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제이(以夷制夷)는 오랑캐를 이용해 다른 오랑캐를 친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내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상대를 제거한다는 의미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언론과 야당은 대통령이 나서 말리거나 파면을 해 교통정리를 하라고 성화다.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를 수수방관하고 있다며 “대통령이 안 보인다”고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추 장관과 윤 총장 간 용호상박의 활극을 보면 일반 국민들도 대충 감이 잡힌다. 문 대통령의 평소 성정으로 봐 정치적으로 입장이 난처하면 현안에 침묵하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추 장관도 윤 총장도 문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인데 누구 손을 들어주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시정의 정치 9단 여론은 권력의 바람개비가 어느 쪽으로 돌아가는지 통박이 뻔하다. 임기가 보장된 검찰 총장을 직무에서 배제시키고 묵사발을 만드는 것이 추 장관의 단독 플레이는 아닐 것으로 보고 있다. 굳이 변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봐야 알 일이 아니다. 이이제이의 깊은 뜻을 새겨보면 감이 잡힌다.

아직도 포스트 코로나 준비 안 해서야

본질 문제로 돌아가 1등 방역국 우리나라에도 코로나 역병이 다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6000만 명 이상의 확진자가 나온데 이어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희생될지 상상도 예상도 할 수 없다. 스페인 독감으로 500만 명이 희생된 후 2년 만에 자연 소멸된 점을 감안하면 코로나 위기가 유사하지 않을까 생각만 해도 온몸이 스멀거린다.

마지막 한 장 남은 달력을 보면서 올 한해 모질게 고통받은 코로나 충격이 새해 초반부터 말끔히 씻어주길 간절히 바란다. 코로나19 역병으로 어느 업종보다 타격이 컸던 섬유패션 업계로서는 올 한 해가 지울 수 없는 악몽이었다. 수출 내수 동반 붕괴돼 도처에 줄초상이 돌림병처럼 번졌다. 백신이 개발됐다고 하지만 코로나로 인한 대재앙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미국도 봉쇄된 오프라인 대신 온라인이 성행해 일부 벌충은 했지만 절대 빈곤을 피할 수 없다.

오래전 쇠락의 징검다리를 건너버린 우리 섬유 산업은 빙하기에 접어들어 추위 타는 기업, 얼어 죽은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대구 산지의 비명 소리는 예전의 엄살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기획 생산이란 이름 아래 직기 가동률이 40~50% 돌리지만 내용을 내시경으로 들여다보면 한숨과 눈물이 보태진 막막한 처지다. 빚만 없으면 정리하겠다는 막다른 하소연이 귀청을 때린다.

바늘과 실 관계인 염색 업체의 상황은 더욱 참담하다. 인력 수요가 제직보다 훨씬 많은 염색 업계의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전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췄다는 대구염색공단 내 입주기업 중 거의 대부분이 작게는 월 1억, 많게는 2~3억 원씩 적자를 보고 있다. 일감이 없어 주 3~4일, 그것도 주간만 가동한다는 것은 댐의 둑이 무너진 거나 다름이 없다.

연간 수십억씩 적자를 내며 버틸 재간이 없다. 설상가상 고용을 유지하는데 오아시스 역할을 했던 고용유지지원금이 11월 말로 종료되면서 인력을 끌고 갈 방법이 없다. 염색공단입주기업 상당수가 11월 말과 12월 사이에 종업원의 30~40%를 줄이고 있다. 엄동설한에 대량 감원의 칼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 요즘 대구 산지의 모습이다.

대구뿐 아니다. 아시아의 니트 메카를 표방하는 경기 북부 편직공장들도 휴폐업이 속출하고 있다. 경기북부환편조합 조합원사 237개 중 올 들어 27개사가 자진 폐업상태다. 앞으로 폐업이 늘어나면 났지 줄어들 기세는 없다. 대구와 경기 북부 한국의 섬유산지가 공멸로 가는 지름길에 들어선 것이다.

미들과 다운 스트림의 몰락은 업스트림의 화섬 메이커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국내 화섬 메이커가 강도 높은 감산을 거듭하지만 재고는 줄지 않고 있다. 수요자인 국내 니트 직물과 화섬 직물 업계의 가동률이 바닥 을 헤매면서 원사 수요가 없기 때문이다. 국내 안방 시장을 60%나 장악하고 있는 중국산 폴리에스테르사는 중국 내수 경기 활황으로 가격을 올리고 있지만 한국 메이커는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다. 말이 중국산 원사 가격과 연동이지 한국 메이커는 구경만 해야 할 처지다.

그나마 면방은 지난 10월부터 기력을 회복해 4분기 들어 적자 수렁에서 탈출하고 있다. 고리당 500달러 내외의 말도 아닌 가격에 억지로 밀어내던 면사 가격이 10월 중순 고리당 100달러(코마 30수)나 뛰어 610달러를 회복했다. 고리당 40~50달러씩 얹혀서 팔던 악순환에서 벗어나 연초 가격을 회복했다. 11월 가격은 보합세이었지만 현재 추세를 보면 12월은 11월보다 강보합이 예상된다. 국제 원면값이 11월 말에 파운드당 70~72센트 수준으로 오른데 따른 것이다. 인도 면사값도 오르는 추세이어서 국내 면사값이 따라가는 것은 불문가지다. 원면이나 원사값이 오른다는 것은 경기 회복의 전조등으로 볼 수 있다. 코로나 백신이 개발되면서 세계 섬유의류 경기도 급속히 반전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국제 원면값과 석유값이 오른 것은 백신 개발에 따른 경기 회복의 기대감 때문이다. 우리 업계도 기회를 잘 포착해 경기회복에 편승할 준비를 서두를 때다.

한마디로 그치지 않는 비는 없다. 코로나 팬데믹도 백신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유통 바이어들은 내년의 경기 회복을 낙관하고 오더를 늘리고 있는 추세다. 한국 의류 벤더 역시 경기 회복에 대비해 나름대로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더 이상 의기소침해서는 안 된다.

중국산과 경쟁 기업 모조리 궤멸했다

그러나 중언부언하지만 모든 게 저절로 이루어지는 요술은 없다. 준비된 기업만이 경기 회복을 쓸어 담을 수 있다. 지금이 불황의 마지막 터널이다. 터널을 통과하기 위해 투자해야 한다. 불황 때 투자하는 것이 기업 경영의 정석이다. 미래를 대비하지 못하면 미래는 절망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

다만 우리 섬유패션 업계가 안고 있는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혁신하지 않으면 가망이 없다. 생산 현장에 사람이 없고 후발 경쟁국보다 5배·10배나 비싼 고임금을 부담하고 경쟁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축지법 같은 특단의 방안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자고새면 입버릇처럼 지적하는 것은 중국과 같거나 비슷한 제품으로 경쟁하는 것 자체가 자살행위다. 그런 기업들은 이미 궤멸했거나 궤멸 수순을 밟고 있다. 경기가 쉽게 회복되기도 어렵지만 회복된다 해도 천수답 기업에는 기회가 안 온다. 차별화와 생산성을 위한 자동화 투자와 신기술 앞에 불황은 없다. 내년을 대비한 투자야말로 미룰 수 없는 마지막 기회다.

저작권자 © 국제섬유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