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뚱맞은 비유이지만 옛부터 고추·당초 매운 시집살이를 겪은 며느리가 자신의 며느리에게도 똑같이 혹독한 시집살이를 시킨다고 했다. “내가 너의 시할머니로부터 얼마나 고초를 겪었는지 너도 당해봐라”식이었다. 요즘 우리 정치권의 돌아가는 통박이 꼭 그 꼴이다. 국민의힘이 야당일 때 사사건건 물고 늘어졌던 그 행태가 더불어민주당에서 똑같이 재연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했는데도 총리·장관 인준이 안돼 반쪽 정부로 시작했다. 국제적인 우사거리다.

정치는 국민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다. “네가 방망이를 던졌으니 나는 홍두깨로 갚아주겠다”식은 시정잡배들의 논리다. 그럼에도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표방한 윤석열 정부는 국민통합을 위해 백번을 인내하며 대화와 협치를 모색해야 한다. ‘욱’하는 성정대로 오기와 고집을 부린다면 여소야대 정국에서 국정이 파토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퇴임한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의 명연설인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경과는 정의로운 나라”는 그야말로 미사어구였다.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 불공정과 반칙이 판을 쳤던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까지 반면교사로 삼는다면 잘할것으로 본다.

50조 내수 패션시장에 금맥 있다

본질문제로 돌아가 국내 섬유패션산업의 명암이 극명한 가운데 섬유제조업은 여전히 생사기로를 헤매고 있다. 물론 패션 브랜드들의 일취월장과 해외진출 벤더들의 고도성장은 예외다.

더욱이 2년 이상 지속된 코로나 와중에 대구 산지나 경기북부 등 한국의 섬유제조업은 벼랑끝 막다른 길목에 몰렸다. 패션기업과 의류벤더들의 매출증가와 영업이익률이 10~30%까지 수직상승하지만 대다수 직물원단 업체들은 매출증가는 커녕 영업이익이 1~2%의 박리에 머물고 있다. 대구 섬유업계의 우량기업중에는 영업이익률이 5.9%에 달하거나 포천의 니트업체 중 특별한 곳은 영업이익률이 6.5%에 달한 곳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는 가뭄에 콩나기이고 대부분 영업이익이 2~3%가 안되고 대구에서 장사를 가장 잘한다는 간판업체 중엔

지난해 영업이익률이 마이너스 3%에 달할 정도다.

제조업은 기업인에게 최소한의 자존심이다. 힘들고 어려워도 제조업 한다는 자존심으로 버티고 있으나 이제는 ‘게도 구럭도 다 놓칠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상태다. 근원적으로 고비용 저효율 구조에서 경쟁력이 없는 것이다. 고질적인 인력난과 고임금은 박리다매 업종인 섬유산업의 생존을 위협한지 오래다. 각자도생 시대에 제도의 모순이나 결함을 탓해본들 소용없는 일이다. 기업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전조등을 더욱 강하게 비춰봐도 칠흙같이 어두운 시야를 뚫기에는 역부족이다.

중언부언하지만 국내 섬유산업을 살리자고 아무리 목청을 높여도 오래전부터 하산길에 들어선 상황을 반전시키기가 결코 녹록치 않다. 단체와 연구소가 한국만큼 많은 곳이 없지만 백가쟁명뿐 실효가 없다. 섬유산업의 미래비젼을 위해 획기적인 소재개발과 공정개선, 생산성·품질 향상의 차별화 전략은 뒷전이고 어떻게 하든 정부과제 하나라도 더 따내기 위해 혈안이다. 당장 먹고 살 재원마련이 급해 본업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국내외 시장 동향과 변화를 예측하고 진로를 제시해야할 단체들 역시 살기가 팍팍해 본연의 책무를 엄두내지 못하고 있다. 있으나 마나하는 연구소·단체가 너무 많다는 비난과 질책이 잦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냉정히 진단해 국내 섬유산업이 기사회생할 수 있는 비상구를 찾아보면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사고의 전환을 통해 환골탈태하지 않고는 길이 없다. 이미 여러차례 암시를 했지만 대구 섬유산지가 길을 두고 뫼로 가는 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대안은 과거 밀라노 프로젝트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DJ정부 당시 문희갑 시장은 대통령의 이태리 순방을 동행하며 6800억원(중앙정부·지자체 매칭 포함) 규모에 달하는 밀라노 프로젝트란 통 큰 야심작을 만들었다. 밀라노 프로젝트는 직물과 패션의 만남을 전제로 한 것이며 이에 따른 대규모 인프라가 여러곳 조성됐다. 종국에는 대구 봉무동에 어패럴 밸리를 조성해 대구에서 생산된 원단을 사용하여 의류수출과 내수공급을 병행하자는 것이었다. 원단과 의류패션 제품을 ‘메이드인코리아’로 완성해 제값받고 팔기위한 필연적인 논리였고 현실적인 방안이었다. 아깝게 대구 시장이 바뀌면서 봉무동 어패럴 밸리가 백지화된 채 비싼 땅값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말았다.

대구 직물원단과 어패럴 밸리의 연계가 빛을 보지 못하고 개성공단마저 폐쇄되는 악순환으로 대구 섬유산업은 속절없이 붕괴됐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설상가상 코로나 사태가 2년 이상 지속되면서 공멸위기에 처한 것이 대구 섬유산업의 현주소다. 경기북부 니트산업도 같은 맥락에서 모진 고생을 겪고 있다.

중언부언하지만 대구 섬유산업의 변화와 혁신의 환골탈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차별화 원단을 개발하고 해외에 제값받는 전략은 당연히 지체할 수 없는 현안이다. 중국과 경쟁하지 않을 독창성과 창의성이 가득한 제품을 생산·공급하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런 한편 대구 섬유산업과 경기 니트산업이 사는 길은 상당부분 우리 내부에서 시장을 찾아야 한다. 지금까지 대구 화섬직물은 70~80% 수출에 의존했다. 하지만 지구촌에 울타리가 사라진 글로벌 시대에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마른 나무 기름짜는 어려운 해외시장만 바라볼게 아니다. 국내시장에서도 무궁무진한 금맥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내수 패션시장 규모가 자그마치 올해 48조원 규모에 달한다. 여기에 개척 가능성이 큰 군 피복류와 공기업 단체복을 국산으로 대체하면 연간 50조원 이상의 내수시장이 열려있다.

자본금 200억 온라인 패션회사 설립을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 우선 국내 패션 브랜드와 의류벤더가 더 많이 국산원단을 사용하도록 설득하고 채근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협업의 핵심키를 디자이너들이 장악하고 있지만 오너들을 만나서 국산 사용의 당위성을 밀어붙여야 한다. 과거 문희갑 대구시장은 이건희 삼성회장과 30분 면담을 요청해 2시간 설득을 해 대구 자동차공장 유치를 약속받았다. 새로 선출될 홍준표 대구시장이 정식 출범하면 대구시장, 경북지사가 전면에 나서 국내 의류벤더와 패션 브랜드 오너와의 미팅을 가져야 한다.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전제로 국산원단 사용을 설득하면 거절할 기업인이 드물것으로 보여진다.

이와 함께 대구 섬유업계에서 1인당 10억씩 20명이 출자한 자본금 200억 규모의 새로운 패션 브랜드를 탄생시키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때가 됐다. 무신사 같은 온라인 전문회사를 만들어 국산소재로 승부하면 성공확률이 높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문제는 누가 전면에 나서 성사시키느냐가 관건이다. 두드려야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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