기업들이 애국심이 없다고 욕할것이 아니라 그들이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가격과 품질 서비스를 제대로 했어야 했다.

디자이너나 MD 손에 맡겨서는 해결기미가 없다. 패션브랜드 오너를 섬유업계·단체가 직접 대면해 협조를 구해야 한다. 가격과 품질 경쟁력을 바탕으로 설득해야 한다. 국내 산업이 동반성장해야 한다는 대전제에서 애국심을 자극해야 한다. 그래도 거절하면 여론몰이로 응징해야 한다.

인구 5천만명이 넘으면 작은 내수시장이 아니다. 집념으로 뚫고 끌로 파면 무궁무진한 잠재시장을 개발할 수 있다. 이뿐 아니다. 자주 이슈가 되고 있는 국방섬유 국산화 촉진에도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경주돼야 한다. <본지 10월 17일자 1면 TOP ‘국방섬유 국산화 시계 멈췄다’ 제하 참조> 본지에 보도된 것처럼 6800억 국방섬유 예산중 520억 규모의 전투복에 한해 국산화가 이뤄졌을뿐 군피복류 등 나머지 6300억원 규모는 아직도 국산화가 요원하다. 미국이 국방섬유에 관한한 솜한톨·실한가닥도 ‘메이드 인 USA’가 아니면 허용하지 않는 것처럼 한국도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으로 충당하는 것이 원칙이다. 군 전략 물자인 군피복류 등 국방섬유 원단을 중국이나 동남아에 의존한다는 것은 안보상으로도 위험천만하다.

국회 국방위원도 금시초문 반응

3년전 전투복을 시발로 국방섬유 국산화 진행이 멈춘 것은 국방부 당국자의 인사이동으로 인한 당위성 의식이 사라진 것이 큰 원인이다. 원래 공무원의 타성상 하던대로 하는 것이 익숙해져 있다. 개혁과 혁신은 절대 하기싫은 타성이 베어있다.

우리 업계가 국방부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은 하고 있지만 씨알이 먹히지 않는 것이다. 길속을 제대로 못찾고 있다. 지난주 대구의 한 행사장에서 국회 국방위 소속 임모 의원(국민의힘)과 같이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때마침 필자가 국방섬유 국산화의 시급성과 당위성을 설파하자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저에게 자료를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만큼 국회 국방위원들마저 이 문제를 금시초문으로 받아 들였다.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

적어도 국회 국방위원들이 적극 나서 국방부를 채근해야 이 문제가 쉽게 풀릴수 있다. 섬유업계가 아쉬울때만 사정할게 아니라 평소 후원회에도 가입하고 친분을 쌓는 성의와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 지금이라도 국방위 소속 위원들에게 후원회에 가입하는 성의를 보여야 한다. 6800억 국방섬유 국산화만 성취돼도 섬유산업 판도가 바뀔수 있다. 경찰복·소방복·공기업 단체복 등 광활한 후속시장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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