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길과 벼랑길 '양극화'

저승길 마지막 입는 수의(壽衣)에는 주머니가 없다. 억만 장자보다 더한 경만(京萬. (兆의 만배) 장자도 황천길에 동전 한 닢 가져갈 수 없다는 것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위대한 사람은 크고 담대하게 돈과 명예를 남겼다.

작고한 이건희 삼성 회장의 유족이 낼 상속세와 사회 환원 재산 규모에 전 세계가 놀라면서 한편으로 황금알을 낳은 거위의 배를 갈랐다고 비웃고 있다. 유족이 낼 상속세 12조 5000억 원은 이 땅에서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이며 세계에서도 유례없는 규모다. 1조원 규모의 의료 기부 또한 대한민국 어느 기업인도 엄두를 못낸 통 큰 기부다.

여기에 3조원이 아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문화재와 예술품을 국가에 기증해 국민과 대통령도 놀라고 세계인들도 일단 찬사와 갈채를 보내고 있다. 반도체 신화를 창조해 세계 초일류 기업을 일군 혜안의 이건희 회장은 생존의 철학인 사업보국(事業報國)을 웅변으로 실천했다.

꽃길 걷는 의류 벤더· 면방· 화섬· 원단밀

지난해 국가 법인세 납부액의 18%(10조원), 고용 50만 명,,,.살아서도 1등 기업인, 죽어서도 1등기부를 실현한 일류 기업인에게 간장종지만한 4류 정치인들은 석고대죄 대오 각성을 해야 한다. 때마침 상속세와 기부를 딜하자는 뜻은 추호도 아니지만 국가 경제를 위해 이재용 부회장이 세계반도체 전쟁터에서 장수로 뛸수 있도록 하루빨리 풀어줘야 한다. 그것이 국민 70%의 여론이자 국익을 위한 결단이다.

본질 문제로 돌아가 코로나 백신 접종이 급속히 증가하면서 세계 경제가 급상승하고 있다. 국내 1분기 경제 성장률도 1.8%에 달해 예상치를 웃돌았다. 중국의 1분기 성장률이 18%를 상회했다. 미국 경제가 바이든 정부의 백신 접종 성공과 재난 지원과 경기 부양책으로 6.4%나 수직 상승했다. 지긋지긋한 코로나 공포가 봄눈 녹듯 녹아내리면서 전 세계 경기가 활기를 되찾고 있다.

우리가 속해있는 섬유산업은 스트림별로 양극화를 보이고 있으나 업스트림에 비해 다운스트림은 모질게 엄동설한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의류 벤더들은 미국 경기 회복에 힘입어 욕심껏 오더를 채웠다. 오히려 생산 설비가 부족해 비상이 걸렸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중남미 등지의 자가 공장은 물론 전 세계 봉제 하청 생산 공장마다 캐퍼가 꽉 찼다.

미얀마 군부가 민간인 무차별 학살을 강화하자 미얀마로부터 내수와 일본용을 제외하고는 모두 끊겼다. 의류 벤더들이 평소에는 캄보디아 생산에 별 관심이 없었지만 지금은 캄보디아 봉제 공장들도 풀 캐퍼다. 딜리버리가 급한 의류 벤더들이 오금이 저릴 수밖에 없다. 여기에 면과 혼방사를 사용하는 원단밀들도 연말까지 오더가 꽉 찼다.

벤더들마다 원단밀을 찾아다니며 공급을 늘려 달라고 통사정 하지만 손 사래를 친다. 캐퍼도 부족하지만 원단밀들의 채산이 팔수록 손해이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작년 10월부터 인상된 면사값이 50%나 치솟았다. 면 원단은 제조원가에서 면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50~55%라면 순수 원가 상승 요인이 20%에 달한다. 그러나 월마트 같은 바이어는 단 1%도 원가 상승을 수용하지 않고 있다. 원단밀들이 벤더가 요구한 물량을 맞춰줄 수 없는 원인이다.

국내 면방과 화섬 메이커도 오랜만에 중국 왕 서방들의 경기 활황에 어부지리를 톡톡히 보고 있다. 면사값이 폭등한 이유도 중국이 베트남, 인도, 인도네시아 면사를 작년 말 닥치는 대로 사들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국 경기 활황으로 인한 의류 오더 급증으로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중국 때문에 죽었다가 그 중국 덕에 활황을 만끽한 곳은 국내 화섬 메이커들이다.

중국의 규모 경쟁에 짓눌려 생사기로를 헤매던 국내 화섬 업계는 안방시장의 60%를 내주는 참담한 상황에서 기사회생하고 있다. 작년 하반기 후반부터 중국 내수 경기가 과열국면을 보여 올 3월까지 매월 한두 차례 원사 가격 인상 행진이 이어졌다. 규모 경쟁과 안정된 품질로 레귤러 시장을 석권하던 중국 화섬 업체들이 없어서 못 판 화섬사 가격을 줄기차게 올렸다. 결과는 한국산보다 훨씬 싸던 중국산 폴리에스테르사가 거꾸로 한국보다 비싸거나 같아졌다.

한국의 화섬 직물과 화섬 니트 직물 업체들이 값비싼 중국산 화섬사를 구매할 이유가 사라졌다. 당연히 중국산의 한국 반입이 급속히 감소됐다. 달도 차면 기울듯이 과열국면이던 중국 내수 경기도 진정세를 보이고 급상승할 것으로 여기던 국제 유가도 잠잠해지면서 원료값도 하향 안정되고 있다. 3월 말부터 오르기만 하던 중국산 화섬사값이 주춤하면서 품목에 따라 파운드당 50원 내외씩 오히려 내린 이유다.

한국 시장을 탈환하기 위해 값을 인하했지만 상황을 나아지지 않고 있다. 한국의 실수요자인 화섬 직물과 화섬 니트 직물 경기가 여전히 얼어붙어있는데다 가격 메리트마저 사라진 중국산을 선호할 이유가 없다. 여기에 중국산 화섬사의 대한(對韓) 반입이 막힌 것은 중국도 어찌할 수 없는 컨테이너 선박 확보가 하늘에 별 따기인데다 운임이 작년에 비해 3~4배나 뛰었기 때문이다. 중국에 원사를 발주하면 빨라야 1개월 반이 걸린다. 발주하면 즉시 딜리버리되는 국산 화섬사와 경쟁이 불가능한 것이다.

당연히 국내 화섬 메이커가 오랜만에 휘파람을 불수밖에 없는 구조다. 전례 없이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4개월 연속 원사값을 올린 국내 화섬 업계는 상당기간 엔조이를 낙관하고 있다. 중국산 화섬사값이 국산보다 비싸졌고 컨테이너선 확보 난으로 딜리버리가 장기화 되고 있어 국내 수요자가 국산 원사 사용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등에 지고 가기도 힘들었던 화섬 메이커의 재고도 대거 소진됐고 하반기에도 이 같은 꽃놀이패는 지속될 것에 이의가 없다.

적막강산 대구산지, 처방은 소재 혁명

문제는 국내 섬유산업의 허리 부문인 화섬 직물과 화섬 니트 직물 경기가 코로나 위기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엄동설한에서 헤매고 있다는 점이다. 대구의 주종인 감량 가공 직물부터 꿈쩍 않고 있다. 3, 4월 성수기가 되면 수출 오더가 넘쳐 눈코 뜰 새 없던 대구 산지가 적막강산이다. ITY 싱글스판 니트 직물도 수출 오더가 파리 날리고 있다. 쥐꼬리만 한 이삭 오더는 선적하려고 해도 운임을 고사하고 배를 잡을 수 없다.

불황보다 더한 공황 상태의 현재의 시황에서는 못 느끼지만 설사 경기가 온다해도 오더를 쳐낼 수 있는 생산이 안 된다. 코로나 불황에 숙련 기술자를 내보냈고 외국인 근로자마저 빠져 나갔기 때문이다.

결론은 대구 산지나 경기 북부 니트 산지에 혁명적인 변화가 없는 한 표류와 방황은 해소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1935년 듀폰이 개발한 나일론에 이어 100년 가까이 의존해 온 폴리, 나일론 위주에서 레이온을 비롯한 친환경 소재 혁명이 발등의 불이다. PET 리사이클 섬유 오더는 고급은 대만, 중저가는 중국에 몽땅 뺏기는 현상을 직시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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