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학 전문가들은 한국 대통령 임기는 3년이라고 한다. 5년 임기중 취임 1년은 현황을 파악하고 배우는데, 마지막 1년은 레임덕으로 령이 안 선다는 것이다.

갈길 바쁜 윤석열 당선자의 통치구도가 초반부터 삐걱거린다. 집무실 용산 이전을 둘러싸고 신구 권력간에 치킨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구중궁궐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는 의도다. 취지는 순수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국가 안보에는 설마가 없다. 북한이 ICBM 도발까지 레드라인을 넘은 상태에서 1분 1초도 허점이 보여서는 안된다. 그러니 초반 국민의 58%가 집무실 이전을 반대했다. 찬성은 33%였다. 최근 찬성이 다소 늘었으나 국민 절반 이상이 반대하고 있다.

대선공약인 광화문 시대는 오래전에 휴지조각이 됐다. 국민이 청와대를 돌려달라고 안달복달 하는 것도 아니다. 코로나로 인한 재난지원금 퍼주기로 나라 곳간이 비었다. 줄잡아 수천억원이 소요될 집무실 이전비용도 과소평가할 수 없다. ‘발목잡기’니 ‘제왕적 발상’이니 하는 질그릇 깨지는 악담 그만두고 시간을 갖고 협의하고 준비하는 협치가 아쉽다. 이것이 이번 대선에서 확인한 국민의 명령이다.

해프닝으로 끝났던 대구시 섬유과 폐지론

말을 바꿔 종이 한장 초박빙 차로 승부가 갈린 20대 대선결과 일등공신은 뭐니뭐니해도 대구 경북이다. 윤석열 당선자에게 닥치고 목표를 안겨준 뚝심이 세상을 바꿨다. 당연히 대구 섬유업계 유권자도 윤 당선자에 몰표를 던졌다. 이재명 후보가 경제 대통령의 이미지는 좋았지만 대구 산지 섬유인의 마음을 사지 못한 것이다.

논공행상도 공치사도 아니다. 요즘 대구 섬유업계에서는 윤 당선자측에 강도 높은 압력성 발언이 심심찮게 들린다. 대구경북이 대통령을 만들었으면 그 지역 대표산업인 섬유산업을 위해 선물을 당당히 요구하자는 것이다.

이미 대선 과정에서 대구섬유산업연합회가 내용은 엉성하지만 3조5천억원을 지원해 줄 것을 제안한 바 있다. 방법론에서 어줍잖은 방안이 많아 하지하책(下之下策)이란 지적과 질타를 받았지만 목적은 같았다. 오래 전부터 下山길에 들어선 지역 섬유산업의 기사회생을 위한 통큰 지원책의 ‘빅 프로젝트’가 목적이었다.

추진방법과 내용은 부실해도 새 정부로부터 통 큰 지원책이 마련되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의 발로였다.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천재일우의 호기가 20대 대선이었다.

하지만 명제를 던져만 봤지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대구경북섬유산업연합회 명의로 여야 대구시당에 페이퍼만 보냈을 뿐 구체적인 실행방안이 없었다. 수많은 업종에서 너나없이 요구한 건의를 후보캠프 실력자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할 채널도, 능력도 없었다.

구태정치라고 비난할지 모르지만 정부 고위인사나 유력 정치인 집에는 새벽부터 민원인들이 장사진을 이루기 일쑤다. 누가 더 깊이 실력자와 마주앉아 민원을 호소하고 눈도장을 찍느냐에 따라 채택되거나 속도감을 가질 수 있다. 정부 고위인사, 유력 정치인을 설득시키고 채택할 수 있는 과정이 서류 한장 달랑 던져서 되는 일이 아니다. 역량과 매커니즘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업환경이 어려울수록 중앙정부나 지자체의 산업정책에 따라 판도가 바뀐다. 제도와 예산이 지원되면 그 산업의 성장과 수명이 길어지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물론 정부 도움없이 각자도생하면 더 바랄것이 없지만 섬유산업 현실은 망망대해 편주 처지다. 당장 사람이 없어 가동을 못하는 상황에서 자동화·첨단화를 위한 무이자 장기 지원책부터 AI·로봇화, R&D는 물론 산업구조의 재편이 발등의 불이다.

뒤주가 비어있는 업계 스스로는 투자에 한계성이 노출된 지 오래다. 소가 언덕이 있어야 비비듯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언덕을 제공해주면 가능성이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5000달러를 넘어선 나라에서 기존의 천수답 경영으로는 살아남을 수가 없다. 고임금, 인력난, 고비용·저효율 구조에서 섬유산업이 생존하는 길은 구조 고도화가 처방이다.

대경 섬산련과 지역 15개 업종별 단체가 똘똘 뭉쳐 대선 이후 정치권을 설득하고 채근해 획기적인 지원책을 얻어내야 한다. 립서비스로 되는 일은 없다. 지역 단체장들이 머리를 맞대면서 문안을 마련해야 한다. 중앙정부와 정치권 설득뿐 아니다.

섬유산업은 해당 지방정부 영향권이 매우 강한 특성을 갖고 있다. 적어도 대구시와의 관계도 보다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사실 현 권영진 대구시장이 처음 취임했을 당시 섬유업계와는 악연이 있었다. 권 시장이 취임하면서 “대구는 섬유산업 같은 사양산업을 접고 IT나 첨단산업으로 산업구조 재편을 선언했다. 그는 대구시에 존재하던 섬유과를 폐지한다”고 폭탄 선언했다.

대구 섬유업계 중진들이 득달같이 전면에 나서 강하게 반발했다. 섬유산업의 비중과 가능성에 대한 진면목을 모르고 성급하고 위험한 발상이라고 항의했다. 그리고 시의회를 집중 공략했다. 시 조직개편에는 시의회의 승인을 거쳐야 하는 규정을 활용해 시의회가 권 시장의 섬유과 폐지에 제동을 걸었다. 그 결과 지금도 대구시에 섬유패션과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대선 일등공신 대구에 통 큰 선물을

오는 6월 지자체장 선거에는 이미 권영진 현 시장과 홍준표 의원, 김재원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누가 국민의힘 공천을 받느냐에 따라 사실상 당선자가 확정되는 지역이다. 새로 선출될 대구시장이 얼마만큼 섬유산업을 중흥시킬지 두고 볼 일이다. 산업의 특성을 제대로 전달해 대구가 명실공히 국제섬유패션도시로 거듭날 수 있도록 섬유인들이 앞장서 특단의 대책을 만들고 설득해야 한다.

사실 한국의 섬유산업은 가파른 집단 붕괴 속에 대구가 유일하게 살아있을 뿐이다. 경기의 니트산지와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지만 대구가 무너지면 한국의 섬유산업은 그대로 소멸될 수 밖에 없다.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 놓인 대구 섬유산업을 기사회생 시키는 것은 대구뿐 아니라 한국 섬유산업인의 소명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시난고난 앓아온 중증의 대구산지를 집도하지 않으면 게도 구럭도 다 놓칠 수 밖에 없다. 부서지고 망가지는 섬유산업을 설마하며 방심할 여유가 없다. 대구섬유가 무너지면 ‘주식회사 한국섬유산업’이 속절없이 부도난다는 사실을 지역뿐 아니라 중앙정부와 단체, 기업인이 절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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