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위기 속 패닉 상태에 빠진 섬유 산업에 작은 이변이 생겼다. 지난 3월부터 내리 곤두박질치던 섬유 수출이 7개월 만에 깜짝 증가세를 나타냈다. 9월 섬유 수출이 작년 동기 대비 평균 11.4%가 늘어났다. 올 들어 2월 한 달 전년비 19% 증가한 것을 제외하면 1월의 마이너스 13%에 이어 계속해서 날개 없이 추락한 것과 비교하면 하나의 사건이다.

9월 섬유 수출 10억 6500만 달러 중 섬유 제품 수출이 작년보다 무려 58%나 증가한 3억 9600만 달러를 달성했다. 원인은 예년에 없던 마스크 수출이 효자 노릇을 한 것이다. 사류 11.1%, 직물 4.9% 감소를 커버하고도 평균 11.4%를 증가하는데 마스크를 주축으로 한 섬유 제품이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수출 비중이 70% 이상을 점유하는 섬유 산업 구조로 봐 전반적인 수요와 공급망이 봉쇄된 상황에서 예기치 않은 수확을 걷었다. 코로나19 사태로 화마가 난무하는 극한의 위험지대로 향하고 있는 섬유 산업에 비상구 역할을 해 조금은 위안이 된다.

섬유 수출 증가 마스크가 일냈다

그러나 마스크가 차지하는 섬유 산업 비중은 빙산의 일각일 뿐 섬유 산업 전반이 태풍 속 편주 처지다. 코로나가 몰고 온 대공황 속에 섬유 산업 전반이 화염에 휩싸인 형국이다. 추위 타는 기업, 얼어 죽는 기업이 널브러지고 있다. 코로나 이전에도 경쟁력을 상실해 중증 기저질환을 앓아오던 섬유 산업이 엎친 데 겹친 격이다.

중언부언하지만 진짜 이대로는 안 된다. 업계와 정부, 단체가 환골탈태를 통해 판을 다시 짜야 한다. 솔개가 40년을 살다 발톱과 부리를 다 뽑아 새롭게 태어나 산 세월을 다시 살고 새우가 머리 껍질을 깨서 다시 복원해 생명을 연장하듯 사즉생(死則生) 각오로 변하지 않으면 생명을 유지할 재간이 없다. 업체는 근본적으로 각자도생의 힘이 부친 데다 목표도 방향도 없는 주무 당국, 무능한 단체들이 변하지 않으면 앞뒤가 막막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필자가 각혈하듯 업계, 정부, 단체에 채근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섬유 산업의 현실은 내시경이 아닌 눈동냥, 귀동냥을 해도 상황의 심각성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코로나 사태로 8개월을 보내면서 모진 고통을 악으로 깡으로 버티고 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기업들이 조난되는 고초를 겪었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대구 산지에는 연휴가 지난 지 열흘이 다가도록 아직도 추석 휴가(?)를 실시한 기업이 30%에 달한다고 한다. 공장을 돌리자니 오더가 없고 아예 포기하고 문을 닫을 수도 없는 엉거주춤 기업이 부지기수다.

우리 섬유산업이 사는 길은 지난 60년 이상 우려먹은 폴리에스테르, 나일론의 일반 소재로는 더 이상 안 된다는 명제가 설정된 지 꽤 됐다. 그럼에도 소재 혁명은 구두선일 뿐 실제 진전이 없다. 세계시장은 시대의 변화에 맞춰 친환경, 친건강 기능성 소재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는데도 국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소재 개발의 1차 주역인 화섬메이커부터 누적 적자란 핑계로 신소재 개발 혁명은 강 건너 불구경이다.

하나의 예증으로 리사이클 섬유만 해도 그렇다. 세계 리사이클 섬유 시장은 대만의 난야, 싱콘, 파이스턴과 미국의 유니파이 등이 시장 지배자들이다. 난야 1개 회사에서 나이키와 아디다스, 푸마 3대 스포츠 브랜드에 공급하는 리사이클 소재가 월 8000톤에 달한다. 한국은 효성, 휴비스 등 화섬메이커가 일본 등지에서 칩을 들여와 방사해 공급하는 원사가 월 500톤 규모다. 경쟁국은 저만큼 앞서가는데 우리만 뒷걸음질 치고 있다.

성급한 예단인지 몰라도 트럼프와 바이든이 치열하게 맞붙은 미국 대선 가도에서 일단 여론 조사 지지도는 바이든이 앞선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바이든은 트럼프보다 훨씬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외신은 전하고 있다. 바이든이 만약 미 대통령이 됐을 때 친환경 정책이 강화되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의류 소재 역시 친환경 라사이클 수요가 급증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코로나 위기의 특수성 때문에 주춤했을 뿐 내년부터 리사이클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국내 화섬 업계가 용기를 내 이 부문에 과감히 투자할 필요가 있다. 국내 메이커에서 경쟁력을 갖춘 리사이클 소재가 개발 공급되면 국내 섬유의류 산업에도 엄청난 판도 변화가 예상된다. 지금은 한국에 소재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미국·유럽 바이어들이 대량 오더는커녕 소량 오더도 기피하고 있다. 국내 내수 로컬 수요뿐 아니라 터키에도 월 1000톤 규모의 수출 시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업계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리사이클뿐 아니라 레이온, 뱀부 등 친환경 소재 개발에도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 그만큼 친환경, 기능성 소재 시장은 무궁무진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밤나무와 대나무 소재가 값은 비싸지만 여기에 4분의 1 가격인 폴리에스테르를 융합하면 품질 좋고 가격 경쟁력이 충분히 보장될 수 있다. 업계, 단체가 머리를 맞대고 정부와 정치권을 설득해 일자리 창출의 일등 공신이자 기간산업인 섬유 산업을 살리기 위해 소재개발 지원부터 쟁취해야 한다.

이 같은 막중한 역할은 싫건 좋건 한국섬유산업연합회가 앞장서야 한다. 때마침 섬산련에 이상운 호가 출범한 지 3개월이 됐다. 이 회장이 ‘섬산련 운영의 획기적인 전환을 위해 이사 수를 40명으로 늘리고 부회장과 감사를 포함한 회장단을 19명으로 늘리는 매머드 기구를 발족했다. 현안 발굴과 대책 강구를 위해 전문가 그룹의 분과위원회를 활성화할 계획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백가쟁명식 의견만 난무할 것이 아니라 발등의 불이 떨어진 여러 현안 중에서 하나라도 제대로 차근차근 해결하는 지혜와 속도가 필요하다.

일모도원, 섬산련 부회장 공모해야

물론 일모도원(日暮途遠)의 이상운 회장의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섬산련 회장 자리가 결코 개인의 영달이나 명예만을 위한 자리가 아니다. 업계의 화합과 단결을 우선하면서 산적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때로는 악역을 자처하는 배짱과 강단이 필요하다. 과거 경세호 회장 재임 당시 정부가 대놓고 반대하며 훼방을 놨을 때도 ‘섬유특별법 100만인 서명 운동’을 밀어붙여 관철한 선례를 상기한 필요가 있다. 일을 하다 보면 접시도 깨고 손도 벨 수 있다.

무엇보다 섬산련이 제대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임기 만료 5개월이 다 어 방 뺄 준비에 바쁠 상근 부회장 후임을 한시바삐 해결해야 한다. 얼마 전 이 회장이 성윤모 장관을 취임 인사차 예방한 자리에서 거론했겠지만 후임 인사를 하루빨리 결정해 주도록 강하게 요구해야 된다. 그래도 미적거리면 공모를 해서라도 적임자를 물색하는 용기를 보일 필요가 있다.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고 냄비 속 개구리 신세인 섬유 산업의 현주소가 그야말로 일모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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