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영향력 강한 한 보수 언론이 아주 흥미 있는 특집 기사를 대서특필했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권위 있는 비영리 기관이 세계 각국 삶의 질을 조사 분석한 종합 성적표를 공개한 것이다. 세계 163개국을 대상으로 종합 분석한 2020년 사회 발전 지수에서 한국은 작년보다 무려 6단계나 껑충 뛴 17위를 차지했다. 상위 10개국은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등 인구 1000만 명 이하 국가가 대부분이다. 인구 5000만 명 이상 1인당 국민 소득 3만 달러 이상인 50-30클럽 7개국만 보면 한국은 독일과 일본 다음의 최상위다.

한국이 프랑스(18위), 영국(20위), 이탈리아(23위), 미국(28위) 보다 삶의 질에서 훨씬 앞섰다. 인간의 기본 욕구 충족과 사회 발전 지수 등 12개 항목 50개 세부 지표로 종합평가한 결과다. 한국의 사회 발전 수준이 다방면에서 미국, 프랑스보다 높다는 객관적인 분석 결과에 자긍심을 절로 느꼈다. 정치적 권리부여, 표현의 자유, 복지, 사법구제, 인터넷 사용 인구 비율 등 50개 세부사항에서 단연 최상위이다. 그럼에도 세계가 부러워한 우리나라에서 왜 출산율 세계 최하위, 자살률 1위, 청년들의 이생망 타령에, 각혈하는 진영 논리가 그치지 않는지 당최 알 수가 없다.

섬산련 상근 부회장 공백 사태 오나

본질 문제로 돌아가 전대미문의 코로나 와중에 이상운 한국섬유산업연합회장 체제가 출범한지 두 달이 가까워지고 있다. 선출일로 따지면 석 달이 가깝다. 이미 알려진 대로 명성 있는 섬유 엔지니어이자 탁월한 경영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이 회장은 “섬산련이 섬유패션 업계를 위해 헌신하는 단체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했다. 이를 전제로 “당면한 애로와 현안을 적극적으로 풀어가겠다”고 공언했다.

‘우물가에서 숭늉 달라’는 비유가 될지 모르지만 지금쯤은 태풍 속 편주(片舟) 신세인 섬유 산업 중흥을 위한 구조 고도화 방안이 윤곽을 드러낼 때가 됐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색칠은커녕 데생의 윤곽마저 감감한 것 같다. 물론 이 회장의 머릿속에는 여러 복안이 있고 구상이 많겠지만 실행할 손발이 여의치 않은 고민이 있을 수 있다. 바로 이 회장의 구상을 실질적으로 집행할 사무국 책임자인 상근 부회장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엉거주춤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돌아가는 통박으로 봐 임기를 이미 끝내고 후임 선임 때까지 덤으로 근무하고 있는 정동창 상근 부회장의 후임 선임이 어느 세월에 이루어질지 가물가물하다. 산업부의 낙하산 인사로 선임되고 있는 섬산련 상근부회장 내정과 인사혁신처의 취업심사위원회를 거치는 과정을 감안하면 앞으로도 몇 개월 더 걸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정 부회장의 임기가 공식적으로 지난 6월 4일로 끝났으나 후임 결정 때까지 6개월까지는 연장할 수 있다는 정관 규정을 그대로 따른다 해도 12월 4일이 한계다. 더 할 수도 없고 하고 싶어도 못한다.

이대로 가면 자칫 12월 4일이 아니라 내년 1, 2월까지 늦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자칫 섬산련 상근 부회장 공백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중요한 섬산련 상근 부회장 후임 인사가 6개월 이상 늦어진다는 것은 한시가 급한 섬유패션 산업의 기사회생 전략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황규연 전 산단공 이사장 내정이 비토된 이후 아직까지 후임 내정 소식이 없어 속 타는 것은 일모도원(日暮途遠)의 이상운 부회장이고 피해는 고스란히 업계가 안게 된다.

목표도 방향도 없는 섬유패션 정책에 원성이 자자한 산업부가 자기네 입맛에 맞는 낙하산 인사마저 늑장을 부려 개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사단법인 민간단체인 섬산련의 상근 부회장 인사를 언제까지 주무 부처가 좌지우지해야 하는지, 할 바에는 제때에 해야 함에도 차일피일 미루고 있어 속이 탄다.

과거 경세호 회장 시절 안영기 상근 부회장 임기가 끝난 후 후임 결정이 늦어져 잡음을 일으킨 적이 있다. 산업부가 섬유패션 업무에 전혀 경험이 없는 정치권 출신의 자동차공업협회 상근 부회장 출신을 추천했었다. 경 회장이 버럭 화를 내며 “우리가 공모하겠다”고 맞섰다. 당시 친 섬유 장관으로 유명한 이희범 장관이 “경 회장의 뜻을 이해한다”며 마지막으로 산업부 고위 관료 출신 중 3명을 추천해 선택하도록 요청했다. 경 회장과 회장단이 상의해 최종 선택한 인사가 하명근 부회장이었다.

산업부 1급 출신이며 대한 상의 상근 부회장을 잠시 역임한 하명근 씨는 그 길로 관료의식을 과감히 털어버리고 업계 편에서 전력투구했다. 경 회장의 주도로 ‘섬유 특별법’ 제정을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 때 산업부 주무국장이 “하 선배 왜 이러십니까. 업계가 특별법을 요구하는 100만인 서명운동을 말려야지 동조하십니까.”하며 닦달했다. 이에 하 부회장은 “나는 이미 업계 사람이요. 업계가 요구하면 충실히 따를 수밖에 없지 않소.”하며 소신껏 답변했다. 그런 소신과 추진력 강한 후임자가 새로 와야 할 텐데 걱정이다.

이상운 회장도 정부가 악착같이 반대한 섬유 특별법 제정을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을 감행했던 오기와 배짱으로 3년 임기를 채워야 한다. 취임 사에서 밝힌 수많은 사업 계획과 구조 고도화를 위한 구상을 전부 완성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할 수 있는 것을 몇 개라도 제대로 성취하고 마무리해야 한다.

추풍낙엽 위기 섬산련이 다 막을 수 없다

더불어 벼랑 끝에 몰린 섬유패션 산업의 기사회생을 위해 전면에 서는 것은 섬산련이지만 모든 걸 섬산련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또 해낼 수도 없다. 각 업종별 단체장을 비롯해 업계 중진들이 팔소매를 걷고 섬산련과 함께 나서야 한다. 업종별, 지역별로 머리를 맞대고 당면 현안과 중장기 전략을 마련해 함께 뛰어야 한다. 업계 지도자, 중진이 섬산련과 호흡을 맞춰 장관도 만나고 국회의원도 만나야 한다. 총리, 청와대도 가야 한다.

섬유패션 업계가 처해 있는 지금의 상황은 엄살이 아니라 단군 이래 최악의 극한 상황이다. 대구와 수도권 산지 제조업은 그야말로 추풍낙엽 처지다. 경쟁력을 잃고 시난고난한 상황에서 코로나19 위기까지 겹쳐 추위 타는 기업, 얼어 죽은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어영부영 시간을 끌 여유가 없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 난국을 헤쳐나가기 위해 업계 중진과 지도자들이 강 건너 불구경하지 말고 뭉쳐야 한다. 섬산련을 필두로 중앙과 지방이 사즉생((死卽生) 각오로 총력전을 펴야 한다. 이상운 회장은 하루빨리 최소 새로 자신이 구성한 섬산련 이사진들과 끝장 토론을 해서라도 위기 극복 방안을 협의하고 자구책을 강구해야 한다. 경쟁력 회복 방안을 업계 스스로 마련하고 지원이 필요하면 정부, 국회 가릴 것 없이 설득하고 쟁취해야 한다. 지금은 화마가 난무하는 극한의 위험 상황이다. 업계 모두 100만인 서명 운동하던 각오로 동참하고 매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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