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D서 소재 혁명 중지 모으자”

팍팍하고 고단한 시름을 잠시 덜기위해 생뚱맞은 얘기를 양념삼아 시작해본다. 10여 년 전 구미에서 직물공장을 운영하다 털어먹은 한 중소기업인 얘기다. 그는 회사부도 후 빚잔치를 끝내고 지역에서 자취를 감춰 잊혀진 사람이 됐다. 소문에는 살기위해 온갖 막일을 하며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그가 최근 대구에 나타나 과거 절친 이었던 선배 기업인을 만났다. 10여년 만에 연락을 받은 섬유 기업인은 “살기가 어려워 무슨 부탁을 하려나” 하고 예상 했다. 막상 만나자 그는 벤츠 승용차중 가장 비싼 벤틀리를 타고 기사까지 두고 있었다. 폭망 했던 사람이 갑자기 삐까번쩍 변해 사기를 쳐 한 몫 잡은 것 아닌지 의심을 했다.

사연을 물었다. 사업에 실패하고 알거지가 돼 떠난 사람이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다. 답변은 간단하고 명료했다. 부도 후 빚잔치를 하고나니 손에 남은 돈은 350만원 이었다는 것이다. “이판사판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매한가지다”는 생각으로 비트코인을 샀다고 말했다.

코로나 와중 전 세계 이목 끈 대구 PID

잊어버리다 시피하고 온갖 신산고초 막일을 하며 지내다 10년이 지난 작년에 팔았더니 360억 원이 됐다는 사연 이었다. 이중 150억 주고 건물을 사서 월세 3000만 원 받고 있고 최근에 주식에 투자해 돈을 남겨 아직도 “현금 300억 원 정도가 있다”고 털어 놓더라는 것이다. 그의 얘기로는 작년에 팔지 않고 올해 팔았으면 1000억 원 이상 됐을 텐데 성급하게 판 것이 후회 스럽다고 땅을 치더라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섬유 기업인은 매일 공장에 파묻혀 생산성 올리고 품질 높이며 적자 면하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한없이 처량했다고 술회했다. 40년 섬유 한 우물을 파며 천직으로 삼았지만 “만성 적자에 시달리는 못난 자신이 부끄럽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고 필자에게 털어놨다.

세상이 야바위판이 돼가고 있다. 국내 가상화폐 사용자가 40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암호 화폐 올 1분기 신규 투자자 가운데 33%에 달하는 81만6000여명이 20대이고, 30대가 31%인 78만9000명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땀 흘려 일해서 벌겠다는 정직한 젊은이도 있지만 투기판을 방불케 한 이런 짓이야말로 한탕 밖에 기댈 곳이 없다는 병리현상이 만연되고 있다는 증거다.

화제를 바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우여곡절 끝에 ‘2021 대구 국제 섬유 박람회’(PID)가 지난 3월에 열었어야 함에도 뒤늦게 개최 되지만 국내 최대 섬유 소재전에 거는 기대가 크다. 주최 측인 대구 경북 섬산련은 대면 행사가 제약을 받음에 따라 온라인 사전 전시회를 4월 20일부터 3D 가상 전시관으로 진행해 이미 수천 건의 상담 실적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169개사 해외 25개사가 참가한 이번 PID는 주최 측이 다각적인 노력을 경주해 온․오프라인 대응형 전시회를 준비했다. 코로나로 직접 방문이 어려운 중국 바이어를 위해서는 중국 대련에 국내 31개사가 참가한 별도 부스를 마련해 상담의 극대화를 도모하고 있다.

코로나로 지난 해 전시 행사를 건너 뛴 올해 PID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크고 작은 소재 전시회가 취소되거나 축소 운영돼 세계 섬유 패션 업계의 목 타는 소재 정보를 제공하는 거의 유일한 행사인 것이다.

이번 전시회에도 참가 업체들이 나름대로 다양한 신소재와 새로운 디자인 제품을 대거 선보일 것으로 보여져 기대를 모으고 있다. 코로나로 대면 상담이 안돼 한계가 있지만 국내 패션 브랜드와 해외 바이어 에이전트들의 큰 호응을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와 금년을 통틀어 세계적으로 가장 알차게 꾸며진 전시회가 PID로 평가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중언부언 강조하지만 지금 남아있는 국내 섬유 산업이 공멸의 위기에서 벗어나는 길은 소재 혁명 밖에 다른 대안이 없다. 양적으로 질적으로 중국에 밀리고 대만, 일본, 이태리에 쳐진 이유 모두가 소재 빈곤이다. 가격 경쟁력은 물론 품질 경쟁력이 없는 상황에서 한국 소재를 찾아 줄 바이어는 없는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발발 이후 모질게 고통 받는 대구 산지의 상황이 바로 웅변으로 말해 주고 있다. 한마디로 세계 패션 트랜드는 친환경이 대세인데 이에 따른 신소재가 없다. 글로벌 SPA 대표 브랜드인 자라의 매장을 가보면 폴리에스테르 소재가 대거 줄었다. 밋밋한 폴리에스테르 감량 가공으로 수십 년을 우려먹었으면 달라져야 하지만 우리 업계의 변신이 굼뜬 것이다.

나일론 과 폴리에스테르 섬유가 개발된 지 거의 100년이 가까워졌다. 싫증이 와도 진즉 올 수밖에 없는 세월이다. 그나마 기능성 신소재는 일본이 선점하고 있다. 친환경 PET 리사이클 섬유 오더는 한국에 안 온다. 값나가는 제품은 대만이 차지하고 중저가는 중국이 장악한다. 한국은 이삭줍기에 급급하고 있다. PET병 재생 섬유 활용을 위한 제도가 뒤처지고 기술도 떨어져 수요량의 상당 부문을 일본산 또는 대만산 칩을 들여와 방사하고 있다.

친환경 신소재 개발이 발 등에 불이 된지 오래지만 아직도 전문가 그룹의 TF팀마저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 레이온 소재가 대세이지만 원료가 한국에는 없다. 모달, 텐셀 수요는 늘고 있어도 오스트리아 렌징사가 선점하고 있는 시장에 이제 뛰어 들어봐야 잘해야 2등이다. 국내에서는 절박한 소재 차별화를 도모하기 위해 고민하는 흔적도 안 보인다. 그저 남의 나라것 들여와 사용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소재혁명 미루면 섬유 한국 弔鐘(조종)이다.

하나의 예증으로 모달텐셀 원료인 밤나무를 성장시키기 위해 30년이 소요된다. 반면 대나무는 속성율이 높아 5년이면 성장한다. 동남아에 위탁 경작해 펄프를 들여와 사육하면 훌륭한 뱀브 섬유가 될 수 있지만 이 부문에 투자한 기업이 없다. 중국서 혼방된 뱀브 원사를 들여와서는 세계 시장을 석권하기 어렵다.

어떤 방법이라도 세계에서 한국이 종주국이 될 수 있는 신소재를 개발하지 않고는 이 위국(危局)을 벗어날 수 없다. 세계 트랜드에 맞는 친환경 소재 개발이 안 되면 끝장이다.

인력난과 고임금, 주 52시간,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한국 섬유 산업이 생존하는 길은 소재 개발뿐이다. 정부나 지자체들도 섬유 산업을 사실상 포기한 거나 마찬가지다. 반도체, 휴대폰, 밧데리 등 차고 넘치는 신산업에 집중할 뿐 섬유는 죽건 말건 오리 새끼 취급이다.

이번 ‘2021 프리뷰 인 대구’를 계기로 전략적인 섬유 신소재 개발 혁명을 위한 중지가 모아져야 한다. 지금 시작해도 상당 기간이 걸린다. 더 이상 방심하고 손 놓고 있으면 게도 구럭도 다 놓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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