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를 통치하는 최고 권력자는 기업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다. 1985년 2월 전두환 신군부에 밉보였던 당시 재계 7위 국제 상사가 공중분해 됐다. 국제상사 총수 양정모 회장은 “신군부 요구를 들어주지 않아 괘씸죄에 몰려 그룹 해체의 비운을 맞았다”고 털어놨다. 결국 부산을 중심으로 수많은 신발 협력 업체들이 파산의 불구덩이로 빠져들고 말았다.

경우는 다르지만 2016년 평창 올림픽을 2년 가까이 앞두고 대회 조직 위원장이던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갑자기 잘렸다. 표면적으로 평창 올림픽 마스코트를 호랑이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좋아하는 진돗개로 바꾸라고 했는데 그것을 실현하지 못한 괘씸죄가 아닌가 하는 소문이 나돌았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 곁에 최고 실력자 이었던 최순실씨 한테도 미르와 K스포츠단에 달라는 돈을 안줘서 밉보였다는 얘기도 나돌았다. 결과는 국내1위, 세계7위인 한진해운을 자구 노력이 부족하다며 법정 관리로 밀어 넣고 결국 파산시켰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주주의 방만한 경영과 도덕적 해이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아리송한 명분을 내세웠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국가 기간산업의 대표 기업인 한진해운을 눈도 깜짝 않고 수몰시킨 것이다.

한진 해운 파산업보 이렇게 클 줄이야

그 업보가 지금 대한민국 수출품 수송에 치명타를 안기고 있다. 코로나 사태에서 천신만고 끝에 확보한 수출물량을 배를 못 잡아 싣지 못하고 있다. 컨테이너선 운임이 3~4배나 뛰어도 배를 구할 수가 없어 수출 기업마다 아우성이다. 지금 이 시간도 배를 확보하는데 줄잡아 한 달이 걸린다. 수출 업계가 천불날 지경이다. 나무만 보고 숲을 못 보는 통치자의 판단 착오가 불과 몇 년 만에 수출 산업에 대못을 박고 원가를 끌어올려 그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폭망 위기에 있는 대구 직물업계도 요즘 이삭 오더를 모아 확보한 1000~2000야드 샘플 오더마저 못 실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대구뿐 아니라 경기북부 전국어디나 매 한가지다.오더가 없어서 얼어 죽는 다면 몰라도 어렵게 확보한 수출오더를 배를 못 잡아 못 싣는 심정이 오죽 하겠는가.

내친김에 요즘 대구 섬유업계 사정이 예사롭지 않다. 코로나 백신 접종이 늘어나면서 세계 경제가 빠르게 회복 되고 있고 섬유 스트림 모두 일단 위기를 벗어나는 과정에서 유독 대구만 목타는 흉년이다. 사실 의류 벤더들은 일찌감치 F/W 오더까지 확보해 해외 소싱 공장을 풀가동하고 있다. 면과 혼방직물을 생산하는 원단 밀들도 해외 공장뿐 아니라 국내 공장까지 일감이 넘치고 있다. 물론 천정부지로 뛰어오른 면사 값 때문에 채산은 좋지 않지만....

코로나로 죽을 쓰던 면방업계도 작년 10월 이후 지금까지 호황을 만끽하고 있다. 국제 원면 값이 받쳐주어 면사 값이 50% 이상 치솟아 떼돈을 벌고 있다. 작년 재작년에 적자봤던 손실을 벌충하고도 남을 정도다. 10년 만에 호경기가 돌아온 것이다.

지난 수년간 중국의 규모공세 앞에 속수무책이던 화섬 업계도 때를 만났다. 중국 내수 경기가 활황을 보이면서 중국내 화섬사 수요가 급증해 한국에 대한 덤핑 판매가 사라졌다. 화섬사값을 작년 10월 이후 매월 인상하면서 한국산보다 훨씬 싸던 중국산이 오히려 비싸졌다. 국내 화섬업계도 중국산과 연동해 지난 1월부터 이달까지 매월 가격 인상을 강행 하고 있다. 중국산 때문에 “죽었다고 봉창”하던 국내 화섬 업계가 중국산 때문에 가격이 뛰고 재고가 소진되는 어부지리를 보고 있다. 코로나로 죽을 쓰던 내수 패션 경기도 지난 3월부터 완연히 봄이 찾아와 2019년 수준을 돌파하고 있다. 아웃도어, 골프웨어 뿐 아니라 예식과 입학식마저 사라져 바닥으로 추락한 남, 여 정장류까지 기지게를 펴고 있다.

이 같이 섬유 패션스트림 대부분이 봄바람을 맞고 있는데 반해 유독 대구 화섬직물 업계만 맥을 못 추고 있다. 최근 아웃도어용 오더가 조금 풀리고 중동용 포말블랙과 아바야 오더가 시작되긴 했지만 그중 간판 품목인 감량가공 오더가 꿈쩍 않고 있다. 잘 나가던 자라, H&M, 망고 같은 글로벌 SPA 브랜드들까지 오더를 형편없이 줄이고 있다. 원인은 소문과 달리 미국과 유럽 경기가 제대로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이라지만 상황이 너무 심각하다. 미국과 유럽에서 아직 코로나가 창궐하고 있어 정장류 수요가 줄었고 그 소재인 감량가공물 수요가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작년 한해 쌓여만 가던 재고가 소진은커녕 오히려 늘어나 업체마다 아우성이다. 이 와중에 원사 값은 매월 치솟아 원가 부담이 가중 되는데도 작년 가격에도 못 팔아 안달이다. 3~4월은 화섬 직물 업계에 황금기인데도 그대로 허송하는 분위기다. 땅 꺼지는 한숨 소리만 늘어가고 자칫 얼마못가 우사 당할 기업이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안 되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고 악재는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화섬직물 수출 비상구 역할을 하던 터키가 난데없이 한국산 원단에 대해 아조 염료 사용 유무를 확인한다며 통관을 보류 시키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한국 염색 업계는 인체 유해성분이 검출돼 아조 염료 사용을 중지한지 십수년이 지났는데 이걸 검사 한다는 것이다. 국가공인 시험 연구원이 테스트한 확인서를 붙여야 통관을 한다는 소문이다. 사실이라면 컬러별로 건당 8만 원의 시험분석 요금이 소요돼 컨테이너 하나에 20컬러만 실어도 줄잡아 160만원이 소요 된다는 것이다.

올 겨울 패딩 원단부터 국산으로

이 와중에 은행권은 “대출금 상환하라”고 사정없이 독촉하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에 만신창이가 됐고 성수기에 오더 기근이 심각한 상황에서 원사 값은 천정부지로 뛰고 시장은 살아나지 않은 대구 화섬직물 업계가 사면초가 형국이다. 국가 전체적으로 수출이 크게 늘고 내수도 살아나는 상황에서 섬유 패션 스트림중 대구 화섬직물만 흉작이라는 양극화 현상에 지역 섬유 업계가 심하게 휘청거리고 있다.

이 같은 대구 화섬 직물의 절박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천수답 방식을 하루 빨리 떨쳐 버려야 한다. 비수기에 쌓아둔 재고를 성수기에 털어낸다는 봉건적인 방법으로는 안 된다. 첫째도 둘째도 중국이 하지 못한 차별화는 말 할 것도 없다. 무엇보다 산토끼도 중요하지만 집토끼부터 지켜야 한다. 천문학적인 겨울용 롱, 숏 패딩 원단부터 국산 사용을 늘리기 위해 기업은 물론 단체, 지자체까지 나서 패션브랜드를 설득하고 관철해야한다.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릴게 아니라 널부러진 시장을 쟁취해야 한다. 중국과 대만산에 뺏긴 원단부터 국산으로 대체하면 엄청난 가동률을 유지하고 있다. 방안퉁수 사고로는 아무것도 안 된다.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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