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사법화는 코미디다. 집권여당이 전가의 보도인양 얼씬하면 비대위를 만들고 법원에 의해 비대위장이 제동이 걸리자 또 비대위를 만드는 코미디의 연속이다.

“당이 비상상황이 아니니 비대위 체제 전환은 불가하다”는 법원 판결을 당헌·당규를 바꾼다고 뒤집힐지 납득이 안간다. 국민의힘이 판결 취지를 무시하고 비대위를 재추진하는 꼼수를 쓰면 또 다시 효력정지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대통령과 함께 국정을 책임져야할 집권여당이 출범 넉달 가까이 권력싸움으로 연일 질그릇 깨지는 소리다. 이른바 윤핵관과 이준석 대표간 권력싸움의 내전으로 만신창이가 됐는데도 아직도 내홍의 연속이다.

국민의힘이 왜 길을 두고 뫼(山)로 가는지 당최 알수가 없다. 윤핵관의 핵심인 권선동이 퇴진하고 새 원내대표를 뽑아 지휘봉을 맡기면 간단히 수습될 수 있다. 인위적으로 이준석을 내쫓을 수 없는 외통수에 몰린 상황에서 비대위 무리수를 고집하는 것은 국민의 경고를 못 알아듣는 난청이고 난독이다. 그래야 이준석이 명예롭게 퇴진할 수 있는 명분을 줄 수 있다.

거듭되는 혼선과 내분으로 이재명의 절대다수 제1야당과 정책으로 승부할 수 있겠는가. 집권여당의 위기는 국정동력의 퇴보임을 직시해야 한다.

재벌축성 지름길 화섬마저 弔鐘 임박

본질문제로 돌아가 즐거워야할 추석 대명절 문턱에서 왠지 가슴이 휑하는 열패감을 떨칠 수 없다. 웬만하면 밝고 희망적인 글을 쓰고 싶지만 돌아가는 통박이 사방팔방으로 지뢰밭이 널려 있다.

물론 업종에 따라 기업에 따라 소가 밟아도 끄떡없이 내공이 강한 경우도 있지만 이는 가뭄에 콩나기 정도다. 대다수 섬유기업들은 투자를 늘리고 기술개발과 마케팅을 강화하기보다 “언제 접는 것이 현명한가”라는 자포자기 고민에 빠졌다. 그나마 “빚잔치 하고 얼마라도 남길수 있는 지금 정리하는 것이 현명한가” 아니면 “속는 셈치고 경영환경이 나아질 때를 고대하며 2~3년 더 버티어볼까”하는 갈등속에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제조업은 기업인의 자존심이다. 웬만하면 이익을 못내도 현상유지만 되면 “천직으로 알고 전력투구 하겠다”는 집념과 각오로 수십년을 일관해온 것이 섬유기업인들이다.

하지만 고비용 저효율 구조의 국내에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해 6000개 가까운 기업이 해외로 엑소더스를 감행했다. 지금도 수백억, 수천억을 동남아·중남미 등지에 투자하는 의욕적인 기업인이 수두룩하다.

문제는 국내산업이 현 상황에서는 백약이 무효일 정도로 극한의 위험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는 점이다. 고임금 인력난에 주52시간제, 치솟는 에너지비용 등 중소기업을 운영할 수 없는 악조건이 켜켜히 쌓여 있다.

지난 5년간 최저임금을 41%나 올려놔 10%에 머문 일본을 4배나 추월하면서 처음으로 최저임금이 일본을 앞섰다. 외국인근로자에게도 최저임금을 적용해 1일 2교대 근무에 월 400만원 이상 임금을 지불하고 어떻게 경쟁할 수 있겠는가.

중언부언하지만 중국·베트남보다 5~10배의 임금을 주고 섬유제조업을 영위하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무엇보다 월 400만원을 줘도 내국인은 구경할 수 없고 외국인근로자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생산인력뿐 아니다. 서울은 물론 대구 산지에서 사무직 직원을 채용하는 것도 옛날과 천양지차다. 섬유업종에는 관리·영업직 불문하고 철저히 기피하고 있어 기업마다 사무직 신규인력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그나마 해외 출장기회가 많은 무역부에는 인기가 있었으나 최근 몇년사이 이마저 고갈됐다.

전체 섬유제조업의 98%가 중소·영세기업이란 점에서 이들의 시련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호시절에 재테크를 겸해 부를 쌓은 섬유제조업 대표는 상당부분 현업을 떠났다. 대구 산지에서도 공장을 세놓고 임대수익으로 잘먹고 잘살고 있다. 부동산값이 뛰어 웬만하면 수백억 재산가가 돼 한주에 서너번 골프장에서 생활한다.

더욱 걱정스럽고 한심한 것은 중소제조업의 추풍낙엽뿐 아니라 섬유 대기업의 앞날이 가물가물하다. 업스트림인 화섬메이커와 면방업체들의 위기가 한계상황을 맞고 있다.

실제 폴리에스테르사를 생산하는 업스트림 화섬메이커의 경영위기가 막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재벌축성의 지름길이었던 화섬메이커가 눈덩이 적자로 곤죽이 되고 있다. 생산하면 할수록 적자다. 반세기 이상 배급주며 재벌 축성했던 황금알의 화섬메이커가 매월 수십억씩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규모경쟁의 중국산 수입사에 밀려 비상구가 안보인다. 6대 화섬메이커중 스판덱스나 칩으로 수익을 내서 보완하지만 순수 폴리에스테르사만으로는 가망이 없다. 규모경쟁이 가격경쟁력이지만 재고가 무서워 강도 높은 감산을 강화하면서 제조코스트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중국산에 가격경쟁력을 잃어 벼랑 끝에 몰리고 있는 것이다.

3년전 62년 역사의 코오롱FM이 폴리에스테르와 나일론사 생산을 철수할 때 “가업이자 모태사업을 저버린다”고 비난을 받았다. 지금은 “미래를 예측한 현명한 판단이었다”고 평가가 달라졌다.

제2· 제3 코오롱FM 사태 받아놓은 밥상

불황 앞에 장사 없다. 재벌급 화섬메이커도 아무리 가업이자 모태산업이라 해도 적자가 심하면 버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대로 가면 3년내 한국의 화섬메이커는 한두곳만 남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면방산업도 상황이 녹록치 않다. 과거에는 아무리 불황이 심해도 5년 10년 주기로 호황폭탄을 맞아 만회했지만 상황전개가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다. 우선 현재 코마30수 제조원가가 고리당 원면값 700달러에 방적비를 포함하면 940달러에 달한다. 지난 상반기 초반까지 고리당 1050달러를 홋가하던 코마30수 가격이 700달러까지 위협받고 있다.

고리당 250달러까지 얹혀서 판다면 월 수만고리를 생산하는 면방사의 적자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업체뿐 아니라 대만업체들도 면사 재고를 쌓아둘 창고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거대시장인 미국의 의류오더가 한 시즌 건너뛴 여파가 이렇게 크다. 미국의 공룡 유통바이어들의 갑질이 더욱 기승을 부린다. 내년 의류오더를 발주하면서 면사값을 2년전 수준인 고리당 500~600달러를 기준으로 값을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가랑비에 옷 젖는 것이 아니라 폭우와 폭풍이 화섬과 면방산업에 몰아치고 있다. 공동화된지 오래인 봉제산업은 물론 남아있는 화섬직물·니트직물·염색산업이 골병이 든 상태에서 대기업 화섬·면방산업까지 뿌리채 흔들리고 있다. 추위타는 기업· 얼어죽는 기업이 널부러질것 같다.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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