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형(天形)처럼 무서운 코로나 공포 속에 웃지 못할 코미디성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3·4월 신천지 교회의 집단 감염이 불거지자 서울 시민들 상당수가 대구 사람을 ‘애비’하며 경계했다. 선량한 대구 시민들이 신천지 교회로 인해 죄 없이 덤터기를 썼다.

최근 세태는 상황이 완전 뒤바뀌었다. 전광훈 목사의 사랑제일교회와 보수단체의 광화문 집회에서 코로나 집단 감염이 발생하면서 판세가 역전됐다. 대구 사람들 상당수가 “서울 사람 대구 오지 말라”고 손사래를 치고 있다는 것이다.

말이 쉬어 코로나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이지 두 번 겪으면 사람도 경제도 모조리 사라질 판이다. 달과 화성을 오가는 첨단 과학 시대에 그 많은 희생자를 내고도 뚜렷한 백신조차 개발 못 하는 의학의 한계가 개탄스럽다. 얼마나 더 많은 인명이 사라지고 앓아누워야 역병이 사라질지 상상만 할 뿐 예상을 못한다. 그나마 대한민국에는 섬유산업이 만든 최고의 백신 마스크가 차고 넘쳐 방역 모범국의 일등 공신이다.

대구 산지 파산의 불길 번지고 있다

본질 문제로 돌아가 대명절 추석이 두 주일 남짓 남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민족 명절이 올해는 초상집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처지에다 떡 쌈 담그는 기업이 역대 최대인 것이다. 코로나19가 창궐한 지 7개월이 지나면서 섬유패션을 비롯한 중소기업 전 분야에 파산의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경제가 빙하기에 진입해 옴짝달싹 못하면서 추위 타는 기업, 얼어 죽는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대구 산지부터 화마가 난무하는 극한 위험지대에 빠져들어 어느 기업이 흰 까마귀이고 검은 까마귀인지 식별이 안 된다. 공급망과 수요가 멈춰 선 코로나19 창궐 7개월을 악으로 깡으로 버티어 왔지만 이어지는 코로나19 시대를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다. 소가 밟아도 끄떡하지 않을 것으로 보였던 보광이 화의를 신청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윤원보 대표는 대구경북직물조합 이사장을 역임한 중진 기업인이었다. 베트남에 니트 원단 공장도 진출했지만 만성적자의 국내 공장을 더 이상 끌고 가기 어려웠던 것이다.

구미에서 참하게 폴리에스테르 직물 공장을 운영하던 임혁기 대표의 서구산업 역시 백방으로 노력해도 앞뒤가 캄캄하다 보니 결국 부도를 내고 빚잔치를 끝냈다. 직기 72대, 연사기 60대 규모의 서구산업이 지난 5일 자로 돌아온 어음을 막지 못하고 손을 든 것이다. 정확한 부채 규모는 모르지만 줄잡아 50억~60억 규모가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표면으로 나타나지 않고 소리소문없이 문 닫는 공장도 부지기수다. 풍기의 대표적인 간판 인견 직물 업체 루디아도 코로나19로 수출 오더가 씨가 마르자 이달 들어 자진 휴업에 들어갔다. 반세기 이상 장구한 역사와 함께 풍기의 간판기업인 루디아가 휴업할 정도면 다른 기업의 고통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대구경북지역의 크고 작은 직물 관련 업체 중 코로나19 불황으로 올 들어 40여 업체가 자진 폐업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는 것이 업계 인사들의 분석이다.

대구 직물 업체나 염색가공 업체 가동률이 기업당 평균 30~40%가 대부분이라면 더 견디어 낼 재간이 없다. 그치지 않은 코로나19 와중에 연말까지 조난당할 기업이 얼마나 늘어날지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저마다 각자도생의 사투를 벌이지만 코로나19 태풍 앞에 편주 신세를 면할 길이 없다. 대구뿐 아니라 경기도 니트 산지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대동소이한 상황이다.

문제는 코로나19로 인한 줄초상 사태를 언제까지 앉아서 당하고 있을 것인가에 대한 대응 자세다. 내년 초까지는 각오를 해야겠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적극 대응하며 준비해야 한다. 돌이켜 보면 우리 섬유산업은 10년, 20년 전부터 중증 기저 질환을 앓아왔다. 환부를 과감히 도려내며 새살이 돋게 하는 집도의가 없었고, 기업도 천수답 경영으로 갈 때까지 가보자는 것이 오늘의 사태를 자초했다.

‘나가야 한다’는 시대적 조류에 해외 엑소더스에만 치중했지 국내 산업의 구조고도화는 도통 안중에 없었다. 인력난·고임금의 구조적인 고비용 저효율 구조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묘책이 없었다. 기술 앞에 불황 없다고 그토록 목청을 돋았지만 “돈도 능력도 없다”고 외면한 게 우리 업계의 고정관념이었다. 봉제는 일찌감치 공동화됐지만 대구 산지나 동양의 니트 메카를 표방하는 경기북부 산지를 지속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신소재 개발이 필연적인 논리이고 현실적인 대안이었다.

대구 산지와 경기북부 제직과 편직이 아무리 재주를 부려봐도 차별화에는 한계가 있다. 국내 화섬 업계가 전면에 나서 일본이 가고 있는 차별화 소재 개발에 전력투구했다면 이 모양 이 꼴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도 40년 50년 된 구닥다리 설비를 그대로 가동하고 일본을 커녕 중국과 대만보다 떨어진 레귤러 원사에 의존하다 보니 자신도 탈진하고 수요 업계도 빈사 상태에 빠졌다. 화섬메이커가 소재 개발을 안 하는지 못 하는지 주저앉다 보니 안방 시장을 중국에 뺏기고 직물 업체도 그 밥에 그 나물 제품이었다.

한국의 독무대었던 치폰직물이 중국에 넘어가 야드당 원사값도 안 되는 75센트에 판매되는데 아직도 대구에서 중국산 치폰과 경쟁하고 있다.

화섬 신소재 개발 헛발질 ‘무한책임’

중국에서도 싸구려 원단으로 천덕꾸러기 취급하는 폴리다후다를 지금도 대구에서 생산하는 기막힌 상황이다. 규모 경쟁은 생산성의 비교우위와 가격 경쟁을 동시에 충족시키지만 중국보다 5배 이상 높은 임금을 주고 중국산과 똑같은 원단으로 경쟁하는 것은 자살행위이다. 바로 소재 빈곤 때문이다.

거두절미하고 소재의 차별화 없는 국내 섬유산업의 생존 전략은 신기루일 뿐이다. 국내 화섬메이커가 변해야 복합 위기에 빠진 국내 섬유산업의 기사회생이 가능하다. 지금과 같은 소극적인 신소재 개발 외면은 해가 갈수록 포류와 방황을 넘어 제2, 제3의 코오롱FM 사태를 피할 수 없다. 그래도 화섬메이커는 힘 있는 대기업이기에 마지막으로 호소한다.

때마침 화섬 업계를 대표해 효성의 이상운 부회장이 한국 섬유패션 업계의 수장(首長)에 취임했다.

뛰어난 섬유기술 엔지니어이자 탁월한 경영인인 이상운 신임 섬산련 회장이 팔소매를 걷고 전면에 나서야 한다. 취임사에서 듣기 좋은 얘기를 많이 했지만 효성부터 세계가 깜짝 놀랄 다양한 신소재 개발을 선도해야 한다. 정부를 물고 늘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국내 화섬 산업의 신소재 개발 자금을 통 크게 얻어내야 한다. 화섬 업계의 소재개발 없는 섬유산업 존립은 구호와 구도선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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