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뚱맞은 얘기 같지만 무심 이상의 의미가 담겨 소개한다. 지난 6월 17일 러시아 제2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러시아판 다보스 포럼인 국제경제포럼(SPIEF)이 열렸다. 해마다 이 포럼에는 러시아 정부 관료·주지사·기업인 등 주요 인사 5000여명이 참석했다. 푸틴 대통령도 매년 참석해 러시아 주요 인사들이 눈도장을 찍기 위해 경쟁적으로 착석한다고 한다. 이번 국제포럼에 눈길을 끈 것은 러시아 푸틴에게 적대정책을 펴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 의중과 달리 미국에서도 유수기업인 60여명이 참석했다. 벌써부터 미국 기업인들은 인기없는 바이든 대신 차기 대선에서 트럼프의 등장이 유력함을 대비한 것으로 해석됐다. 우크라 침공으로 국제적 이단자가 된 푸틴이 싫어 서방에서도 대거 불참했고 한국은 러시아 교역이 두터운 민간 외교가 H사 K회장이 유일하게 참석했다.

산업부 장· 차관 섬유는 안중에도 없는가

K회장이 귀국해 필자에게 전한바에 따르면 전쟁을 치르는 러시아는 중국과 인도에 원유를 싸게 팔아 1250억달러의 외환보유고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우크라 전쟁 직전 달러당 85루블이던 환율이 55루블로 강세를 보이면서 물가도 내리고 국민들이 배부르고 등따듯해 푸틴의 지지가 거꾸로 올라가고 있다고 했다. 우크라를 침공해 수많은 인명과 재산을 파괴한 21세기 히틀러 푸틴이 오히려 자국민으로부터 추앙받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특기할 것은 인도의 전략이다. 인도는 서방국가와 가까운 우방이지만 경제외교전략은 철저한 국익우선주의다. 미국의 만류에도 러시아산 원유를 루피화로 35%나 싸게 대량구매해 횡재를 한 것이다. 우리는 차돌같은 한미동맹으로 한계가 있지만 인도는 달랐다.

미 국무장관이 “인도는 누구편이냐”고 항의하자 인도 외무장관은 “인도는 미국도 러시아편도 아닌 인도편”이다는 명언을 남겼다. 우리 정부도 한미동맹을 지키면서 경제문제에 관한한 국익우선주의가 절실하다. 상반기 무역적자가 100억달러를 초과한 국가 대위국(大危局)에서 값싼 원유수입의 불가피성을 설득했다면 미국이 우방인 한국의 요구를 끝까지 거절하지 못했을 것이란 가설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에너지 수입부담으로 올해 200억달러 이상 무역적자 가능성에 비상이 걸린 국가경제를 고려하면 인도와 달리 전략 빈곤과 기량 부족이 아닌가하는 아쉬움을 떨칠수 없다.

본질문제로 돌아가 한국섬유산업연합회가 주관한 ‘섬유패션 CEO 제주포럼’이 예정대로 13일 제주 복합리조트 신화월드에서 2박3일 공식일정에 돌입한다. 오랜만에 섬유패션인의 화합과 소통을 통한 통합감을 불러 일으키고 코로나로 찢긴 심신을 달래는 값진 기회다.

주최측이 인원 유치에 팔소매를 걷어붙여 370명이란 많은 인사가 참석한다. 명사들의 금과옥조같은 강연을 통해 글로벌 섬유패션시장의 변화를 읽고 미래를 설계하는 유익한 기회다. 더불어 참가자중 170여명이 골프행사에 참가하고 관광 등 다채로운 행사로 고달픈 일상에서 잠시나마 해방된다.

섬유패션업계 행사중 가장 많은 인원이 참가하는 이 행사를 주관한 섬산련측의 노고를 치하한다. 이같은 대전제에서 아쉬운 일면을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 우선 참가자 숫자는 작지 않지만 스트림별 참여도가 기복이 크다. 섬유패션 각 스트림이 참가해 소통과 교류하며 동질성을 갖고 상호협력하며 필요시 공동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 이 행사의 기본 목표다.

아쉽게도 면방은 거의 100% 불참했다. 교류협력이 더욱 강조되고 절실한 의류벤더와 패션업계 CEO들 역시 극소수에 불과하다. 섬유직물수출· 경기 편직염색· 부산 염색업계가 비교적 많이 참가했다. 한국의 섬유메카 대구산지는 염색업계 참가자를 빼면 극소수에 불과하다. 특히 대구의 중심인 직물업체와 단체장중 조정문 대경섬산련 회장을 제외하면 단체장이 거의 외면했다. 단순한 레저관광이 아닌 스트림간 교류협력의 참뜻이 희석된 것이다.

더욱이 지난 18회 CEO포럼 역사상 단 한차례도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장·차관이 아니면 실장급이라도 참석해 격려했다. 이번 제주행사에는 우연인지 몰라도 예상했던 장관은 커녕 차관·1급 누구도 오지 않는 것으로 돼있다. 반도체업계 등 타업종 행사가 겹친때문이라고 하지만 아주 고약한 행태다.

한나라의 산업정책에 따라 해당산업의 흥망성쇠가 좌우되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냄비속 삶은 개구리’ 처지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섬유패션인들이 시원스런 정부의 육성정책을 직접 듣고 용기를 새길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당했다. 정부의 산업정책이 반도체·통신·밧데리를 포함한 신산업에 경도된채 섬유는 미운 오리새끼 취급하며 안중에 없는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세계 섬유패션 시장규모는 반도체의 2.5배인 1조달러 규모다. 국내 섬유산업 현장근로자 수가 아직도 제조업에서 가장 많은 28만명에 달한다. 크건 작건 업체 수가 4만8천개다.

하기에 따라 섬유패션산업에도 얼마든지 금맥이 있다. 정부의 육성의지가 강화되고 각자도생하는 업계의 자구노력이 톱니바퀴를 이뤄 맞물려 돌아가면 가능성은 있다. 인력난과 고임금의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해소하는데 정부가 어떤 의지를 갖고 지원하겠다는 한마디가 업계는 천군만마로 들릴수 있다. 당국자가 섭섭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섬유패션산업을 백안시할 바에는 관련단체에 대한 낙하산 인사부터 철회해야 한다. 섬산련 상근 부회장과 상무자리를 산업부 간부로 낙하산 인사를 자행하는 관례부터 조정해야 한다. 이번에 임기중 전직사유로 도중하차를 자초한 김기준 부회장 자리와 8월 4일 임기가 만료될 최미혜 상무자리도 산업부가 꿰찰 것으로 이미 알려져 있다.

섬산련 사무국이 열심히 하고도 평가를 못받는 이유는 또 있다. 지난번 필자가 지적했듯이 이번 CEO포럼 참가자 전원에게 만찬과 강사료의 참가비를 징구하는 것은 누가 봐도 무성의한 태도다. 1인당 45만원이 없거나 아까워서가 아니라 큰집인 섬산련이 모진 코로나에 밟힌 업계를 위해 이정도는 부담했어야 했다. 지난 2년간 대구산지 제직·염색업계는 업체당 20억씩 적자에 신음한 것이 대다수 십상이다.

대구 없는 한국섬유산업은 무의미

주최측이 표준협회 등은 훨씬 비싸다고 변명하지만 그곳은 사실상 정부기관이다. 회원사가 공기업·대기업·중견기업이다. 인력난·고임금·고금리 복합위기속에 맷돌에 밀려 찢기고 할퀸 중소 섬유제조업체와는 비교할 수 없는 곳이다. 하나의 예증으로 9월에 제주에서 열리는 중기중앙회 포럼에는 커리큘럼도 다양하지만 참가자 식사비를 중소기업은행이 전액 부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섬산련이 만찬과 강사료마저 부담하지 못할 형편이면 기라성같은 섬유패션기업인에 부탁해도 가능할 수 있었다. 성의부족이고 기량부족이다.

아무튼 전대미문의 코로나 고통에서 벗어나 섬유패션인의 긍지와 통합감의 값진 기회인 CEO포럼이 내년부터는 더욱 활성화되기를 기원한다. 큰집인 섬산련이 대구산지 각 단체를 비롯 전국 단체와 업계를 보듬고 가야한다. 내년 행사에는 대구산지가 전국에서 가장 많이 참석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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