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생경한 얘기이지만 우리들 식탁에서 즐겨먹는 무의 뿌리가 길면 그해 겨울이 춥다는 속설이 있다. 지난 김장철에 무를 눈여겨본 주부들은 “무의 뿌리가 유난히 길다”면서 올 겨울이 추울 것으로 예견했다.

역시 그 속설이 정설이 돼 12월과 새해 초 기온이 57년 만에 영하 27도까지 내려가는 북극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고래지풍(古來之風)으로 내려오는 전설 같은 경험측 이 적중했다.

반면 현대 과학을 총동원한 기상청은 지난 12월초 예보에서 한반도 기온이 예전과 비슷하거나 다소 높겠다고 예발표를 했다. 아무리 과학과 슈퍼컴퓨터를 동원해도 장기 일기예보는 빗나갔다. 무 뿌리의 길고 짧음에 그해 겨울 날씨의 장기 예보를 해 온 옛 성현들의 지혜와 전통이 경이롭다. 12월에 이어 연일 계속되는 맹추위에 롱 패딩을 비롯한 겨울용 중 의류가 불티나게 팔렸다. 코로나19로 패닉 상태이던 내수 패션 업계로서는 기사회생의 고마운 한파다.

 

코로나,..환율,‧주 52시간 곳곳에 지뢰밭

말을 바꿔 소띠 해에 우보천리 덕담을 쏟아놓고 있으나 돌아가는 통박은 녹록치가 않다. 말인즉 ‘우직한 소걸음으로 천리를 간다’ 지만 자칫 신년 초부터 교각살우((橋脚殺牛) 위험성까지 걱정된다. 무섭고 우스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중대재해법)이 국회를 통과 하면서 중기, 대기업, 소상공인 경제주체 모두가 경악과 함께 집단 실어증을 호소하고 있다. 세상천지 어느 기업인이 일하다 죽거나 다치는 것을 바라겠으며 예측 불가능한 사고를 법으로 막는다고 없어질리 만무하다.

하도급 직원이 일하다 사망하면 원천 모기업 사업주가 1년 이상 징역을 살아야 하고 10억 벌금을 내야하는 악법 하에서 기업인은 교도소 뒷문 앞에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사고예방 취지야 백번 옳지만 징역형과 벌금을 무리하게 적용하면 이 나라에서 누가 기업하려고 할지 당최 알 수가 없다.

자본주의 꽃은 기업이다. 실물을 모르는 노동계나 시민단체의 이상론을 기업현장에 적용시키는 여야 정치권의 몰이해와 배신행위다. 지금 기업 현실은 장기 불황과 고비용 저효율 구조 속에 나날이 경쟁력이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 설상사상 코로나19에 일감이 없어 공장을 세우거나 휴폐업하면서 불구덩이 속으로 빠져드는 절체절명의 상황이다.

대다수 정치인 뿐 아니라 시민단체‧ 노동단체 인사들이 피땀 흘려 돈 벌어 직원들 월급 줘 본 일이 없는 사람들이다. 부도위기 패가망신 압박 속에 교도소 담장 위를 걸어본 경험도 상상도 해 본 일이 없다. ‘내 돈도 내 돈, 네 돈도 내 돈’ 식으로 여기는 무책임한 훈수꾼들의 목소리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기업이 살아야 고용을 늘리고 세금을 내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인데 기업을 못 잡아서 안달인지 도통 이해 할 수가 없다.

중언부언 하지만 섬유패션을 비롯한 지금의 우리 중소기업들을 망망대해 편주(片舟)처럼 위태위태한 상황이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질 시기가 언제일지 기약도 없다. 산술적으로는 절반 이하이지만 하산(下山)이 시작 된지 오래다. 코로나19의 맷돌에 깔려 찢기고 신음 중이다.

지난해 초부터 수요와 공급이 붕괴된 채 아직도 진행형 이다.코로나 백신 접종이 본격 확산되는 2분기 후반쯤에나 가물가물 회복국면을 기대하고 있다. 이웃 중국은 유일하게 15억 내수시장을 발판으로 경기가 활황이지만 우리는 곁불도 쬐기 어려운 처지다. 중국의 과열 내수 경기 때문에 원자재 값이 급등 현상을 보이고 있다.

면사 가격을 시발로 폴리에스테르‧ 화섬 원료 등 전분야가 과열되면서 원료 값이 뛰고 있다.

그럼에도 원사 값이 뛴 만큼 원단이나 제품 값에 반영을 못 한다. 해외 바이어들이 원사 값 인상을 인정하면서도 반영을 거부하거나 극히 일부만 반영하고 있다. 향후 니트 원단이나 제품 오더가 다소 늘어날 것으로 보지만 채산과는 거리가 멀다. 면 니트와는 달리 대구 경북 화섬 직물은 이마저 아직 깜깜이다.

봉제는 공동화 된지 오래이지만 화섬 직물 등 우리 섬유산업의 버팀목이 언제까지 갈수 있을지 냉철히 심사숙고해야 한다. 글로벌 시장은 울타리가 없다. 원산지가 어디이건 싸고 좋아야 살아남는다. 고임금, 인력난에 주 52시간, 환율비상에 전기료까지 들먹거린 복합위기 상황이다. 고용지원금이 중단 되면서 생산 현장의 숙련공끼리 대거 떠나보냈다.

지난 12월초다, 대구의 실력 있는 직물 수출업체에서 미국 고정거래선과 천신만고 시름 끝에 폴리에스테르 감량 가공 직물 120만 야드 오더를 받는데 성공했다. 지금도 매 한가지 이지만 120만 야드 물량은 최악의 오더 가뭄 속에 적지 않은 물량이다. 거래 염색 공장과 가공료를 협상하는 과정에서 사단이 벌어졌다, 직물업체 사장은“이번 오더는 가격이 좋지 않으니 가공료를 야드 당 20원만 낮춰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해당 염색업체에서 “그 가공료로는 적자가 나서 못 하겠다”며 거부했다. 하는 수 없이 120만 야드중 딜리버리가 급한 일부만 다른염색 업체에서 가공하고 결국 나머지 대량은 반납하고 말았다. 그 오더는 결국 중국으로 갔다. 아쉽고 안타까운 것은 그 오더를 수행하면 후속오더가 연결하게 됐지만 결국 꿩도 매도 다 놓치고 말았다.

 

그물로 바람 막는 전략으로 안 된다-

 

이것이 대구 섬유 업계의 현 주소다. 오더도 가뭄에 콩 나기 이지만 받아도 채산이 맞지 않아 수용이 어렵다. 한국에서 처리 못한 오더는 내수경기로 과열 국면인 중국으로 가게 된다. 더구나 염색공단 기업을 비롯한 염색 업체들은 코로나 공황에서 많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숙련공을 대거 내보낸 것이다. 앞으로 경기가 오는 것도 신기루처럼 가물가물 하지만 설사 오더라도 생산할 숙련공이 부족해 오더 수행이 어려울 것으로 우려 하고 있다.

특단의 구조 고도화 대책이 없으면 대구경부 섬유산지의 표류는 지속 될 수밖에 없다. 자동화 로봇화를 포함한 스마트 팩토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생존이 어렵다. 차별화 자동화의 생산성과 품질 고도화의 다각적이고 적극적인 대안 없이 현 상태의 천수답 경영으로는 미래가 없다. 투자할 능력도 의욕도 없는 지금의 상황으로는 가파르게 치닫는 복합위기 상황을 극복할 길이 막막하다.

나무는 해마다 제 몸속에서 나이테를 새긴다. 나이테가 늘어난 만큼 연륜이 쌓이고 내면이 단단해진다. 고목(古木)이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섬유산업은 나이테가 늘어날수록 단단해지기는커녕 갈수록 쇠락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그물로 바람 막는 전략으로는 안 된다. 여우의 지혜와 맹수의 결단력을 발휘해야 한다. 

曺永一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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