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주의는 자기만 옳고 남의 비판이나 의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대부분 원리주의자들의 양극화된 사고는 흑백논리, 이분법만을 추구한다. 우파냐, 좌파냐, 보수냐, 진보냐 하는 무지막지한 사고방식으로 아군과 적군을 가른다.

여의도 정치권에 이 같은 원리주의자들이 기승을 부리며 싸움닭으로 활약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들이 국민을 내 편, 네 편으로 갈라놓는다. 역대 최악이던 20대 국회를 21대 국회에서도 답습하고 있다. 만나면 개처럼 싸우는 고질 병폐가 언제나 치유될지 국민들은 넌덜머리를 낸다.

얘기는 다르지만 전 국민에게 1인당 통신비 2만원씩을 지원한다는 정부 여당의 발상은 한마디로 부박하기 이를 데 없는 전략 빈곤이다. 아무리 전대미문의 코로나 위기라고 해도 생색도 안 나고 감동도 없는 선심 정책을 왜 고집하는지 당최 알 수 없다. 요즘 보통 국민들도 2만원은 껌 값이다. 모으면 9000억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거금이지만 1인당 2만원은 주고도 욕먹을 짓이다.

폴리·나일론·아크릴 의존 벗어나야

차라리 그 돈 가져다 국가 기간산업인 섬유산업에 집중 투하하면 경쟁력이 살아나고 세계 섬유산업 판도가 바뀔 수 있다. 가뜩이나 재정금융당국이 “섬유산업을 기간산업이 아니다”는 망발과 함께 기간산업안정기금을 안주겠다는 황당한 방침에 부글부글 끓고 있는 상황이다. 섬유·패션 유통 종사자가 자그마치 100만 명에 육박하고 작지만 영세기업까지 제조업체가 4만 8000개에 달한다. 섬유산업에 이 돈을 지원하면 기사회생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중증 기저질환을 앓아오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생사기로에선 섬유산업의 구조고도화를 위해 조(兆) 단위 지원이 필요하다.

사실 코로나 위기에 돌아가는 통박을 보면 무섭고 우습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3000만 명 이상이 감염된 코로나19가 내년 2분기까지는 속수무책 같이 살아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백신이 그때 가서야 선보일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지난 7개월도 모질게 버티어왔는데 앞으로 6~7개월은 더 견딘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섬유패션 모두 줄도산으로 가는 암울한 실물지표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 대구 산지부터 곡소리가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다. 굵직굵직한 회사가 이미 떡 쌀을 담궜고 나머지 기업들도 막다른 골목에 몰려 거친 한숨을 몰아쉬고 있다. 직기 가동률이 30% 내외이고 억지로 가동을 유지해도 재고를 쌓아둘 곳이 없는 회사가 부지기수다.

바늘과 실관계인 염색 가공도 참담한 상황이다. 대구 섬유산업의 버팀목인 염색 공장 입주기업마다 주 2~3일 주간 가동에 그치고 있다. 설비를 가동해도 손해, 안돌려도 손해, 돌파할 재간이 없다. 대구 산지의 태풍이 어느새 수도권으로 확산돼 야반도주 사태까지 발생하고 있다.

원단 컨버터 중에서 중견 회사로 이름이 알려졌던 수도권의 유유텍스타일의 유 모 사장이 지난주 잠적했다. 재작년 2800만 달러, 지난해 1300만 달러를 국내 ‘빅3’ 벤더에 공급할 정도로 이름 있는 회사였지만 코로나19 위기에 결국 백기를 들었다. 경기북부와 안산 염색공장 등 믿고 거래한 협력 업체들이 수억 수천만원씩 피해를 입었다.

이에 앞서 동두천에서 염색가공 공장으로 비교적 잘 나가던 중견 기업 정인텍스타일도 코로나 사태를 극복하지 못하고 부도를 냈다. 경기북부에서 비교적 활발하게 수출 활동을 해온 중견 트레이딩 중 벌써 무역금융을 제때 상환하지 못해 60일에서 90일까지 연장한 기업이 많다. 이들 중견 트레이딩이 만세를 부르면 줄줄이 고구마 넝쿨처럼 거래 협력 업체들이 연쇄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대구 경북과 경기북부 등 수도권 소재 제·편직·컨버터·트레이딩 업체들의

일촉즉발 줄도산 위기뿐 아니다. 내수 패션 업계 상황도 별로 다르지 않다. 코로나19로 사람의 왕래가 제약을 받으면서 백화점에 사람이 안 온다. 아웃렛은 다소 낫다고 해도 가두매장과 함께 구매 고객의 발길이 끊겼다. 가을 상품을 일제히 출하했는데도 지난 5·6·7월보다 매출이 더욱 싸늘하게 식었다. 패션브랜드마다 초비상 상태에서 10월 대란설이 무성할 정도다.

대다수 중소기업 업종이 대동소이 하지만 지난 7개월이 연옥이었다면 앞으로 6개월은 지옥 그 자체다. 한마디로 전례 없는 복합위기 상황에 안팎의 불확실성이 최고에 이르고 있다. 기업마다 맨살 위에 독사가 지나는 공포에 떨고 있다.

그러나 섬유산업을 이대로 포기할 수도 해서도 안 된다. 사즉생(死卽生) 각오로 여우의 지혜와 맹수의 결단력으로 위기를 기회로 전환해야 한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겠지’하는 천수답 경영을 과감히 수술해야 한다. 위기와 기회의 갈림길에서는 평소와 다른 혁명적인 변화가 선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우선 국내 섬유산업의 판을 바꿔야 한다. 그 선두에 소재의 혁명이 이루어져야 한다. 막연한 혁명이 아니라 폴리에스테르, 나일론, 아크릴에 의존하는 기존 소재의 탈바꿈이 급선무다. 지난 60년간 의존해온 폴리에스테르, 나일론, 아크릴의 레귤러 소재로는 희망이 없다. 규모에서는 중국에 계란으로 바위 치기이고, 신소재는 일본은 물론 대만에도 한참 뒤처져 있다. 일본이 개발한 피치 스킨을 카피해 20년 가까이 우려먹었고 역시 일본이 개발한 잠재권축사로 15년을 우려먹었다.

렌징이 밤나무 소재 레이온을 개발해 세계 섬유 소재 혁명을 일으켰고 글로벌 대기업으로 우뚝 섰다. 최근 핀란드 섬유기술개발회사 스피노바가 스웨덴, 독일, 프랑스, 미국, 핀란드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지속 가능한 텍스타일 원자재를 목재로 지목했다. 여기에는 대나무 소재도 충분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소재 혁명이 살길

친환경, 친건강의 소재와 리사이클 소재가 각광을 받을 것을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지금까지도 겪어 왔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2등은 살아남지 못한다. 페트병을 이용한 리사이클 섬유가 스포츠웨어를 비롯한 의류 소재의 핵심으로 부상한지 오래이나 국내에는 아직 걸음마 수준도 안 된다.

생수용 페트병이 제대로 분리가 안 되는 제도상의 어려움도 있지만 화섬 업계부터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투자가 절실하다. 일본에서 칩을 들여와 방사하는 수준으로는 백년하청을 면할 수 없다.

나무 소재 용해제도 과거 원진레이온 시절과는 천양지차로 발전했다. 새로운 레이온과 기존 화섬을 복합 방사하는 기술을 포함 불모지 페트병 리사이클 섬유 등 다양한 신소재가 개발되지 않는 한 섬유산업의 미래는 없다. 화섬 업계를 비롯 단체, 연구소, 중진들이 잠에서 깨어나면서 백면서생의 정부 관료를 설득해 하루빨리 소재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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