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삼천포로 빠진 생뚱맞은 얘기이지만 우리가 믿고 우상화했던 미국 민주주의가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 후진국의 신앙이었던 미국 민주주의가 붕괴하는 굉음이 연일 귓전을 때린다. 흔히 미국인들은 “부부 사이에 종교는 달라도 같이 살지만 지지정당이 다르면 갈라선다”고 한다. 그만큼 보수·진보 간에 극한 대립이 뿌리 깊이 정착했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지 보름이 다 되도록 승복은커녕 더욱 기고만장하는 트럼프의 독불장군 행각에 온 세계가 조소를 금치 못한다. 그런 억지가 통용되는 사회가 아프리카가 아닌 미국이란 점에서 실망과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민주주의 선진국이라는 미국이 속된 표현으로 ‘개판 5분 전’이니 자고새면 개처럼 싸우는 우리 정치판을 비웃고 탓할 수도 없다. 여야 보수·진보, 좌우로 대립구조가 확연한 우리 사회의 진영논리가 오히려 미국보다 선진화된 느낌이다. 결과에 대한 승복은 정치나 스포츠, 사회 전반의 불문율이자 미덕이다. 민주주의를 짓밟는 무례한 트럼프의 행각을 보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미국을 배우자’는 얘기를 더 이상 할 수 없을 것 같다.

‘한국판 뉴딜 실행전략’ 기대된다

본질 문제로 돌아가 지난 11일은 섬유인들의 영원한 긍지인 제34회 섬유의 날이다. 지난 87년 단일 품목 최초로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한 기념으로 제정된 34번째 날이다. 섬유인들이 변곡점의 꼭대기에서도 이날만은 고통의 질곡을 벗어나 뿌듯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낸다. 비록 코로나19의 비대면으로 50명 이내의 소규모 행사를 치렀지만 분위기는 예년에 비해 손색이 없었다.

올해 제34회 섬유의 날은 형식보다 내용 면에서 괜찮은 평가를 받았다. 알다시피 11월 11일은 섬유의 날이자 농어민의 날이다. 이례적으로 청와대에서 열린 올해 25회 농어민의 날에는 대통령이 참석해 농어민의 노고를 치하하고 위로했다. 아무리 과거와 같은 비중이 달라졌다 해도 이 땅의 빈곤퇴치 주역이자 일자리 창출 일등 공신인 섬유인의 축제에 총리는커녕 장관도 못 오고 차관이 대신했다.

가뜩이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체 산업 중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수출도 작년보다 15% 이상 감소된 팍팍한 상황에서 섬유 산업을 대접하는 자세가 말이 아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섬유 산업에 금융권이 여신 관리를 강화하던 참이다. 2~3억 정도는 지점장 전결로 대출하던 관례가 깨지고 본부 승인으로 특별 관리돼 급전을 변통하기도 어렵게 됐다. 말과 행동이 다른 정부와 금융권의 소홀한 대접에 섬유인들이 크게 상심하던 참이다.

그럼에도 올해 섬유의 날에는 섬유패션 업계가 뜻밖의 큰 선물을 받았다. 정부와 섬산련이 공조해 ‘섬유패션 산업 한국판 뉴딜 정책’이 발표된 것이다. 오는 2026년까지 5년 동안 총 1조 4000억 원을 투자해 3만 6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원대한 프로젝트다. 섬유패션 산업 뉴딜 정책의 기본 목표는 ‘그린·디지털 혁신을 통한 섬유패션 산업 선도국가 실현’이다. △그린과 △디지털 △안전 △연대와 협력의 4대 추진 전략을 마련했다.

이 중 ‘그린’ 정책의 추진 방향은 친환경 소재개발, 염색 업종 그린산업 전환, 자원 순환행 그린 섬유 생태계 육성, 친환경 · 디지털 분야 전문 인력양성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또 ‘디지털’ 부문은 공정별 디지털 제조 기술 개발 및 실증,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 및 활용, K-패션인 디지털 생태계 조성, 디지털 비즈니스 모델 창출의 세부안을 담고 있다.

이어 ‘안전’부문은 K 방역사업 생태계 육성, 안전 보호 소재 산업 육성, 부직포 소재 산업 고도화, 첨단 산업 소재 자립화를 적극 추진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연대와 협력’ 부문에서는 지역 거점 봉제 혁신 공장구축, 섬유 스트림 간 기술 협력 강화, 수요-공급 기업 간 연대 협력 기반 조성, 의류 생산 리쇼어링 기반조성 등의 4개 추진 방향을 마련했다.

이를 바탕으로 세부적인 추진 방안을 마련해 추진하겠다는 의욕적인 정책을 제시했다. 그동안 목표도 방향도 없이 표류하던 섬유패션 산업 정책이 오랜만에 과감한 육성책으로 탈바꿈해 공개함으로써 일단 기대를 모으고 있다.

다만 오랜만에 모처럼 섬유패션인들의 눈과 귀가 번쩍 뜨인 ‘그린·디지털 혁신을 통한 섬유패션 산업 선도국가 실현’ 정책이 보기 좋고 듣기 좋은 사탕발림이 아닌 실질적으로 산업 현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 이들 추진 전략의 4대 기본 방향과 세부 추진 방안은 말인 즉 구구절절이 옳지만 우리 산업 생태계에서 과연 접목이 가능한 분야가 어디까지인지 냉철히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하나의 예증으로 연대와 협력 부문에서 의류 생산 리쇼어링 기반 조성의 경우 고임금과 인력난·전기료 무엇하나 경쟁국을 이겨낼 재간이 없는 현실에서 과연 해외로 나간 기업이 쉽게 돌아올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고비용·저효율 구조부터 선결문제가 걸려 있는 상황에서 논리는 필연성이 강해도 현실적인 대안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세부 각론에서 이상적인 내용이 많은 점을 감안해 우리 현실과 보다 깊이 접목할 수 있는 방안을 추가 보완할 필요가 있다.

그런 한편 우리 업계 스스로도 모처럼 정부가 과감하고 획기적인 ‘한국판 섬유패션 뉴딜정책’을 마련한데 대해 자구 노력의 적극 대응이 선행돼야 한다. 정부가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놓고 따라오라고 유인해도 나와 무관하다는 식으로 외면하면 ‘그림의 떡’이다. 울타리가 사라진 글로벌 경쟁 시대에 1등이 아니면 생존이 어렵다는 사즉생(死卽生) 각오로 투자하고 기술 개발해서 성장 동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자신은 아무 노력 않고 정부가 도와주겠지 하는 천수답 사고로는 조난을 자초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 질곡 탈출 멀지 않았다.

만시지탄의 감이 크지만 오랜만에 정부가 큰맘 먹고 섬유패션 산업 중흥을 위해 선물한 ‘섬유패션 산업 한국판 뉴딜 실행전략’을 섬유패션인 모두 전폭 환영하고 호응해야 한다.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허송하면 섬유패션 산업에 다시는 기회가 오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시장 환경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상황으로 변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코로나로 화마가 난무하는 극한 위험지대에서 어느덧 서서히 탈출구가 보이고 있다. 봉쇄된 오프라인 매장을 온라인이 대신 커버하고 사람이 직접 대면하지 않고도 인터넷, 화상 상담으로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내년 2분기부터 세계 경제가 V자 상승을 예고하고 있다. 코로나 백신이 개발돼 내년부터는 지구촌에서 무서운 역병을 잠재울 수도 있다. 제34회 섬유의 날을 뒤로하면서 이제는 섬유패션인들이 신음의 고통에서 벗어나 기사회생 부활가를 부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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