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철학 ‘하나님의 자녀 청지기 사명’... 사회환원 소명”

“수출· 내수 쌍끌이 매출 1조 돌파, 쾌속 질주 할겁니다”

창립 49주년 외형· 영업이익 수직 상승 우등생 경영

매일 4시 새벽기도, 6시 출근 해외법인과 소통

내수 패션 2남 박정빈 부회장, 수출 3남 박정주 사장 경영 일임

박성철  신원 회장
박성철  신원 회장

 의류산업협회장, 섬산련 회장 역임한 거물, 열정 쏟은 참 지도자 평가

 독실한 기독교 신앙인 ‘국가조찬기도회장’ 역임한 거목

섬산련 회장때 주무장관과 담판 ‘프리뷰인상하이’ 예산 20억 지원 뚝심

1년에 100명 전도, 신학생 100명 후원, 평생 100개 이상 교회 건립 실행

네팔에 총 126개 교회 설립, 전남 신안에도 교회 준공, 7월 기념헌당 예배

 

 

박성철 ㈜신원 회장(82)은 한국 의류수출업계 역사의 산증인이자 신화적 입지전적인 기업인이다. 스웨터 수출로 시작해 대형 의류벤더로 일취월장했고 내수 패션업계의 선구자적 기업인이자 숭상받는 지도자다.

한국 스웨터수출조합 위원장, 통합 한국의류산업협회장, 한국섬유산업연합회장 등 명실공히 국내 섬유패션업계의 首長으로 전력투구 봉사한 진정한 지도자로 꼽힌다.

무역의 날에 동탑산업훈장,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한 기업인 최고 영예를 누리는 한편 기독교 실업인이로서 국가조찬기도회장을 역임한 거물 신앙인이다.

현장을 중시한 탁월한 기업인인 그가 우여곡절 끝에 잠시 경영일선을 떠났다가 최근 다시 책임경영을 위해 복귀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의류패션 역사이기도 한 박 회장을 본지 창간 29주년 특별대담 손님으로 조영일 발행인이 만났다.

 

- 최근에 코로나(오미크론)을 겪으셨다면서요. 겉으로 뵐때는 아주 건강해 보이십니다.

“그래요. 남들이 확진됐을 때 무사히 잘 견뎠는데 막판에 감염돼 며칠 고생했어요. 다행히 금방 훌훌 털고 일어났지요. 매일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열심히 운동한 덕분이죠. 조 회장도 조심해요...” (웃음)

- 회장님은 국가조찬기도회장을 역임하시는 등 기독실업인의 대명사로 자타가 공인하고 있습니다. 요즘도 새벽기도에 거르지 않고 나가십니까? 그리고 해외 법인 예배도 변함이 없나요.

“물론입니다. 1973년 신원 창립 이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상으로 생활화 했는데 거를 리가 있겠습니까. 매일 새벽 2시 30분에 일어나 준비하고 집에서 나와 영등포 신길교회에 4시에 도착합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6시에 회사에 도착하지요.

한국 본사를 비롯해 인도네시아, 베트남, 과테말라, 니카라과 등 신원 전체 해외 법인에서도 약 5만명에 달하는 임직원들이 매주 월요일마다 자발적으로 예배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모든 해외 법인에서 십자가를 걸고 예배를 진행하고 있지요.”

- 회장님이 금과옥조로 여기신 경영철학은 무엇인가요.

“기업활동을 통한 사회환원이야 말로 하나님의 자녀인 청지기로서, 기업인이 가져야 할 소명입니다. 신원의 경영철학은 청지기 사명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말씀인데, 재능이나 재산을 하늘이 인간에게 지키라고 주는 것으로 알고 잘 지키면서 불려나가라는 의미입니다. 신원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풍요로운 사회를 만드는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 회사 경영은 내수패션담당 박정빈 부회장과 수출담당 박정주 사장이 맡고 있지 않습니까. 회장님이 직접 경영을 진두지휘 하시나요.

“경영은 아들 두명이서 내수와 수출을 맡아 각자 전력투구하고 있습니다.다만 주요 사안은 보고를 받고 결정을 내리지요. 회사에는 매일 아침 6시에 도착해서 과테말라, 니카라과,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각 해외 공장에 전화를 합니다. 그 후 내수패션부문과 수출부문의 주요사안을 보고 받고 업무가 정리 되면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하는 것에 매진합니다.”

- 신원 창립 49주년이 됐습니다. 연간 매출이 1조를 돌파했고 이익률도 아주 우등생입니다. 축하드립니다.

“그동안 코로나 사태와 수요부진으로 내수패션이 고전을 하다 올들어 큰 폭으로 상승해 매출·영업이익 모두 우등생입니다. 수출은 의류벤더 중에서 내용이 가장 알차게 성장하고 있어요.

금년 신원은 매출 1조원을 돌파하고 더 큰 성장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는 패션부문 박정빈 부회장이 전국의 매장을 진두지휘하고, 수출부문 박정주 사장이 전 세계를 돌면서 전력투구하고 있으며 신원가족 모두가 열심히 한 덕분입니다”

- 작년에도 코로나 와중에 실적이 좋았는데 올 1분기 실적은 더욱 수직상승한 것 같습니다.

“작년에는 계속되는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전세계가 어려웠지만 신원의 실적은 괜찮았어요. 작년에 매출은 전년보다 27%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3억에서 216억원으로 70배 넘게 올랐죠. 수출부문에서 오더 수주가 계속 늘어 상승을 이끈 반면 내수패션 경기가 안좋아 걱정이었어요. 그런데 올 1분기에는 내수도 힘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이번 1분기 매출은 전년 대비 44% 늘어서 2707억원을 달성했고 영업이익도 180%나 증가한 117억원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수출이 1분기 매출 2,296억원, 영업이익 137억원을 내면서 작년 동기대비 각각 51.4%, 61%나 늘었어요. 내수 패션부문도 재택근무가 끝나고 야외활동이 늘어나면서 1분기 매출이 15% 정도 오르면서 상승세를 탔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연간으로 계산하면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고공행진 한 거지요.”

- 수출은 이른바 ‘2030 글로벌 사업혁신 로드맵’을 통해 공급망 강화 전략이 적중한 것 아닙니까.

“해외 거래선들과 차돌 같이 단단한 신뢰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오더 확보 전략이 선제적으로 이뤄졌어요. 여기에 해운 물류대란 같은 공급망 차질에 대비해 과테말라에 이은 니카라과에 대규모 생산기지를 구축해 중남미 생산기지를 대폭 확충했습니다. 시시각각 급변하는 글로벌 시장 정세에 적극 대응한 것이 명중했다고 볼 수 있지요. 설비도 고도화해 효율을 높인 것도 주효했습니다. 모든 생산공장에 정보통신기술을 적용한 스마트팩토리 시스템을 구축해 전 공정을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있어요. 연구개발센터에도 계속 대대적인 투자를 해 디자인 역량을 높이는 한편, 트렌디한 아이템 제안 등을 통해 바이어 만족도를 충족시킨 점도 한 몫 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수출부문을 총괄해서 이끌어가고 있는 박정주 사장 공이 커요. 전세계 어디가 됐던 현장을 직접 누비며 앞장서서 기획, 착수, 성과까지 훌륭히 해내고 있습니다.”

- 내수패션시장에 보복소비가 일어나는 것도 호재군요.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와 함께 내수 패션시장이 다시 활기를 찾은 것도 사실입니다. 신원 패션 브랜드의 차별화, 고급화 전략이 소비자들에게 폭넓게 전파돼 매출 증가로 이뤄졌고 이익률도 많이 양호해졌습니다. 내수 패션은 6년 만에 흑자 전환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재택근무가 끝나고 각종 모임이나 행사, 야외활동이 다시 회복세를 보이면서 신원의 주력 아이템인 남녀 정장과 캐주얼 매출이 연일 상승하고 있어요. 젊은 세대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스타 마케팅을 활용해 온라인에서 소비자들과 접점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올해 신원은 지이크, 파렌하이트, 베스띠벨리, 씨, 마크엠 5개 브랜드 모두 전속모델을 기용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에겐 아무래도 스타를 활용해 자연스럽게 신원의 브랜드와 제품들이 노출되는 것이 효과적일 테니까요. 내수패션부문을 책임지고 있는 박정빈 부회장의 역할이 컸습니다.

박 부회장은 매일전국을 누비며 발로 뛰는 현장경영을 실천하고 있는데, 신규 매장 오픈이나 실적이 좋은 지역을 독려해 추가 매장을 오픈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 화제를 바꿔 흔히 지나간 과거는 역사로 잊혀지기 쉽습니다. 이 땅의 빈곤퇴치 주역인 섬유의류 수출이 오늘에 오기까지 의류벤더를 중심으로 파죽지세를 유지하는 것은 박 회장의 탁월한 지도력이 발판이 되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80년대 한국 스웨터 수출의 덤핑제소를 승리로 이끈 박 회장의 공로 때문입니다.

“80년대초 한국 의류 수출 중 스웨터 수출이 전성기를 맞은 때입니다. 그런데 1989년 미국이 난데없이 한국과 대만, 홍콩산 스웨터 제품에 대해 반덤핑 혐의로 제소를 해 지루한 통상마찰이 불거졌어요. 3개국 스웨터가 저가로 대량 반입돼 미국 스웨터 산업이 치명타를 입었다는 게 그들 논리였죠. 그 중에서도 미국 수출량이 많은 한국이 주요 타깃이었고 국내기업들 중 신원을 포함해 5개 업체가 강도 높은 정밀 실사를 당했습니다. 대만과 홍콩은 미국의 집요한 공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소송을 포기할 정도였죠. 당시 저는 섬유제품수출조합 스웨터 위원장을 맡고 있었는데요, 제가 반덤핑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선출돼 4년 동안 매일 같이 대책 회의를 열며 소송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덕분에 1994년 4월 ‘한국산 스웨터 미국 산업 피해 없음’으로 최종 판정을 받아 무혐의를 입증해 승소 판결을 받을 수 있었어요. 대만과 홍콩은 반덤핑 행위가 고스란히 인정돼 최고율의 반덤핑 관세를 맞고 사실상 미국 수출이 불가능해진 걸 생각하면 천만 다행이었죠. 이 승소는 단순히 스웨터 뿐만 아니라 지금의 니트셔츠 수출시장 기반을 유리하게 만든 원동력이 돼서 지금 이름을 날리고 있는 글로벌 의류벤더들의 고도성장에 견인차가 됐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시 스웨터 덤핑판정에 손을 들고 포기했다면 지금의 니트셔츠 수출대국은 기대할 수 없었을 겁니다.”

- 박 회장께서는 우리나라 섬유제품 전성기 때에 스웨터수출조합과 한국의류산업협회장을 역임하시면서 업계를 이끈 주역이십니다. 98년부터 2005년까지 한국섬유패션산업 수장인 한국섬유산업연합회장을 최초로 2회 연임하면서 헌신적으로 봉사하셨습니다. 지금도 역대 섬산련 회장 중 가장 많은 공적을 올린 회장 중 한분으로 업계가 기억하고 있습니다. 섬산련 회장 재임 당시 말못할 고민이 많으셨지요.

“당시에는 전대미문의 IMF 위기 때입니다. 우리회사도 워크아웃 기업에 편입돼 모진 고생을 할 때입니다. 그런 한편 섬산련 회장이란 공적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물리적 봉사, 공적·사적 경제적 부담이 불가피할 수 밖에 없었어요. 법인카드 사용까지 봉쇄해 이런저런 비용을 단 한푼도 섬산련에 전가하지 않았고 자비로 조달하는 과정에서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았지요.”

- 그럼에도 많은 업적 가운데 프리뷰인차이나(프리뷰인상하이)를 처음 개최해 한국 섬유패션산업의 중국진출에 초석을 놨습니다. 당시 주무장관을 만나 예산지원의 담판을 내 성사시킨 일화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한번은 섬산련에서 여러 가지 현안 결재를 하는 과정에서 하소연 하더군요. 그렇지 않아도 저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섬유 전시회였던 ‘프리뷰 인 상하이’를 기획해서 개최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정부가 예산 지원을 안 해준다고 하더라고요. 당장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실에 전화를 걸어 20분 후에 갈 테니 10분만 시간을 내달라고 막무가내로 요청을 하고 당시 삼성동 섬산련에서 과천 장관실로 달려갔어요. 당시 주무장관과는 소통이 잘되는 사이여서 즉석에서 담판을 내고 20억원 규모의 지원금을 받아내 성공적으로 전시회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후 매년 정례행사가 됐지요.”

- 회장님의 신앙심은 만천하가 아는 사실입니다. 국내외에서 다양한 선교 활동에 힘쓰면서 네팔에도 교회를 많이 지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고향인 전남 신안군에 교회를 신축하시어 준공기념헌당 예배를 준비하신다는 소문입니다. 언제쯤으로 계획하고 계십니까?

“저는 사업을 시작했을 때 1년에 100명을 전도하고, 가난한 신학생 100명이 목사님이 될 때까지 후원하며, 평생 100개 이상의 교회 건립을 다짐하고 실천해왔습니다. 1996년 네팔에 ‘신길에벤에셀교회’ 건립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네팔에만 총 126개의 교회를 설립했고, 여러 나라 다양한 지역에서도 주님의 종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이번에 준공되는 자은제일교회는 전남 신안군에 위치하며 금년 7월 1일 준공기념헌당 예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 끝으로, 회장님이 매일 함께 하시는 영등포 신길교회 성전 신축 당시 건축위원장으로 상상을 초월해 헌신하셔서 뒤늦게 화제가 됐습니다. 신길교회가 크게 부흥하고 있다면서요.

“제가 한일은 아무것도 없고, 모두 하나님께서 하신 일 입니다. 저는 오직 하나님을 섬기는 종의 사명을 감당할 뿐입니다.

신길교회는 주님의 말씀을 전하시고 살아 있는 설교로 신길교회를 이끄시는 이기용 담임목사님과 말없이 뒷바라지 하시며 무릎으로 기도 하시는 박미선 사모님 그리고 장로님들과 신길교회의 모든 성도들께서 기도할 뿐입니다.”

오른손이 한 일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겸양지덕으로 새기겠습니다. 시간 내주시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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